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녀가 다음에 한 말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맞아요. 그래서 우리 딸이 미니멀리스트로 지내요. 걔도 나한테 계속 그래요, 이 많은 걸 다 이고지고 살 필요는 없다고.”
‘이 많은 걸 다 이고지고 살 필요는 없다.’
고개를 돌려 오전을 할애한 노동의 결실을 바라보는데 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지저분하게 먼지를 뒤집어쓴 물건들이 차고 밖에 잔뜩 쌓여 있었다. 뒷마당에서 계속 혼자 놀고 있는 아들이 문득 시야에 들어왔다. 이 두 장면이 나란히 내 심장을 파고들었고 나는 그동안 느꼈던 불만의 근원이 뭐였는지 난생 처음으로 깨달았다. 바로 차고 밖에 쌓여 있는 그 잡동사니들이었다. 소유가 곧 행복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거야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누구든 그렇지 않을까? 적어도 우리는 물질적인 것이 진정한 충족감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차고 밖에 쌓여 있는 잡동사니를 바라보던 바로 그 순간, 또 하나의 깨달음이 나를 강타했다. 소유를 통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로 인해 행복의 근원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 「1장. 작은 삶을 산다는 것」 중에서
‘작은 삶’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금욕주의,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벽, 가구가 없기 때문에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뭐 대부분 이런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결핍을 위한 결핍 훈련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얼마나 재미없고 무미건조한가! 누가 그런 삶을 살고 싶을까. 미리 강조하자면 내가 얘기하는 작은 삶은 절대 그런 게 아니다! 나에게 있어 ‘작은 삶’은 그와 정반대다. 자유이고 평화이며 즐거움이다. 새로운 가능성을 담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신경을 분산시키는 요소들을 모두 제거한 정말로 ‘속 시원한’ 공간이다. 나는 작은 삶, 그 자체보다 가장 바람직한 삶을 살 수 있는 소유의 수준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데 더 관심이 많다. 선진국의 경우 98퍼센트의 사람들이 필요한 것 이상의 과도한 짐들을 짊어지고 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적인 측면에서 작은 삶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 「2장. 소중한 것에 집중하라」중에서
광고업계가 인간의 이기적인 소유욕을 자극하는 데 워낙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요즘은 소비와 행복이 사실상 같은 말로 간주되고 있다. 삶의 목표는 자기만족이고 뭔가를 사들이는 것이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듯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냥 그렇겠거니 생각하고 만다. 이런 시각이 얼마나 팽배한지는 길거리마다 줄줄이 늘어선 상점들만 봐도 알 수 있다.
한 나라의 행복지수를 국내총생산, 무역수지, 소비심리, 물가상승률로 측정한다. 우리나라는 구석구석, 심지어 국립공원까지도 상업화되었다. 어떤 식으로 튼튼한 경제를 약속하는지를 기준으로 정치 지도자를 선출한다. 아메리칸드림은 은행 잔고, 차의 브랜드, 집의 크기로 결정된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이 세대의 가장 훌륭한 지식인들 또한 우리를 전보다 더 탐욕스러운 소비자로 만들기 위해 온갖 장치를 고안하고 있다. 뭔가를 새로 구입하기가 요즘보다 더 쉬운 적이 없었다. 버튼 하나만 클릭하면 그만이다. 요즘은 개인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난 덕에 타깃 마케팅으로 무장한 기업들의 상술이 더욱 막강해졌다. 그들은 우리의 나이, 성별, 결혼 여부뿐 아니라 자산, 개인적인 취향, 쇼핑 습관, 좋아하는 책과 영화까지 꿰뚫고 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돈을 쓰는지 상세히 알고 있다. 그들은 스마트 폰이나 인터넷 검색 기록을 통해 우리의 모든 정보를 수집, 기록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무기 삼아 우리의 약점을 공략한다. --- 「4장. 소비를 강요하는 세상」중에서
과학기술은 빠르게 변화한다. 자고 일어나면 신제품이 요란한 팡파르와 함께 출시된다.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바꾸어놓겠다는 약속이 어찌나 그럴 듯하게 들리는지 우리는 새로운 기기가 등장할 때마다 사고 또 산다. 자연히 예전에 샀던 기기는 방치된다. 전자기기가 쓰레기처럼 쌓이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일까.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기술적인 노후와 기능적인 노후를 구분한다. 기존의 것보다 기능면에서 우월한 기기가 출시되면 기술적인 노후다. 예를 들어 내가 스마트 폰을 샀는데 6개월 뒤에 같은 제조업체에서 신제품을 출시하면 그것이 기술적인 노후다. 반면에 기능적인 노후는 기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예컨대 소프트웨어가 고장 났는데 생산이 중단돼 고칠 수 없다면 그것은 기능적인 노후다.
우리는 대부분 기술적인 노후 현상이 벌어지면 당장 새 기기를 사고 싶어 한다. 지난달에 신제품을 장만했는데 한 달 뒤에 더 끝내준다는 제품이 출시되면 그걸 또 사고 싶어 한다. 나는 기능적인 노후 현상이 벌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최신제품을 장만해야만 할까? 내가 쓰는 제품이 신상인지 아닌지 누가 신경이나 쓸까? --- 「7장. 줄일 수 없다는 거짓말」중에서
작은 삶을 선택한 사람들은 친구, 직장동료, 부모 등 여러 회의론자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평소에는 가장 열렬하게 응원을 해주었던 사람이 가장 엄청난 회의론자로 돌변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배우자가 당신의 달라진 모습에 호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같이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작은 삶의 무대가 되는 주거공간과 살림을 공유하는 사이니 말이다. 먼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작은 삶은 무엇이고 거기에 왜 매력을 느끼는지. 작은 삶이 당신에게 어떤 식으로 이득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지.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사랑하고 작은 삶이 그에게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권하려고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런 다음 상대방이 하는 얘기를 귀담아듣는다.
이런 대화는 시작하는 시점과 방식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잡동사니 이야기는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 꺼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처럼 들리기 십상이다. 옷장이 터질 지경이거나 서랍이 닫히지 않아 짜증이 났을 때는 이런 얘기를 꺼내면 안된다. 커피를 마시거나 저녁을 먹으면서 요즘 깨달은 사실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을 때 작은 삶이 당신의 가정에 어떤 으로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는지 이야기한다. 항상 좋은 점과 긍정적인 변화를 강조한다.
---「10장. 작은 삶의 동반자, 가족」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