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알몸 채로 걸터앉은 의자는 갈라지거나 뒤틀리거나 수축하거나 좀먹거나 오밤중에 삐거덕대는 일이 결코 없으리라 보장된 헐벗은 티크재 흔들의자였다. 오로지 그의 차지요 한시도 그를 떠난 적이 없었다. 머피가 앉은 자리는 커튼 쳐진 구석 자리로, 처녀자리만도 벌써 억만 번째인 저 가여운 늙다리 태양이 들지 않았다. 목도리 일곱 장이 그를 정자세로 붙들어 맸다. 두 장은 정강이를 의자 다리에, 한 장은 허벅지를 좌석에, 두 장은 가슴과 배를 등받이에, 한 장은 뒷짐 진 손목을 뒤쪽 버팀대에 각각 결박하고 있었다. 고로 지극히 국부적인 동작만 가능했다. 땀이 흥건히 흘러 뱃대끈들을 한층 옥좼다. 호흡은 감지되지 않았다. 갈매기처럼 서늘하고 동요 없는 두 눈은 처마 돌림띠에서 아롱져 사그라지는 얼룩을 향했다. 어디선가 20-30여 차례 아스라이 울리던 뻐꾹종이 길가 행상의 외침을 되받는가 싶더니, 이제 막다른 말간 골목에서 주거니 받거니! 주거니 받거니! 하고 예의 외치는 소리가 곧장 귓전을 때렸다.
--- p.9
머피는 자기가 난 벌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면 부디 그 말을 믿어 달라고 실리아에게 빌었다. 안 그래도 이미 이런저런 시도로 푼돈 재산이나마 탕진하지 않았던가? 자기가 명예직이란 만성질환을 앓고 있음을 믿어 달라고 빌었다. 그렇다고 이것이 전적으로 경제적 문제인 것만도 아니었다. 여기에는 형이상학적인 고려 사항도 관여돼 있는데, 그 암담한 빛에 비추건대 어느 머피가 됐건 머피로선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밤이 닥쳤다고 봐야 했다. 익시온이 언제 제 수레바퀴를 멀쩡한 상태로 유지 보수해야 한다는 계약을 맺었던가? 탄탈로스는 소금 먹을 일에 미리 대비했던가? 머피로서는 들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 p.22~23
머피의 별점이 담긴 수크의 천궁도는 이 불운의 출생인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동행했다. 그새 천궁도의 내용을 몽땅 외운 머피는 길을 가면서도 점괘를 속으로 읊었다. 적의 손에 들어갈까 두려워 아예 파기할 각오로 주머니에서 꺼낸 것만 수차례였다. 그러나 제 기억력이 얼마나 못 미더운지 잘 알기에 감히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는 제 능력 닿는 데까지 천궁도의 지침을 따랐다. 레몬 한 줌을 의복에 뿌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자신의 힐렉과 신체 일체를 위협하는 모든 것에 항시 경계 태세를 유지했다. 발의 통증을 크게 겪었으며 목 또한 통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이에 그는 만족감을 느꼈다. 그로써 천궁도가 확증되었고 그에 상응하는 확률로 신장염과 갑상선 질환, 배뇨 곤란과 발작의 위험성은 감소할 터였다.
--- p.61
이 순간 흔들의자에 5분이라도 앉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머피는 기꺼이 하(下)연옥에 대한 기대를 포기할 것이요, 벨라콰처럼 바람이 미치지 않는 바위 면에 기대어 태아처럼 웅크리는 자세도 단념할 터, 그리하여 새벽녘에 갈대 너머로 전율하는 남쪽 바다와 상승하며 북으로 기우는 해를 바라보는 일도, 그 전부를 갓난아이가 꿈꾸듯 정자터에서 화장터에 이르기까지 죄다 다시 꿈꾸기 전에는 속죄로부터 면역되는 일도 단념할 것이었거늘. 이러한 사후의 상태를 그는 굉장히 중시했고 그 여러 이점이 마음속에 워낙 상세히 그려졌기에 실제로도 자신이 노년기까지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그에 이르거든 아주 오랜 시간 꿈에 젖어, 또 동틀 녘이 제 황도대를 통과해 지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누워 지낼 것이요, 그런 뒤에야 낙원에 이르는 수고로운 오르막길을 오를 것이다. 일대일에도 못 미치는 어처구니없는 경사도를 지나. 그러니 신실한 상인의 선의의 기도가 머피의 명을 단축하지 않기를 신에게 간곡히 바랄밖에. 이것이 그의 벨라콰 환상이요, 어쩌면 그의 여러 환상 중에서도 가장 체계가 잡힌 환상에 속할지 몰랐다. 또한 고난의 경계 바로 너머에 놓인 환상 중 하나이자 자유의 첫 풍경이기도 했다.
--- p.63
머피의 정신은 속이 빈 커다란 구체, 외부 우주에 단단히 닫혀 있는 하나의 공으로서 스스로를 상상했다. 우주에 닫혀 있다고 해서 결핍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 그로써 배제된 것치고 저 내부에 자체적으로 갖추지 않은 게 전혀 없었다. 그 바깥에 자리한 우주 가운데 한때 존재했거나 현재하거나 앞으로 존재할 것들 중에서 이미 그 내부에, 가상으로 혹은 실제로, 혹은 가상에서 실상으로 부상하거나 실상에서 가상으로 낙하하여, 현재해 있지 않은 것이라곤 없었다.
--- p.85
이들 중 누구도 머피에게 공포감을 안겨 주지 않았다. 그가 이들에 대해 즉각적으로 느낀 감정 중 가장 쉽사리 정체가 가늠되는 감정은 존경심, 그리고 스스로가 가치 없다는 느낌이었다. 조증 환자를 제외하고는 ― 이이는 빈 주머니와 청렴결백함에 맞서 승승장구한 모든 자수성가형 황금만능주의자의 전형에 가까웠다. ― 환자 전원이 자기 몰두에 빠져 우발적인 세계의 여러 우발적인 일들에 관해 철저한 무관심을 보인다는 인상이었는데, 이 무심함은 머피 본인이 선택했으나 그리도 드물게 달성해 온 바로 그 무심함이었다.
--- p.129
머피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체스 판을 챙겨 오락가락실의 조용한 한쪽에 판을 차리고는 첫수를 두었고 (머피는 언제나 백만 두었으므로), 잠깐 일을 하고 돌아와 엔던 씨의 응수를 확인하고 두 번째 수를 두고, 다시 일을 하러 갔다가 돌아와 다음 수를 두기를 종일 반복했다. 두 사람이 판을 앞에 두고 마주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었다. 엔던 씨는 이리저리 서성이던 발길을 1-2분 이상 멈춘 적이 없었고, 머피는 주어진 임무와 봄의 눈초리를 피해 1-2분 이상 할애할 엄두를 못 냈다. 두 사람이 이렇듯 상대 없이 각기 자기 수를 두고, 남은 시간에 기물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갈 길을 갔다.
그렇게 게임이 진행되다 보면 저녁이 되도록 딱히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는 양쪽의 실력이 막상막하라거나 게임을 진행하는 환경이 불리해서라기보다는, 두 사람 다 지구전을 펼치길 선호하는 데서 비롯한 결과였다. 실제로 교전을 벌이는 일이 얼마나 적은지는 이 게릴라전이 여덟아홉 시간 동안 지속된 시점에도 여전히 기물을 잃거나 상대의 킹을 공격조차 한 쪽이 없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머피는 바로 이 점을 흐뭇하게 여겼는데, 그가 보기에 이는 자기와 엔던 씨의 동질감의 표현이요, 그런 만큼 자기의 평소 성향대로 공격을 개시하는 데 있어서도 훨씬 신중해지는 듯했다.
--- p.143
“마침내 마지막으로 본 그의 모습 보이는 그는 보는 이를 보지 않고 그리하여 보는 이 자신의 모습”
--- p.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