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좋~다고 생각하며 마시고 또 마시고, 권하면 반드시 마시고 권하지 않더라도 자작해서 마시고 말술은 더욱 거부하지 않는 생활을 30년에 걸쳐서 계속해 왔다. 물론 실수도 했다. 스승뻘 되는 사람한테 대들다가 파문을 당하기도 했다. 친구와 별거 아닌 일로 말싸움을 하는 바람에 오랜 세월 쌓아온 우정에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초밥집에서 떡이 될 정도로 거나하게 취해서 “너 이 새끼. 뭐 이따위로 초밥 만들어! 내가 누군지 알아? 나는 말이지 파리의 일본 요리 전문점에서 3일간 배운 사람이라고. 비켜! 내가 한 솜씨 보여주지!”라고 말하며 카운터를 훌쩍 뛰어넘어 주방으로 들어가 초밥을 만들었다. 정말 목숨이 몇 십 개 있어도 부족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짓을 닥치는 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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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면 말이다, 어느 날, 아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2014년 12월 말,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랑해 마지않아 계속 마셔온 술을 끊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갑작스럽게 떠오른 순간 나는 내 이성을 의심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너,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냐?” 그 정도로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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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 정리하자면 술의 즐거움은 인생의 자산이 아니며 즐거움이라고 부르던 것이 실은 부채라는 사실을 한 수 가르쳐 줬다, 이 말이지. 이 생각을 발전시키면 반드시 인생 자체의 균형이라는 지점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즐거움의 반대쪽에는 반드시 고통이 있다. 이것은 절대적이다. 태어나면 반드시 죽듯이. 삶이라는 자산의 반대쪽에는 반드시 죽음이라는 부채가 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동안에 즐거움이 고통을 조금이나마 웃돌게 하지 않으면 오로지 고통스러워지기 위해 살고 있다고 느끼게 되지. 그런데 말이야, 적어도 음주에만 한해서 계산기를 두들겨 보면 지금까지 봐 왔듯 마이너스가 너무 커서 고통이라는 부채가 늘어날 뿐이라는 건 명확하다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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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에게 있어서 술을 마시는가 안 마시는가 혹은 마실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인생을 좌우하는, 이른바 사활이 걸린 문제라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술을 마시려고 다양한 각도에서 꼼수를 생각하고 궁리를 짜낸다. 그런데 금주 선언을 해 버리면 궁리고 나발이고 술을 아예 마실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처음부터 그런 바보 같은 선언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므로 술꾼이나 주당은 쉽게 금주 선언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말이다. 술꾼도 어떨 때는 명쾌한 혹은 불명쾌한 다양한 이유로 술을 그만 마셔야겠다고 심각하게 생각한다. 그럴 때 술꾼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금주 선언보다 한 단계 아래인 절주 선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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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매일 즐겁게 생활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오늘 하루, 별로 즐겁지 않았다. 먹고 살 돈을 버느라 정신없이 지내는 바람에 나를 위한 시간이 단 1초도 없었다. 인간은 24시간을 하루로 살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하루 중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나를 위한 시간에서 가장 손쉽고 간편하고 효율적인(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음주다. 그러나 우리들은 부당하게 권리를 빼앗긴 것이 아니다. 왜냐면 그런 권리는 애초부터 없었으니까. 법으로 행복 추구 권리를 인정받고 있지만 행복의 권리를 저절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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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씨니까 하며 마시고, 이런 시절이니까 하며 또 마시고 눈을 보며 마시고, 꽃을 보며 마시고, 축하한다고 마시고, 죽음을 슬퍼하며 마시고, 이유를 만들고, 무슨 일이 생기면 핑계 삼아 변명 삼아 마신다. 아무 일도 없을 때는 마시지 않아야 하지만 그런 일은 결단코 없으며, “오늘은 아무 일도 없으니까. 어쩔 수 없군. 마셔야겠어.”라며 마신다. 마시면 취한다. 취하면 즐거워진다. 즐거우면 마시고 싶어지기 때문에 더 마신다. 그러면 더 취한다. 그래서 더 즐거워지기 때문에 더 마신다. 무한 반복되고 꼭지가 돌 때까지 마신다. 꼭지가 돌고 한계점에 도달하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폭발했을 거야.
--- p.213p
반사적으로 “이렇게 괴로운 기분을 푸는 방법은 술을 마시는 것뿐이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지만 “아, 맞다, 나 술을 끊고 있지.”라는 현실을 떠올리고 절망한다. 이것을 7초에 4번씩 반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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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면, 정신적 여유다. 다른 말로 하면 여백 정도라고나 할까. 놀이, 라고 해도 좋겠다. 지금까지는 그런 여유, 여백이 없었기 때문에 강한 자극을 목적으로 빠른 속도로, 그리고 최단거리로 가고 있었지만 여유, 여백이 생기면서 천천히, 가끔 멈추기도 하면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랬더니 그곳에 의외의 기쁨과 놀라움이 있었다. 꽃과 풀이 나 있고, 비 냄새가 나고, 사람의 사소한 표정 속에서 사랑과 슬픔이 보였다. 서둘러서 가면 못 보고 지나칠 것 같은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야말로 행복이라는 사실을 겨우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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