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평북 정주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11세에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랐다. 14세 때 일진회 추천으로 일본에 유학, 메이지 학원 중학부와 와세다대학 철학과에서 수학했다. 1917년 한국 문학사에서 최초의 근대소설로 평가받는 장편소설 「무정」을 『매일신보』에 126회에 걸쳐 연재되면서 중추원 유생들의 항의와 당대 젊은 독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동시에 받으면서 장안의 화제작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1919년 일본에서 조선청년독립단 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해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1921년 귀국해 『동아일보』 편집국장, 1933년 『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보석된 뒤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를 하며 창씨개명을 했다. 광복 후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대표작으로 「무정」, 「어린 벗에게」, 「소년의 비애」, 「흙」, 「사랑」, 「유정」, 「원효대사」, 「민족개조론」, 「문학과 평론」 등이 있다. 근대문학의 태동기에 긍정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고 서구적 계몽성에 공감한 작품은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평등사상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대의 진취적인 개혁 사상을 고취한 계몽적 이상주의로 근대문학 태동의 확고한 족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