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차역까지 가려고 그사이 불어난 짐을 들춰 메고 택시를 잡는데 그날따라 택시가 그렇게 잡히지 않았다. 한참을 도로변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오토바이 한 대가 앞에 멈춰 섰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어서 뒤에 타라고 권하면서 차도 막히고 택시도 안 잡히니 30위안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이게 웬 횡재냐 싶어 얼른 남자 뒤에 타고 신나게 달려 기차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녀가 주머니에서 30위안을 꺼내주자 남자는 낯빛을 바꾸며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내가 언제 30위안이랬어? 300위안이랬지.”
♥…… 조금 쉬었다 가려고 무거운 가방을 먼저 계단에 내려놓고 그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잠시 뒤 손을 뻗어 가방을 쥐려는데 자꾸만 허공만이 만져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가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불과 5초도 되지 않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통째로 가방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후딱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여자아이를 안고 앉아 있었다. 나는 긴박한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 가방 못 보셨어요?”
“내가 여기 계속 앉아 있었는데, 아무도 아가씨 옆에 안 앉았어요. 어디 다른 곳에 두고 온 거 아니에요?”
내가 당한 일이 믿기 힘들만큼 억울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사람이 앉아있는데 그런 식으로 가방을 가져갈 수 있을까? 갑자기 중국생활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서럽게 느껴졌다. 눈물이 삐져나올 것만 같았다. 이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펑펑 울고만 싶어졌다. 그때 나는 처음 눈물방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2004년 난징[南京남경]에서 첫 선을 보인 이래로 상하기까지 확산되어 인기를 얻고 있는 눈물방으로.
♥…… 중국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정전이 되어도 누구 하나 밖으로 나와 원인을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는 사흘간 물이 끊긴 적도 있는데 그들은 언제 다시 물이 나오느냐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한국인인 우리 가족만 거의 광분상태가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관리실을 들락거렸다.
중국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 중에 ‘메이판파[沒瓣法몰판법]’와 ‘메이파즈[沒法子몰법자]’가 있다. 둘 다 ‘방법이 없어’, ‘별 수 없어’란 뜻이다. 그들은 그저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인내한다.
참다못한 내가 그들에게 물었다.
“너네는 왜 당당히 너희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냐?”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어차피 화내고 따져도 물이 안 나오고, 가만히 있어도 안 나올 텐데 뭣 하러 그래. 나올 때가 되면 다 나오게 되어 있어.”
♥…… 2006년 초 부산의 한 사업가가 부인과 함께 중국으로 여행을 왔는데, 부부가 함께 타고 가던 택시가 갑자기 멈추는 것이었다. 기사는 잠깐 차를 살펴보더니 남편에게 택시에서 내려 밀어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아무 의심 없이 택시에서 내렸다. 그런데 남편이 내려서 차를 밀려는 순간, 택시는 부인을 태운 채 줄행랑을 쳤다.
그리고 몇 주 후, 홀로 한국으로 돌아 온 남편에게 중국공안국에서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전해왔다. 부인이 시궁창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는데, 간과 콩팥 등의 모든 장기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부인의 장기가 적출되어 어딘가로 밀매된 것이다.
♥…… 중국인들만큼 ‘꽌시[關係관계]’를 중시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사람 사이의 관계, 즉 인적 네트워크 말이다.
그런데 이 꽌시를 형성하기까지가 힘이 든다. 의심 많은 중국인들이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인에게 호락호락 가슴을 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하지만 한 번 꽌시를 맺으면 열과 성을 다한다는 말 역시 사실이다.
우리 선생님 장 라오스를 보면 그런 중국인들의 특성이 한눈에 보인다고나 할까? 솔직히 나 같은 여자애가 선생님 인생에 도움이 되면 얼마나 되겠는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한 번도 선생님을 도와준 적은 없지만 나를 평생의 ‘펑요우[朋友붕우, 친구]’로 생각한다는 선생님은 한 번 열린 마음을 조금도 닫지 않으셨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마음의 문을 점점 더 크게 열어주셨다.
♥…… 중국인 가정에 초대를 받아 선물을 준비하고 싶다면 다음 몇 가지는 반드시 피할 것.
*우산 : 중국인들은 우산을 선물하지 않는다. 우산의 중국발음인 ‘산[傘우산]’과 흩어지다, 헤어지다는 의미인 ‘산[散헤어지다]’이 같기 때문이다. 또 비슷한 예로 배가 있다. 배를 뜻하는 ‘리[梨배]’의 발음은 이별하다, 헤어지다는 ‘리[離이]’와 같으므로 선물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시계 : 역시 시계를 뜻하는 ‘종[鍾종]’과 마지막이라는 ‘종[終종]’의 발음이 같기 때문인데, 시계를 선물한다는 의미의 ‘송종[送鍾송종]’이라는 말과 임종을 지킨다는 의미의 ‘송종[送終송종]’의 발음 역시 같다.
*손수건 : 손수건은 슬픔을 상징한다하여 선물로는 꺼리는 경우가 많다.
*꽃다발 : ‘생명의 짧음’을 의미하는 꽃은 장례용이라는 인식 때문에 선물로 주지 않는다.
*축의금 액수와 선물의 숫자는 짝수로, 조위금은 홀수로.
*식사나 파티에 초대 받았을 때 음식은 가져가지 않는 것이 예의.
* 선물 포장지는 빨간색으로. 선물을 포장할 때는 죽음을 상징하는 흰색과 검정색, 파란색 종이는 피하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빨강색 포장지에 싸는 것이 좋다.
♥…… 중국에서 쇼핑은 탱크와 대포만 없을 뿐 말 그대로 전쟁 중의 전쟁이다. 정해진 가격은 안 부르고 항상 자신들의 희망가격만을 부르는 상인들과 실랑이를 하다보면 정말 시간가는 줄도 모른다. 어디 그뿐인가. 백화점에서도 버젓이 가짜를 갖다놓고 파는 사람들 덕에 언제부턴가 나는 본사 직영매장에 가서도 대놓고 묻는다.
“이거 혹시 짝퉁은 아니죠?”
그러면 잔뜩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를 다시 쳐다보는데, 그래도 할 수 없다. 향수, 화장품, 지퍼라이터, 만년필, DVD, 핸드폰 등 각종 전자제품, 음식…… 심지어는 금과 보석과 화폐까지 진짜와 똑같은 짝퉁이 판치는 중국이니 말이다.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 자동차 ‘마티즈’와 번호판 색깔만 빼고 다 똑같은 차가 중국에서 생산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러니 엄마 빼고 다 짝퉁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 따리엔 기차역에 발을 딛자마자 각종 숙박업소에서 나온 수많은 호객꾼들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언제나와 같이 ‘팅부동’이라고 하자 반 이상이 떨어져 나갔지만 그러고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라붙었다.
나는 일단 택시를 타고 여기를 뜨자는 생각으로 택시를 잡기 위해 길가에 섰다. 그런데 지갑이 보이지가 않는 거였다. 이쪽저쪽 주머니를 다 뒤지고 잠바 안주머니까지 뒤져봐도 지갑이 안 보였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다리가 꼭 푸딩처럼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배낭을 깔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자 그때까지 내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호객꾼들이 물어왔다.
“무슨 일 있어요?”
“지갑이… 없어… 졌어요….”
나는 망연자실한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요?”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한데 뭐 재미있는 구경이라고 빙 둘러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그들에게 나는 갑자기 짜증이 와락 일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고요! 지갑을! 됐어요?”
그러자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많던 호객꾼들이 하나 둘,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지갑은 나중에 배낭 깊숙한 곳에서 찾았다.
나는 그 후로도 두 세 차례 더 이 방법을 써 먹었는데 끈질기게 달려드는 호객꾼을 물리치는 데는 놀랄 만큼 효과적이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