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텔리의 지휘는 이탈리아인답게 열정적이고 격렬하며 생동감이 넘쳤다. 그러면서도 뛰어난 분별력으로 자신의 정열을 절제할 줄 알았다. 그는 비록 이탈리아인지만 독일 음악에도 아주 뛰어난 해석을 보였다. 특히 베트벤과 브람스, 멘델스존 같은 독일 고전 낭만 음악에는 독특하고 견실한 지휘로 독일계 음악인들을 능가하는 명연주를 선보였다. (중략) 귀도 칸텔리의 음악을 들을 때면 나는 항상 밝게 타올랐다가 일찍 사라진 짧은 불꽃과 같았던 그의 인생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남긴 음반들은 어쩌면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이미 다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삼십대의 그는 브람스를 지휘하면서 그것이 모두 그 곡의 처음이자 마지막 녹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그의 정연(井然)한 브람스를 들을 때마다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그의 이름은 오늘도 나에게 귀도(鬼盜), 거부할 수 없는 마음의 도둑으로 다가온다.
--- 「가장 밝고 짧게 탄 불꽃」
굴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만 다리에 맥이 탁 풀렸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를 보려고 했었고, 무엇보다도 그를 한국에 초청하여 콘서트를 한번 하는 것이 나의 소망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물론 머릿속으로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에 그가 사는 오스트리아의 시골인 바이센바흐의 아터 호수까지 사람을 보낸 적도 있었다. 그때 그를 만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를 불러오지는 못했다. (중략) 굴다가 만년에 보내준 기행(奇行)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는 음악회에 연주하러 갈 때 연미복은커녕 양복도 입지 않고 티셔츠 하나에 빵모자를 쓰고 나타나기를 즐겼다. 소나타 같은 독주곡을 연주할 때의 자유분방함은 말할 것도 없고, 협주곡을 할 때도 직접 지휘하기를 즐겼다. (중략)그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독특한 제스처는 자유로운 예술관과 달관한 인생관을 대변하는 것이었으며, 무대 위에서 피아노와 마주한 그는 바로 모차르트의 화신이었다.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소년의 감성」
어느 날 레코드 가게 아가씨가 내게 희뿌연 색깔의 음반을 내놓으며 무조건 사가라고 종용했다. 놀랄 만한 일이었다. 말도 별고 없고 소극적으로 보이던 그녀가 그렇게 당당하게 음반을 내놓으면서 사가라니! 그녀가 그런 식으로 음반을 권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음반 위에 적힌 곡명이나 연주가도 모두 생소했다. 더욱이 나는 이왕이면 재킷이 예쁜 음반을 선호하는데, 암울한 그림의 분위기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걸 듣지 않으면 후회할 거야’라는 표정으로 강요하는 그녀의 위세에 눌려 그 음반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음반이 바로 슈베르트의‘아르페지오네 소나타’였다. (중략) 그동안 실내악이라면 모두 하이든의 현악 4중주곡 <종달새>나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처럼 얌전하고 조용한 것뿐인 줄 알았다. 그러나 한 대의 첼로와 피아노는 어떤 오케스트라보다도 더 호소력 있게 슬픔을 드러내고, 때로는 눈물을 삼키고, 때로는 통곡하는 것이었다. 로스트로포비치가 긁어대는 첼로의 울림통은 마치 눈물을 잔뜩 담고 있는 통곡의 통 같았다.
---「눈물을 담은 소리통」
나는 사실 로시니의 오페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다분히 취향의 탓이리라. 어쨌든 그의 많은 작품들 특히 오페라 부파(희가극)에서 나타나는 복잡한 트릭과 재빠른 개그가 나의 심중을 그리 자극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로시니의 오페라란 다만 하루 저녁의 여흥과 웃음을 위한 정말 사치스러운 장치라는 편견을 떨치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로시니에 대한 편견을 일거에 없애버리고, 배가 불뚝 나온 그의 사진 앞에 모자를 벗고 조아리고 싶게 만든 단 한 곡이 바로 <스타바트 마테르>이다. 이 곡을 들을 때면 나는 늘 하던 일을 멈추어야만 했고, 가슴을 죄면서 듣지 않은 적이 없었다. (중략)합창과 오케스트라, 그리고 네 명의 독창자가 나오는 이 곡은 모두 10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창자들은 제1소프라노와 제1소프라노 그리고 테너와 베이스이다. 처음엔 합창과 관현악으로 제1곡 ‘도입창’이 웅장하고 경건하게 시작된다. 그리고 차례로 독창자들의 노래가 나오는데, 한 사람에게 오직 한 곡씩의 독창이 배정되는 셈이다. 제2곡이 테너 독창, 제4곡이 베이스 독창, 제7곡과 제8곡이 각기 제2소프라노와 제1소프라노의 독창이다. (중략) <스타바트 마테르>는 분명 교회음악이지만, 듣다 보면 종교적인 감동보다는 인간적인 색채가 두드러진다.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좋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자식들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요 지상의 노래이다.
---「모든 어머니들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