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투쟁이다
드디어 투쟁의 시작이다
이 핑계 저 이유 단체협상 질질 끌며
냉각기간 내내 갖은 협박 온갖 술책
파업투쟁 무산시키려는 저들의 지랄발광을
피를 말리는 인내로 힘겹게 돌파해온
살얼음 준법투쟁도 오늘부로 끝이다
--- p.92
우리의 몸
우리의 눈은 하루종일 일감만 보다가
침침하고 어지러우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네
우리의 폐는 독가스나 마시고 매연 먼지나 마시라고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네
우리의 코는 악취나 맡고 독한 신나 냄새나 맡다가
끝내 소처럼 맞구멍 뚫리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네
우리의 손목은 생선토막이 되기 위해서
우리의 입은 불평불만이나 쌍시옷 소리나 내뱉으라고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네
파란 하늘과 꽃과 하늘
상긋한 나무 향기와 공기를 마시고 싶다네
사랑하는 너에게 눈동자 맞추며 이쁜 윙크를 보내고 싶다네
가을 등불 아래 감명 깊은 책과 영화를 보고 싶다네
그대의 정성처럼 고운 빛깔 우러나온 과일주를 조금씩 조금씩 음미하고 싶다네
그대 보드란 젖가슴에 코를 묻고 사랑스런 살내음을 맡고 싶다네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진지한 대화와 희망찬 말들을 소리치고 싶다네
연대의 손 꼬옥 잡고 일어서 달려나가고 싶다네
그렇다네
우리의 젊음 우리의 몸 우리의 노동은
저들의 돈벌이를 위해서도
단지 내 한 몸 먹고 살기 위해서도 아닌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참된 기쁨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네
온 세상 모든 것들과 참다운 관계를 맺으라고 위대한 힘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라네
--- p.76-77
민들레처럼 살아야 합니다.
차라리 발길에 짓밟힐지언정
노리개꽃으로 살지 맙시다
흰 백합 진한 장미의 화려함보다
흔하고 너른 꽃 속에서 자연스레 빛나는
우리 들꽃의 자존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 p.47
낡은 건 떨치고 산 것을 보듬어 살리고 있었다
땅은 그대로 모순투성이 땅
뿌리는 강인한 목숨으로 변함없는 뿌리일 뿐
여전한 것은 춥고 서러운 사람들, 아
산다는 것은 살아 움직이며 빛살 틔우는 투쟁이었다
--- p.15
그는 거듭 다짐하며, 우리의 진보적 이상주의가 분명 새로운 출발로 나아가기를 열망하고 있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그는 노동현장의 가혹한 현실에 대한 가파른 분노를 내뿜던 80년대적 노동자-시인에서 부정되어야 할 이제의 상황으로부터 진정 살아볼 만한 세계를 꿈꾸는, 고뇌하며 이겨내는, 따뜻하면서도 힘찬, 90년대적 시인으로 새로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 p.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