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신학에 무관심하다. 그들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느라 바쁠 뿐이다. 그들은 감정을 고무하는 말을 하고, 문화적으로 고안된 원리를 적용하며, 성경 연구 외에 다른 것에 힘과 정열을 더 쏟아 붓는다. 그들은 건강한 교리를 가르치는 성경 본문을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학자가 아닌 그저 직업인일 뿐이다.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자신의 변덕스런 취향과 욕망, 그리고 특정한 인물들의 인기에 이끌려 자기 자신의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전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목회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신학과 사상을 전하는 중개인으로 전락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성경 강해의 첫 번째 목적은 교리다. 성경 본문에서 먼저 교리를 찾아내고, 그런 다음에는 그 의미를 밝히고, 적용하고, 권고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목회자는 건강한 교리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자신의 시대, 자신의 장소에서, 교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진리를 신학적으로 성실하게 수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지난 백 년 동안, 목회자들은 교리를 전문 학자들에게 일임했다.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미국 대학교의 대다수 학장들은 목회자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부터는 상황이 변했다.
내가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에서 일한 지 8년이 지난 1977년에,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 관한 시카고 선언문”을 작성한 “국제성경무오협회”에 참여해 일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를 담임하는 삼십 대의 평범한 목회자였을 뿐,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시카고에서 첫 모임을 가졌을 때, 놀랍게도 목회자는 나와 제임스 보이스 단 둘 뿐이었고, 나머지 98명은 모두 학술 기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나를 선택한 이유는 보이스와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제임스 보이스와 로저 니콜과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지만, 혹시나 나의 무지가 드러날까 봐 입을 굳게 다문 채 어떤 상황인지 알겠다는 듯 간간이 고개만 끄덕였다.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고귀한 소명을 저버리고, 그것을 저급한 기능으로 대체했다. 그들의 성공과 평판과 성취감은 그들의 유행 감각, 목회적인 기발한 생각, 음악적 감각, 매력적인 태도, 마케팅 감각 등에 의해 좌우되었다. 신학자다운 성경학자로 알려진 목회자를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성경과 성경의 교리에 대해 정통한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목회자는 그리 많지 않다. 목회자의 소명을 옳게 이해하고, 성경 해석과 강해와 교리에 정통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힘든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양 취급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목회자들은 신학자, 성경학자, 건강한 교리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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