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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8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404g | 128*188*30mm
ISBN13 9788998529239
ISBN10 8998529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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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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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 여행은 이 모든 것이 하나로 합해지는 지점이다. 이야기가 살아나고,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친구가 된다. 매번 다른 순간들을 만나게 되고 그 순간은 그저 달콤하고 게으르게 보낼 수 있는 비로소 행복한 시간이다. 이때의 감정과 경험, 깨달음은 ‘나’라는 책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채워준다. 결국 나는 또다시 삶의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용기까지 덤으로.
--- 「프롤로그」 중에서

#2
어둡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곳에 있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당연히 이동의 자유를 구속받는 것 역시 처음이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자유로워지는 느낌이었다. 계속 무언가 해야 할 것만 같은 스스로의 강박에서 벗어나도 괜찮았다. 오롯이 나만을 생각하는 하루였다. 어떤 것도 나와 나 사이에 끼어들지 못했다. 그렇게 조용한 하루를 보낸 다음 날 늦은 아침을 먹으니 정신이 또렷해졌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가 발리에서 얻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하게 정리됐다.
--- 「첫 번째 여행 인도네시아 발리, 우붓 "행복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아"」 중에서

#3
다양한 인종과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뒤섞인 싱가포르에서는 누구도 내 위치와 직업에 관심이 없었다. 빈털터리 취준생인 내가 매일 싸구려 길거리 식당에서 호키엔미(싱가포르식 볶음국수)를 먹어도 나를 궁금증 넘치는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반대로 어느 누구와도 맛있는 사테(꼬치요리)와 맥주 한 잔이면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내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원하는지 물었다. 나를 둘러싼 것들 대신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내 생각의 방향이 어디로 흐르는지, 하루를 즐겁게 보냈는지 궁금해했다. 내일의 내가 아니라 눈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 그 순간’의 나를 보았다. 그 경험은 나를 바꾸기 시작했다.
--- 「두 번째 여행 싱가포르 "욕망이라는 이름의 사랑, 그리고 춤"」」 중에서 에서

#4
1년간 시드니에서 지내며 때론 여행자가 되었고, 때론 일상을 보내는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 여행자가 되었을 때는 신기한 것, 즐길 것이 많았지만 일상에서는 종종 낯설고 외롭기도 했다. 레이첼이 매년 가을을 소름 끼치게 두려워하듯, 세실리아가 남편인 폴을 미워하지만 그만큼 사랑하는 것처럼. (중략) 이렇게 일상은 괴로운 일 투성이지만 그렇다고 여행자처럼 훌쩍 다른 도시를 찾아 떠날 수 없다.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일상과 여행의 다른 점이 아닐까. 여행자의 시드니도, 일상적인 시드니도 사랑스럽다는 것은 변하지 않겠지만, 그 사랑스러움이 삶에서 어떤 의미일지는 개인의 몫일 것이다.
--- 「아홉 번째 여행 호주, 시드니 "일상과 여행의 경계"」」 중에서 에서

#5
오르다 보면 여기에 왜 왔을까 하는 자책, 그가 왔을까 하는 궁금증, 당시 우리의 사랑과 오해, 나의 잘못과 그의 잘못, 조급한 마음, 잊지 못했던 순간은 아무것도 머리에 남지 않는다. 오르는 그 순간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오직 사랑만 남게 된다. 수많은 잡념은 사라지고 사랑했던 그 마음만 남는다. 그렇게 남은 마음을 안고 정상에 오르면 헐떡이는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주황빛 물결이 눈앞에 펼쳐진다.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마주하고 싶은 마음, 그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이곳이 사랑의 두오모가 된 것이리라.
--- 「열네 번째 여행 이탈리아, 피렌체 "그와 그녀의 선택과 약속"」」 중에서 에서

#6
소설을 읽으며 머리로만 생각하던 공간들을 실제로 여행하면서 소설에 담긴 내용이 텍스트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삶임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당연하게 여행도 더 풍성해졌죠. 그 시간 덕분에 여행과 소설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주인공들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모든 상황에서 그들이 했던 선택의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죠. 이는 앞으로 나의 삶이 어떤 방향을 찾아 나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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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여행자로 살아오면서 여행이 우리 인생의 아주 작은 걱정 하나 조차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미팅과 회의와 이메일과 지난한 서류작업이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이 책에 등장하는 오르한 파묵과 가와바타 야스나리, 앙투앙 로랭의 소설들을 밑줄 쳐가며 읽었지만 이 소설들이 과연 내 인생에 무엇을 해주었다는 말인가.

실용적인 면에서 무용하다는 점에서 여행과 소설은 무척이나 닮았지만 우리는 고집스럽게 여행을 떠나고 소설을 읽는다.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다음 여행을 기대하고 한 권의 소설책을 다 읽고는 다음 소설을 찾아 서점을 들락거린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여행과 소설의 효용 아닐까. 여행을 떠나고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앞으로 보낼 수 있다. 즐겁지는 않지만 가까스로 견디며 인생의 악행을 모른 척할 수는 있는 것이다. 여행이 금지된 시대, 이메일로 배달되어 온 이 책의 원고를 읽는 며칠 동안 꿈꾸듯 여행하듯 살아 갈 수 있었다. 아, 우리에겐 아직 가야 할 여행과 읽어야 할 소설이 있구나 하는 걸 느끼며 안도할 수 있었다.

다만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 챕터는 아직 읽지 않고 아껴두었다. 코로나가 멈추고 조만간 발리로 가 해변의 야자수 아래에 드러누워 이 책을 읽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으니까. 차가운 얼음이 가득 든 콜라잔을 달그락 거리며 나는 발리에서 이 책을 읽으며 낭비할 내 인생의 며칠을 상상하며 슬며시 즐거웠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좋아하는 음식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맨 마지막에 먹듯 이 책의 한 챕터를 읽지 않고 남겨둔 건 분명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 최갑수 (시인.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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