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어요.
지금껏 내가 보았던 세상은 넓디넓은 세상의 작은 한 조각일 뿐이었어요.
동화를 쓰면서 다른 나라의 아이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많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여행을 하면서 일부러 다른 나라의 많은 아이들을 만났어요. 어린 나이에 가족을 돕기 위해 힘들게 일하는 아이들을 보고는 마음이 아팠어요. 물론 행복한 아이도 많았지만요.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죠? 세상 모든 아이들의 마음은 다 같았어요. 어렵게 일하면서도 희망을 찾고, 외로움 속에서도 사랑을 찾고,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주어진 생활 속에서 나름대로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는 많이 고마웠어요. 피부색이 다르고,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지만 아이들의 눈빛은 모두 맑았기 때문이에요.
--- 「머리말」 중에서
페스 가죽시장은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길 위엔 시큼하고, 쿰쿰한 냄새가 끊임없이 콧속을 누비고 다녔다.
외지에서 관광을 온 사람들은 시장 곳곳에 밴 그 냄새를 이겨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코에다 박하잎을 꽂았다. 박하잎의 화한 향이 콧속 깊이 퍼져 역겨운 냄새를 어느 정도 무디게 해주었다.
열두 살인 마호메트는 작년부터 가죽염색장에서 가죽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작업을 했다. 좋은 가죽을 만들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일을 마호메트가 하고 있었다.
가죽염색장에선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 가죽을 부드럽게 만들고 원하는 염색을 했다. 천 년이 넘도록 전통 방식을 지켜내고 있었다.
마호메트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마호메트와 같은 방법으로 가죽염색을 해서 전통을 이어왔다. 지금은 압둘 형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죽염색을 하고 있었다.
마호메트도 그들처럼 천 년을 이어가는 염색법을 익혀 가죽염색 장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페스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이곳을 단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지만 이 냄새만은 늘 낯설었다. 금방 벗긴 가죽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는 비둘기 똥이나 동물의 오줌으로 가죽을 씻어내야 했다. 그러니 냄새가 지독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이었다. 외지인도 아니면서 코에다 박하잎을 늘 꽂고 다니는 마호메트를 사람들은 별나다 했다.
--- p.9~10, 「박하잎 흩어지다-모로코 페스」 중에서
“후니, 엄마 어때?”
그렇지 않아도 새까만 피부가 쿠바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더 윤이 나도록 그을렸다. 그런 엄마에게 노란색 원피스는 완벽하게 잘 어울렸다.
후니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아프리카에서 왔다. 아주 오래전 가족들과 살았던 아프리카를 떠나 쿠바라는 나라에 처음 발을 디뎠다고 한다. 엄마는 늘 말했다.
“기죽을 필요 없어. 난 아프리카의 용감함을 닮았거든.”
어쩌면 엄마는 마음속으로 늘 그렇게 외칠 수도 있다.
‘난 용감해야 해. 아프리카의 딸이자 후니의 엄마거든.’
올드카, 낡은 자동차를 멋지게 개조한 쿠바의 관광차량을 운전하던 아빠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엄마는 아마 더 자주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엄마, 판타스티코!”(환상적이야)
후니는 일부러 더 큰 목소리로 엄마를 향해 웃었다.
--- p.27, 「말레꼰 비치-쿠바 아바나」 중에서
“아이구, 세상에, 이런 데서 어찌 산대……. 쯧쯧쯧.”
“아이고, 불쌍해라.”
관광객들은 입으로 줄곧 불쌍하다는 소리를 뱉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도저히 못 살겠다는 수상가옥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으로 끈질기게 쫓고 있었다.
뚜언은 그들의 ‘불쌍해 죽겠다’는 시선에서 엄마와 라이카를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어느덧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호수 끝은 불붙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서서히 톤레사프호수에도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손에 든 핸드폰으로 쉴 새 없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에겐 수상가옥에 있는 모든 것들이 신기해 보였다.
어둠이 깔린 호수 위에 셔터 불빛이 강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뚜언의 집에도 강한 불빛이 쏟아졌다.
뚜언은 손바닥으로 불빛이 더 이상 집을 비출 수 없도록 막았다.
순간 뚜언은 집을 어둠으로 몰아넣고 싶었다.
그 누구도 엄마와 라이카와 뚜언을 이렇게 강한 빛으로 비추진 못하도록.
--- p.65~66, 「맹그로브숲의 흔치 않은 일-캄보디아 시엠립」 중에서
내가 뭐라고 얘기해도 엄마는 듣지 않았다. 엄마에게 중요한 건 단연코 플레트나였다. 앞으로도, 무슨 일이 있어도 쭉 그럴 것이다.
엄마가 생각하는 나는 플레트나를 이을 후계자였다.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었다.
그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럼 엄마가 생각하는 멜라니아는 뭘까?
플레트나도 탈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냥 여자아이였다.
멜라니아도 안됐고, 나도 안돼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SANYE(꿈)’
생각만 해도 너무 멋있는 말이라서 내가 노트 속에 꼭꼭 적어둔 말이다.
멜라니아도, 나도 자신의 꿈을 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되어야 했다.
‘내가 제빵사가 될 수 있을까?’
엄마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멜라니아는 플레트나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까?’
엄마는 꿈에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현관 밖으로 쫓겨난 나는 느릿느릿 호수를 향해 가고 있었다.
엄마는 못미더운지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커다랗게 소리쳤다.
“딴 생각 말고 플레트나나 잘 몰아!”
그러고는 창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
--- p.128~129, 「네 꿈을 펼쳐라-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중에서
이불 속에는 커다란 베개 두 개가 나란히 웨이 대신 누워 있었다.
“아니, 짱찌엔! 웨이 어디 갔니?”
“글쎄요. 저도 이제 막 일어나서…….”
왕차오 아저씨는 큰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아니, 넌 동생이 어디 갔는지도 모르냐?”
‘동생은 무슨 동생…….’
난 속으로 중얼거렸다.
웨이와 나는 희한하게 같은 날 서커스 극단 앞에 버려졌다.
이름도 없고, 나이도 모르고, 부모도 모르고…….
그렇게 서커스단 식구가 된 우리였다. 그나마 좀 덩치가 컸던 내가 형이 되고, 웨이가 동생이 되었다.
불행 중 불행이었다. 웨이랑 형제가 된 건 말이다.
웨이란 녀석은 은근히 희한한 녀석이었다. 왕차오 아저씨도 알지 못하는 못 말리는 구석이 이 녀석에겐 있었다.
하루는 얼굴도 모르는 엄마 얼굴을 볼 수 있다면서 밤새도록 화장실에서 안 나온 적도 있었다. 밤에 화장실에서 불 끄고 있으면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대나 어쨌대나…….
진짜로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음부터 엄마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엄마 얼굴 봤다고 하면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분명한 건 웨이는 아직도 엄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근데 짱찌엔. 내가 머리에 돼지기름 발라줄까?”
“뭔 소리야?”
“크. 머리에 돼지기름 바르고 도자기 돌리면 힘도 안 들고 대빵 잘 돌아간다.”
어디서 들었는지 웨이는 비밀이라며 말해주었다.
웨이와 나는 그날 주방에서 몰래 훔친 돼지기름을 바르고 공연을 하다 도자기를 두 개나 깨뜨려 먹었다.
“어, 이상하다. 진짜 잘 된다던데…….”
--- p.136~138, 「도자기 돌리는 아이-중국 베이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