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레아가 그린 그림들이 내게는 제2의 천성처럼 되었다. 악기 연주자가 가수를 위해 반주하듯, 레아의 그림을 위해 반주하고 싶었다. 레아에게 그녀가 그린 그림 옆에 우리에 관해, 우리 부부의 삶에 관해 내키는 대로 글을 쓰겠다고 제안했다. 그 책을 [남녀 한 쌍이 지나간다]로 부르자고 넌지시 운을 떼자 레아는 이렇게 받아쳤다. [남녀 한 쌍이 지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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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그런 남녀 관계는 모두 수수께끼이며, 부서지기 쉽다는 것. 사랑은 증오와 섞이고, 애정은 권태와 섞이니 세상만큼이나 오래된 사랑의 약속이란 것은 희극인 동시에 비극이다. 아무런 규칙도 정해져 있지 않은 이 책에서는, 이미지와 문장이 섞이고, 때로 우리끼리 나눴던 이야기가 솟아오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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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사랑한다. [부부다운] 사랑으로, 20년도 더 된 사랑으로. 우리는 서로 변함없는 사랑을 서약했다. 서약은 위반하는 법. 우리에게 남은 것은 충실성이다. 우리는 상대에게 기대어, 상대의 품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육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서로에게 싫증이 났다. 우리는 서로에게 녹아든, 이 표현에 담긴 그 모든 우미함과 속박까지 포함하여, 서로에게 녹아든 부부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질투를 느끼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질투를 느낀다. 모든 남자가 그녀는 향한 유혹이고 모든 여자가 내게 그렇다. 바로 이 점이 질투의 위대함과 쩨쩨함을 만들어 낸다. --- p.14
레아는 음악을 좋아하고, 나는 독서를 좋아한다. 레아는 움직이기를 좋아하고, 나는 의자에 못 박힌 듯 앉아 있기를 좋아한다. 레아는 밖으로 나가기를 좋아하고, 나는 안으로 들어가기를 좋아한다. 레아는 남자를 좋아하고,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 레아는 물에 떠다니기를 좋아하고 나는 가라앉기를 좋아한다. 레아는 빈둥거리기를 좋아하고, 나는 일하기를 좋아한다. 레아는 고독을 무서워하고, 나는 고독을 청한다. --- p.70
레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레아가 청소년이었을 때 갈라섰다. 부모들은 헤어지면서 그들이 원하든 않든 간에 자식에서 상처를 준다. 가장 흔하게는, 아버지의 무력하고 분노 섞인 의견을 누르고 아이들은 맡는 것은 어머니이다. 그러기 마련이다. 레아는 이혼한 부모의 딸이고 난, 아버지가 없는 아이였다. 시냇물이 산자락에서, 커다란 나무들이 흔들이고 이끼 낀 바위들이 굴러다니는 벌판 한 자락에서 머물 곳을 찾아내듯, 레아는 지신의 존재를 만들어냈고, 반면에 난 머릿속에서 그려 낸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차가운 숨결로 위장한 침묵에 잠겨 굳어 버렸다. --- p.129
처음부터 바티스트와 레아 사이에서는 고성이 오간다. 그건 표피적이다. 두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언짢아한다. 바티스트가 세무사라는 직업인으로서는 비정형적인 인물로 통한다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비타협적이고, 까다롭고, 보인은 모르고 있지만 [난 여자들을 좋아해, 난 늘 여자들과 일했어. 게다가 서른 명 이상의 여자들을
통솔했는데, 썩 잘해냈지] 식의 이야기를 하는 여성 혐오자이다. 또한 레아와 마찬가지로 쉽게 화르르 끓어오른다. 레아가 그의 권위주의에 분개하며, 그는 뿌루퉁해서 뭔가 다시 말다툼을 일으킬 말을 중얼거린다.
--- p.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