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재적소'라는 말을 실감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미치오처럼 현장을 지휘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뒤치다꺼리를 잘하는 나 같은 삶도 필요하다. 에노처럼 무대 뒤의 일을 묵묵히 봐주는 사람이 필요한가하면 스크린에 배우로 나서야 비로소 특징을 발휘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서러의 '차이'를 '특징'으로 활용해서 멋진 영화를 만들었던 우리. 나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영화를 찍은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선전용 팸플릿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우리 모두가 다음 세대에 전해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삶의 존귀함, 인간과 인간의 소중한 만남......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그 문제를 되짚어 나가는 가운데 지금 까지 알지 못했던,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이영화를 통해 깨닫기 바란다.'
--- p.172-173
'장애인은 가엾다'는 고정관념이 아직 널리 퍼져 있다. 오쿠보의 외국인 여성도, 다카다노바바 역에서 만난 무서운 사나이도 틀림없이 나를 '가엾다'고 여기고 친절을 베풀었을 것이다. 물론 '가여운 장애인'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개중에는 성격까지 나빠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장애인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가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가 장애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원래 그런 사람이 우연히 장애인이 되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알맹이다.
--- p.264
'장애는 개성이다' 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내가 듣기에는 어딘지 낯간지럽다. 정상인에게는 단순한 강조로 들리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어렸을 때는 '장점'이라고 파악했던 내 장애가 지금은 단순한 '신체적 특징'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뚱뚱한 사람과 마른 사람,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 피부가 검은 사람과 흰 사람, 그 중에 손과 발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따라서 단순한 신체적 특징을 이유로 이것저것 번민할 필요는 없다.
--- p.273
소중한 나를 위해
'익숙해지는 것'과 함께 장애인에 대한 마음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남을 인정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장애인이 살기 좋은 사회를 이루어 가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것도 남을 인정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다양한 민족이 한 국가를 이루어 생활하는 미국에서는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부정을 시작하면 끝이 없다.그래서 장애인과 같은 '소수파'에 대해서도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장애를 그 사람의 '특징'으로 받아들인다.
--- p. 280
또한 어머니가 날 보는 순간 기절할 것에 대비해서 병실까지 준비해 두었다. 아버지와 병원, 그리고 어머니를 둘러싼 긴장감은 그렇게 높아만 갔다. 그러나 '모자 상봉의 그 순간'은 정말 상상 밖이었다.
'어머, 귀여운 우리 아기...'
대성통곡을 하다가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질 것을 염려한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어머니의 잎에서 흘러나온 첫마디였다. 비록 팔과 다리는 없었지만 배 아파 낳은 아들, 한 달이나 만날 수 없었던 아들을 비로소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이 어머니에게는 무엇보다 더 컸던 것이다.
--- p.머리말
드디어 모자간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날이 찾아왔다. 어머니는 그날 병원으로 오던 중에야 비로소 내가 황달이 아니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곁에서 보기 민망할 정도로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차마 팔과 다리가 없다는 말은 하지 못한 채 그냥 몸에 약간의 이상이 있다고만 했다. 일단은 직접 만나보게 한 후에 사태를 수습하자는 생각에서였다. 또한 어머니가 날 보는 순간 기절할 것에 대비해서 병실까지 준비해 두었다. 아버지와 병원, 그리고 어머니를 둘러싼 긴장감은 그렇게 높아만 갔다. 그러자 '모자 상봉의 그 순간'은 정말 상상 밖이었다. '어머, 귀여운 우리 아기......' 그랬다. 어머니가 나를 만나 처음 느꼈던 감정은 '놀라움'이 아니라 '기쁨'이었다.
머리말 중에서
남을 인정하는 마음의 출발점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내가 '마음의 장벽 없애기'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나에게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그 사람밖에 할 수 없는 일' 이 있다. '자신의 역할' 을 젊었을 때 깨닫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 들어 깨닫는 사람도 있다. 개중에는 죽음을 앞두고야 '아, 내 역할은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깨닫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경우, '장애' 라는 알기 쉬운 표식 때문에 내 역할을 조금 일찍 깨달았을 뿐이다. 깨닫는 시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누구나 반드시 '자기의 역할' 을 갖고 있다.
--- p.281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100미터를 다달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카 선생님의 용기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내가 달리기 경주에 참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엉덩이를 질질 끌어가며 달리는 것을 본 학부모들이 왜 저런 애를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달리게 하는거지? 정말 가여워서 못보겠어. 너무 심한 것아냐? 라며 불평할지도 모르기 대문이다. 그런생각이야 말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식이라고 할수 있다.장애인을 보고 가엾게 여기는 우리나라에선 도리가 없는 일이다. 오카 선생님은 그런 일반적인 견해에는 의연하셨다. '중요한것은 관객의 기분이 아니다.'
--- p.77-78
그때 친구들은 '저 애는 장애아라서 불쌍하니까 같이 놀아 주자'는 생각으로 이런 룰을 만들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같은 반 친구들 중의 하나로서 서로 싸우기도 하고 놀기도 했다. 나 또한 그것을 너무도 '당연한 건'으로 받아들였다.
--- p.44
"몇 개월 동안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문제가 재활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네. 지진대책과 지역교육문제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접근하기가 쉽지는 않아. 결국 모든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어야 한다는 결론이지. 그래서 우리는 '생명의 거리 만들기' 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다각적인 방향에서 움직일 생각이야. 그 중의 하나로 '마음의 장벽 없애기(barrier free)' 이름 아래 장애인과 고령자에 대한 대책도 적극적으로 세워 볼 생각인데, 이것만큼은 당사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면 전혀 의미가 없어. 그래서 자네 힘을 꼭 빌리고 싶은데, 도와주겠나?"
귀를 의심했다. '장애인인 나만이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고 결론 내린 것이 고작 어젯밤의 일이었다. 정확하게 7시간 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느닷없이 '실천의 장(場)' 이 주어지다니. 이 흐름은 무엇일까. 무서운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특별히 종교를 믿는 것도 아니면서 그 순간 나는 신의 존재를 확신했다.
"영광입니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내가 대답하고 있었다. '마음의 장벽 없애기' 란 '장애인과 고령자에게 장벽이 되는 것(배리어)을 제거한다(프리)' 는 의미다. 그 동안 이런 단어가 있었는지조차 몰랐던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늘이 내려 준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대학생활의, 아니 내 인생의 막이 새롭게 열리는 순간이었다.
--- pp.223-224
"몇 개월 동안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문제가 재활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네. 지진대책과 지역교육문제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접근하기가 쉽지는 않아. 결국 모든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어야 한다는 결론이지. 그래서 우리는 '생명의 거리 만들기' 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다각적인 방향에서 움직일 생각이야. 그 중의 하나로 '마음의 장벽 없애기(barrier free)' 이름 아래 장애인과 고령자에 대한 대책도 적극적으로 세워 볼 생각인데, 이것만큼은 당사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면 전혀 의미가 없어. 그래서 자네 힘을 꼭 빌리고 싶은데, 도와주겠나?"
귀를 의심했다. '장애인인 나만이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고 결론 내린 것이 고작 어젯밤의 일이었다. 정확하게 7시간 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느닷없이 '실천의 장(場)' 이 주어지다니. 이 흐름은 무엇일까. 무서운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특별히 종교를 믿는 것도 아니면서 그 순간 나는 신의 존재를 확신했다.
"영광입니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내가 대답하고 있었다. '마음의 장벽 없애기' 란 '장애인과 고령자에게 장벽이 되는 것(배리어)을 제거한다(프리)' 는 의미다. 그 동안 이런 단어가 있었는지조차 몰랐던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늘이 내려 준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대학생활의, 아니 내 인생의 막이 새롭게 열리는 순간이었다.
--- pp.223-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