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콜카타에서 태어났다. 벵골 명문의 대성(대성)이라 불리는 데벤드라나트의 열넷 째 아들로 태어나 11세 경부터 시를 썼고, 16세에 시집<들꽃>을 내어 벵골의 P.B 셀리라 불렸다. 1877년 영국으로 유학하여 유럽 사상과 친숙하게 된 타고르는 귀국 후 벵골어로 작품을 발표하고 또 그 대부분을 직접 영역하기도 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이 유미적이었다면 1891년 아버지의 명령으로 가족의 영지를 관리하면서 접하게 된 농촌 생활이 작품에 현실미를 더하고 단편소설들을 집필하는 계기가 된다. 아내와 딸의 죽음으로 종교적이 된 타고르는 벵골어로 출판한 시집 <기탄잘리>의 영역본을 들고 영국으로 건너가 1912년 출판함으로써 유럽 문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다음 해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이후 1920년부터 1930년경에 이르기까지 그는 미국, 유럽 그리고 극동지역을 여행하면서 광범위한 강연 활동을 벌이기도 하면서 1941년,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문학의 여러 장르에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모스크바, 베를린, 파리, 런던과 뉴욕 등지의 유명 화랑에서 그림 전시회를 열만큼 다양한 장르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시집에 <신월 The crecent Moon>, <정원사 The Gardener>(1913) 등, 희곡에 <우체국 The Post Office>, <암실의 왕 The King of the Dark Chamber>(1914), 소설에 <고라 Gora>(1910), < 카불에서 온 과일장수> 등, 평론에 <인간의 종교>, < 내셔널리즘 Nationalism>(1917) 등이 있다. 또한 타고르는 벵골지방의 옛 민요를 바탕으로 많은 곡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그가 작시·작곡한 <자나 가나 마나 Jana Gana Mana>는 인도의 국가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간디와 함께 국부(國父)로 존경을 받고 있다.
1970년에 태어나 동서양 문학을 폭넑게 공부했으며 시와 소설 창작활동을 했다. 1995년 인도로 건너가 푸나에 있는 오쇼 코뮨에서 공동체 생활을 경험하며 마 디얀 프라풀라Ma Dhyan Prafula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지난 10년간 인도와 유럽 등지를 여행하면서 개인적인 성장과 각성을 위한 다양한 명상법을 경험하였다. 현재 최면요법과 Familly Constellation, 구르지예프 므브먼트 워크샵을 진행하면서 명상여행을 계속하는 한편, 번역과 창작활동을 통해 내면으로 향한 길을 넓혀가고 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워크샵 및 국제전 교류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쳤으며 국내외 10여회의 개인전과 160여회의 국제전, 그룹전에 초대, 출품해왔다. <걸리버 여행기>를 비롯하여 많은 책들의 일러스트 그렸으며, 현재 국제창작예술가협회 한국 부회장이며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