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들은 각기 자신의 시대에 중요했던 사회문화적 이슈들을 그 시대에 재미있다고 여겨졌던 방식에 따라 풀어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연히도 그 작품들의 줄거리가, 온갖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내러티브에 익숙해진 오늘날 한국 독자들에게 재미있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명작들은 그 재미와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 「들어가는 글 | 내 삶에 새겨진 한 권의 고전」 중에서
이 세상의 수많은 『데미안』 독자들은 어쩌면 모두 인생의 중요한 한순간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은 그 어떤 다른 설명 없이도 죽어가는 순간에 『데미안』을 읽고 있었다던 친구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데미안』은 책장 속에 꽂혀 있는 여러 소설들 중 하나가 아니라 삶의 가장 개인적인 부분에 연결되어 있는, 어쩌면 지나간 삶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 「1부 | 그 책은 나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 헤세 『데미안』」 중에서
『데미안』은 구체적인 ‘내면’의 뜻과 무관하게, 삶의 의미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모든 이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가 『데미안』을 읽고 감동하는 시기가 보통 사춘기이자 방황의 시기, 즉 모든 가치를 부정하거나 모종의 이유로 상실했음에도 이를 대체할 새로운 무언가를 아직 찾지 못한 시기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1부 | 그 책은 나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 헤세 『데미안』」 중에서
이 소설이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여러 해석의 층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놀라운 것은 각각의 층위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이 서로 방해하거나 모순을 일으키지 않으며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양파껍질을 벗기듯 한 꺼풀씩 벗겨가며 즐길 수도 있고,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감상할 수도 있다. --- 「2부 | 단 한 문장도 허투루 쓰인 것은 없다 - 괴테 『젊은 베르터의 고통』」 중에서
작품과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또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들을 함께 동원하여 작품을 해석해보고, 처음 읽을 때 해독할 수 없었던 내용을 하나씩 알게 되어갈 때 느끼는 즐거움은 무척 크다. 최종적으로 작품 전체의 의미가 보이고, 작가의 의도를 깨닫게 될 때 느끼는 기쁨은 정서적 감동과는 전혀 다른, 지적인 울림이 큰 즐거움이다. --- 「3부 |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 같은 책 - 호프만스탈 「672번째 밤의 동화」」 중에서
카프카의 작품들은 정답에 해당하는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해석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카프카의 작품은 셀 수 없이 많은 해석을 유도한다. 단지 그중 어떤 하나가 정답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카프카의 작품을 해석한다는 것은 카프카의 작품을 올바로 이해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작품을 즐기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 「4부 | 어느 날 찾아온 기괴하지만 특별한 세계 - 카프카 「변신」 「시골의사」 」 중에서
지적인 활동을 필요로 하는, 쉽게 소비할 수 없는 문학작품들을 즐기게 되는 계기는 개인마다 다르다. 누구는 어떤 소설의 한 문장, 한 장면에 매혹되어 서양 고전소설에 빠지고, 또 누구는 작가의 매력에 마음을 빼앗겨 그의 소설들을 탐독하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특정 시대, 특정 국가의 사회와 문화에 흥미를 느껴 그 시절의 문학작품들에 흥미를 느끼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나처럼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제멋대로 감동을 느끼고 고전문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