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포함해서 60명의 아라한이 살아있었을 때, 붓다는 성스러운 법을 전파하기 위해 아라한들을 여러 방향으로 보내며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신성하거나 인간적인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롭다.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신성한 속박이나 인간적인 속박,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롭다.”
“비구들이여, 세상에 대한 자비심을 갖고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신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앞으로 나가라… 각자 한 방향씩 가라. 비구들이여, 법을 설명할 때 처음이든 중간이든 끝이든 항상 형식과 정신을 훌륭하게 지켜라. 완전하고 순수한, 신성한 삶에 대해서 말하라.”
“아직 덜 불순하지만, 법을 듣지 못하면 나중에 타락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에도 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도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쎄나니가마에 있는 우루벨라로 갈 것이다.”
--- p. 53
업은 행동이며, 결과는 그 행동이 가져오는 반응이다. 그것이 원인과 결과이다. 망고 씨앗이 업이고, 그 나무에서 생기는 망고 열매는 결과와 같다. 나뭇잎과 꽃들은 불가피한 결과들이다.
우리가 씨를 뿌린 대로, 우리는 이생에서든 내생에서든 추수를 한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추수하는 것은 우리가 과거나 전생에 뿌린 씨앗인 것이다.
업은 자연스런 법칙이다. 그러나 법칙을 만든 사람이 존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중력의 법칙 등과 같은 자연법칙은 그 법칙을 만든 사람이 필요 없이 본래 존재하는 법칙이다. 업의 법칙도 그 법칙을 만든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법칙을 지배하는 외부의 독립적인 사람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 법칙은 저절로 작용한다.
업 안에는 그에 따른 결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내재한다. 원인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결과는 원인을 설명한다. 씨앗은 열매를 생산한다. 열매는 씨앗을 표현한다. 그 둘은 서로 관련되어 있다. 업과 결과도 서로 관련되어 있다. 결과는 이미 원인 속에서 꽃을 피고 있다.
--- p. 110
《법구경》 에는, “갈망에서 슬픔이 나오고, 갈망에서 두려움이 나온다. 갈망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에겐 슬픔이 없는데 두려움이 어디 있겠는가?”라는 말이 나온다.
갈망과 집착이 있으면 고통이 있다. 갈망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가장 거친 형태의 갈망으로, 모든 감각적인 즐거움에 집착하는 것이다. 둘째는 영원주의와 연관된 즐거움에 집착하는 것이며, 셋째는 허무주의와 연관된 즐거움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러한 갈망은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갈망에 이끌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큼 강한 힘을 지닌 팔정도(八正道)를 실행해야 한다.
가장 거친 형태의 갈망이 약해지는 것은 일래과의 경지에 도달한 때이며, 근절되는 것은 불환과의 경지에 도달한 때이다. 미묘한 형태의 갈망이 근절되는 것은 아라한과의 경지에 도달한 때이다.
세 번째 신성한 진리는 고통이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며, 그것이 최상의 기쁨인 닙바나(涅槃)이다. 모든 형태의 갈망이 완전히 근절되어야만 그것을 얻을 수 있다.
네 번째 신성한 진리는 고통을 소멸시키도록 이끄는 길이다. 그것이 붓다의 신성한 여덟 길(八正道)이다.
--- p. 141
아쏘까는 붓다의 말에 감동을 받아서 불교도가 되었다. 개종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점차 개심했다. 그의 인생관은 완전히 변했다. 그는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는 올바른 통치와 문화적인 통치를 선호하게 되었다. 그는 인생의 후반기에 매우 믿음이 깊고 올바른 군주가 되었다. H. G. 웰즈는 이렇게 표현한다. “역사를 가득 메운 수만 명의 군주들 가운데 아쏘까라는 이름은 별처럼 빛난다. 러시아로부터 일본에 이르기까지 아쏘까의 이름은 오늘날까지도 칭송된다. 중국, 티베트, 불교가 사라진 인도까지도 아쏘까의 위대한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콘스탄틴 대제나 샤를마뉴 대제의 이름보다 아쏘까에 대한 기억들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있다.”
니그로다 행자를 만난 뒤 불교도가 되기는 했지만, 아쏘까는 왕국을 넓히려는 야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모든 전쟁을 포기하고 진정한 불교도가 된 것은 깔링가 전쟁 후였다. 그는 승리한 뒤에 전쟁을 포기한 사람으로 기록된 유일한 군주라고 웰즈는 말한다.
--- p. 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