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金東仁, 1900년 10월 2일 ~ 1951년 1월 5일)은 평양에서 태어났고,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인이며 언론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仁), 춘사(春士), 만덕(萬德), 시어딤이다. 숭덕소학교를 거쳐 1912년 숭실학교에 입학했다가 이듬해 중퇴한 후 1914년 도쿄학원 중학부에 입학했지만, 도쿄학원의 폐쇄로 메이지 학원 중학부 2학년에 편입했다. 유학 중 그는 이광수, 안재홍, 신익희 등과 친구로 지냈다.
1920년대부터 가세가 몰락하면서 대중소설을 썼고,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시어딤 창작집'(창조사) 발간, 동아일보에 첫 번째 장편소설 '젊은 그들(1930.9~1931.11)'을 연재했다. 한편 신여성의 자유 연애, 여성 해방 운동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그는 풍자와 조롱을 잘 하였다. 1932년 발표된 단편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를 읽은 염상섭은 장가를 간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여겨 동인과 설전을 벌였다고도 하며,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삶의 마지막은 사업 실패로 인한 불면증 때문에 수면제와 술로 지탱하다 1951년 1월 5일 서울 하왕십리동의 자택에서 52세의 나이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