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에 걸린 시각장애인, 부모에게 버려지고 첫사랑도 잃은 겜블러. 극단적 인물을 이해해낸다면, 보편적인 인물은 이해하기가 더 쉽지 않을까? 세상사가 그런 것처럼. 나는 쓰기를 작심했다. 원작을 뛰어넘고 말고는 관심 밖이었다. 이들의 처지를 온몸으로 공감하는 게 목적이었다. 이후, 작품을 쓰는 내내 나는 스토리를 만드는 것보다 내 가치관과 싸우는 게 더 힘이 들었다. 극의 갈등은, 극단적으로 흘러야 긴장감이 도는데, 그 당위를 찾는 과정은 진흙탕 싸움 같았다.
그냥 지가 죽지, 왜 남의 돈을 노리고, 사기를 쳐! 뇌종양에 걸려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지, 왜 죽음을 생각해! 왜 저만 아파, 얘들은 신문도 뉴스도 안 보나, 왜 지들 문제에만 코가 빠져 있나! 사랑하면 그냥 사랑하지, 대체 뭐가 문제라 괴로워!
그러다 실오라기를 발견하듯 찾아낸 건 내 지난 청춘의 시간이었다. 나는, 그때 분명 나만 아팠다. 엄마가 생계에 나자빠져도 나는 당장 친구들과 술 한잔할 돈이, 골방에서 필 담뱃값이 필요했다. 나는 그때 뭐든 극단적이었고, 그래서 내 삶은 드라마틱했다. 가출, 끝없는 죽음에 대한 유혹과 때론 시도, 사랑을 농락하고, 기만하고, 그래서 나도 다치고, 상대도 다치고, 상처만 가득했던 시간들. 극단적이고 드라마틱한 인생을 나 자신도 살아낸 것이다. 만약, 그 시간이 나에게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결코 없었으리라. 그렇게,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내가 끝없이 얘기를 나눠야만 한 줄이라도 쓸 수 있었다.--- 「작가의 말」
씬 44. 한강변도로, 밤.
오 영 : (걸어가면)
오 수 : (차에서 나와, 영이의 팔을 잡아, 차에 밀쳐 기대게 하는)
오 영 : 이거, 놔! (하며, 울며, 팔을 빼려 하면)
오 수 : (영의 양팔을 두 손으로 잡고, 너무 맘 아픈, 눈가 붉어지는, 애써 담담히) 난 지금이라도 널 죽일 수 있어. 내가 널 죽일 맘이 있었다면, 돈이 필요해 너한테 왔다면, 기회는 여러 번 있었어.
오 영 : (고개 들어, 보는, 눈물이 흐르는)
오 수 : (맘 아픈, 참고)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이 달려오던 그 순간, 그리고 엊그제 강가, 바닷가, 그리고 지금 여기. 앞 못 보는 널, 죽여달란 널, 맘만 먹으면 언제든... (얼굴을 잡아, 자 신을 보게 하며, 진심과 거짓이 섞여, 복잡하고, 맘 아픈) 내가 해치우기에.. 넌 너무 쉬 워.
오 영 : (울며, 맘 아픈) 내가 널 믿어도.. 된다고.. (주르륵, 주저앉으며) 해줘.
오 수 : (맘 아픈, 눈물 나는, 막막한)
오 영 : 내가 오빠, 널 믿어도 된다고.. 난, 내 옆의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어.. 제발 오빠 너만 은.. 내가 믿어도 된다고, (하며, 엉엉 우는)
오 수 : (무릎 꿇고, 맘 아프게 꼭 안는, 눈물을 참는, 자신도 뭐가 뭔지 모르겠는) 난.. 믿어도.. 돼, 난 믿어도 돼, 영이야.
그런 두 사람 보여주고,
--- 「6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