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구가 길바닥에서 죽었다. 담은 구의 시체를 정성스럽게 닦고 먹기 시작한다.
구와 담. 둘은 여덟 살에 같은 반에서 만난다. 여느 첫사랑처럼 구는 담을 괴롭히고, 담은 운다. 학교를 빠진 담이 동네 골목에서 구와 마주친 이후 둘은 사랑에 빠졌고 하루하루 함께한다. 같이 지내는 둘의 모습을 보며 같은 학교 아이들은 갖가지 소문을 만들어 놀려댔다. 어느 날 구는 담을 욕보이는 더지와 싸우게 되는데, 선생님께 불려간 곳에서 구는 잡고 있던 담의 손을 놓았다. 자신 때문에 담이 힘들다 생각했기 때문에. 그 후 둘은 서먹해지지만 서로를 잊지 못해 집 앞에서 서성이다 다시 만나게 되고, 키스를 하고, 관계를 맺으며 서로의 인생이 된다.
구의 부모님은 많은 빚을 졌었고, 구는 17살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신없이 살았다. 인생이 그저 빨리 감기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담은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구가 일하는 공장에서 구를 기다렸다. 공장에서 일하는 부모를 둔, 어린아이 노마와 친해져 노마와 이야기하고 집에 데려다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퇴근길에 소소하게 맛있는 것을 사 먹으며 서로를 감싸 안으며 행복을 느꼈지만, 노마의 죽음으로 둘은 슬펐고, 그 감정 때문에 다시 멀어진다.
담과 소홀해진 사이에 구는 일하다 만난 진주와 사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담을 잊지 못했다. 담은 삶의 기억이자 이유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녀 사이였다. 담과 나보다 누나와 나 사이가 그런 정의에 훨씬 어울렸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이유가 필요했는데, 이유가 필요하다면, 그게 과연 사랑일까."(105p) 진주는 자신을 상품처럼 대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좋아 구를 만났다. 살아있는 생물을 대하는 것 같은 관계가 좋았다 말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구는 그런 살아있음을 잃어갔고 진주는 구를 위한다는 이유로 헤어지자고 말한다. 구는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하며 입대를 한다.
담은 구의 모든 것을 갖고 싶고, 알고 싶은 욕심을 가졌다. 담은 구가 다른 여자와 있는 걸 봤다. 하지만 분노하거나 화내지 않았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기다렸다. "구야. 너는 왜 거기 있어." (118p) 구는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사이, 함께 있지 않더라도 함께하는 사이라 믿었다. 할아버지, 이모, 담, 모든 것이 떠나간 후 담은 마트에서 정육일을 하며 구를 기다렸다.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나는 기다렸다. 구가 돌아오기만을." (142p) 할아버지, 이모, 구 모두 없어진 담의 존재는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었을까. 세상을 다 잃어버린, 행운이라 칭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진 존재.
구와 담 둘에겐 기다림이 필요했다. 담의 이모는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대답이나 설명보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말한다. 단순히 사랑이라 정의 내릴 수 없는, 사랑보다 더욱 간절한 감정엔 기다림이 필요했었다. 사랑을 넘어선 것은 일치됨을 의미하기도 했고, 그것은 먹는다는 행위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상대를 끝없이 기다려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기다림은 존재의 있음을 가정하는 것이기에, 또 그 존재가 결국 나에게로 향할 것이라 '믿는 것'이기 때문에.
도피처로 선택한 군 생활은 오히려 구에게 해방감을 주었다. 휴가 날에 집으로 돌아오며 느낀 것은 변하지 않은 현실이었다. 구는 담을 멀리서 바라보며 흐느낀다. 구는 전역 후에 용기를 내어 3년 만에 담을 만나러 가는데, 담은 어제 본 사람처럼 밥을 먹었냐며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 언젠가 돌아올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이모는 현실이 모두 지나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담에게 구는, '지나간다'라며 흘려보낼 수 없는 것이었다. 감정은 그저 지나가지 않는다. 상처는 흉터를 남기듯이 구멍이 있는 한 항상 고여있다. "근데 그런 걸 지나간다고 말할 수 있나, 이모. 지나가지 못하고 고이는데. 고유하게 거기 고여 있는데." (130p)
절에서 소원을 빌던 구와 담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빈다. 자칫 불교의 가르침과 통하는 것 같지만 고통이라는 현실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나 멀어지는 순간, 더 나아가 무의 세계로 가는 것이 죽는 게 아니라 담대해지는 것이라 말하는 순간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상태가 오히려 나은 현실을 살아가고, 발목 잡는 감정이 없어야 내가 무엇인가를 이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그 감정을 말한다. 담이 떠올린 이모의 형상이 "잊는 건 내 몫이 아니고 네 걱정은 내가 한다"말한 것은 현실을 사는 사람이 과거를 잊어야 하는 것이고, 네 일이 곧 나의 일이라는, 사랑이 의미하는 '일치'를 보여준 것이다.
둘은 같이 살게 되지만 구는 부모님이 진 빚에 허덕였고 밑바닥의 일까지 하며 항상 도망치듯 일하며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담에게 꺼지라고, 자신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한다. 스스로가 담을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담은 사랑이 아니더라도 같이 있고 싶었다. "행복해지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둘은 사채업자들을 피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용직을 전전하며 살았지만 또다시 잡혀 어디론가 끌려갔다. 구는 잡혀간 지 185일 만에 돌아와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가 살자고, 청설모가 되자고 말한다.
담은 함께 누운 밤, 구에게 '소니 빈'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니 빈은 부부가 강도와 살인을 하며 살아갔고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식인을 했다. 그들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식인을 하며 살다 결국 잡혀 사형당한 이야기였다. 담은 소니 빈 이야기를 하면서 "아무 죄의식 없이 사람을 잡아먹는 경우"를 현실 사회로 확장한다. 약육강식의 사고. 구와 담이 사는 세계는 잡고 잡아먹히는 사회였기 때문에.
세상은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위해 타인을 잡아먹는 세상이었지만, 담은 살기 위해 구를 먹었다. 먹는다는 행위는 잊지 않고 싶다는 의미다. 구는 빚더미에 오르고, 배고픈 세상에선 살아도 담이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죽으면 담조차 사라지기에, 담이라는 기억이 사라지기에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담은 죽는다. 사채업자에게 맞아서, 도망가다 차에 치여서, 그럼에도 담을 만나기 위해 길을 헤매다 죽는다.
담은 죽어서까지 사랑이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나쁜 것까지 주는 것이, 괴롭힘을 주는 것이 사랑이라 말하기엔 사랑의 이미지란 고귀하고 좋은 것이니까. 상대가 편하고 행복한 것이니까. 우리에겐 사랑이라 표현할 수 없는 또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 그것이 존재를 먹어 치울 만큼 동일시하고 싶은 것.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을 넘어서는 또 다른 사랑. 믿음과 함께해야만 하는 그런 사랑. 그렇게 구원에 이르는 사랑. 그가 내가 되고 내가 그가 되어 불일치의 괴리를 소화하는 그런 사랑.
<구의 증명>은 '식인'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로 이목을 끌지만, 읽어보면 단순히 먹는다는 메타포로만 흥미로운 소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최근 <구의 증명>이 입소문을 타고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섰는데, 고통을 바탕으로 한 사랑이라는, 극적인 상황에서의 극적인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많은 이들에게 끌리는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 짧으면서도 강렬하기도 하고.
최진영의 소설은 차갑다. 대체로 비관적이고 절망스러운 배경인 경우가 많다. 그녀의 말투는 차가우면서도 한이 서려있다. 그래서 때론 상황 묘사나 감정 표현이 직설적이며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런 특징에서 그녀가 사랑이라는 주제를 극단적인 식인 메타포로 나아간 것이 납득되기도 한다. 작가 자신만의 세계가 나타나기에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들 순 있지만 인물들의 대사 뒤에 있는 감정과 공명한다면 흥미를 느낄 것이다.
최진영은 물리적 '식인'이라는 이미지가 줄 수 있는 충격을 활용하여 사회가 한 인간을 잡아먹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식인이라는 행위는 사랑하는 사람을 흡수하고 싶어 하는 열망을 나타낸 도구로도 활용한다. 소화되지 않고 어딘가 남아있을 그런 사랑. 그럼으로 너와 내가 구분되지 않는 그런 사랑.
존재가 곧 목적이었던 삶에서 존재가 사라지면 길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세상 누군가는 그런 경험을 한다. 그렇기에 경험한 사람만이 이 소설의 '그 무엇'인가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구의 삶에서도, 담의 삶에서도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다. 단순히 남녀 사이가 아니라 세상 그 자체. 만약 매우 끔찍이도 사랑했던 존재가 사라졌다면, 항상 나의 일부로 함께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어떨까. 최진영은 사랑의 고통을 표현하면서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 위로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구는 언젠가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희망을 갖고 살고 싶다는 말이 아닐까.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아도 되는, 서로가 서로가 되는 그런 관계와 그런 사랑의 꿈을 꾸는 상상. 그런 의미에서 아빠가 된다는 것은 구원의 의미일 수도 있겠다.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그 상황. 작가는 그 상황을 '서로가 감싸 안는다'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희망하는 미래의 일부분을 지금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구의 삶은 그런 꿈의 틈을 주지 않을 현실의 연속이었다.
최진영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두 사람은 세상에 그들밖엔 보이지 않았어요. 담이 구를 따라 죽으면 둘은 아예 세상에서 없는 게 돼요. 담은 구를 먹으면 피와 살이 되니 오래 살 수 있고 자신 안에 구를 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먹으면서 구의 존재를 증명한 거예요.” 제목 "구의 증명"은 죽음으로 상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 이후에 존재를 증명하는 것의 의미가 되었다. 담이 감정이 지나가지 않고 고여있다 말한 것처럼 먹음으로써 소화되지 않고, 마음 어딘가에 묻어두는 것일지 모르겠다.
사랑이란 단어는 너무 광범위하고, 때론 너무 협소하다. 우리는 이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해 줄 소설을 찾는다. 누군가에겐 마음이 공명하는 그런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먹어버릴 만큼 사랑한 사람이 있었나 |
최진영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다가 읽지 않은 책 중 『구의 증명』을 떠올렸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 중 이렇게 처절해도 되는가.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답 하나를 알게 된 느낌이었다.
남자 담과 여자 구의 사랑 이야기다. 빚쟁이들을 피하다 연인이 죽었다. 죽은 연인의 몸을 먹으며 삶을 기억한다. 매끈한 팔과 다리, 눈썹을 훑고 몸을 먹으며 슬픔을 이긴다. 지나온 삶, 처음 만났던 여덟 살 시절, 서로 모른척했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를 기억하려 한다. 담이 구의 시체를 먹는 건 그를 기억하는 시간과 같다. 아낌없이 사랑하고 기억하는 시간이다. 기억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것. 그와의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아우르는 과정이었다.
어렸을 적 구는 담을 괴롭혔다. 그럼에도 담은 아무렇지 않았다. 아이들이 담과 구를 놀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죽은 구를 업고 택시를 타 집에 데려왔다. 대야에 물을 담아 구의 몸을 씻겼다. 구를 방에 누이고 구의 몸 전체를 닦았다.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고는 꿀꺽 삼켰다. 구를 먹는 작업은 구의 모든 걸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구의 몸이 자양분이 되어 자기 몸에 흡수되어 영원히 나의 몸과 함께 있는 것이다. 그의 기억조차 나의 것이 될 터였다. ![]()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너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죽게 만들 거야. 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 살아 남을 거야. 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20페이지)
최근에 <조명가게>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를 나타낸 드라마였다. 죽은 자가 헤매는 골목은 과거와 이별하는 공간이었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마음을 추스르고 결정하는 공간이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지난한 과정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었다. 경계선을 나오는 자는 살 것이며, 그 안에 갇힌 자는 죽음 너머로 가는 과정이었다. 드라마를 보며 회차가 늘어갈수록 슬펐다. 죽은 엄마가 저 길을 헤매었을 거라는 생각. 살길 바라는 엄마가 구해오라는 것.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딸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다.
그러니까, 담이 구의 몸을 먹는 과정은 하나의 장례 의식이었다. 누구도 알게 해서는 안 되는 담만의 장례였다. 구의 기억과 내 기억이 맞물려 사랑했던 추억을 함께하는 의식. 영원히 내 마음속에 두게 하는 과정이었다.
너와 다른 우주에서 온전히 기억하고 있어.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억뿐이니까. 기억이 나의 미래.기억은 너. 너는 나의 미래. (68페이지)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는 과정. 기억은 곧 사랑의 기억. 영원히 마음속에 가두어 현재를 이겨내고, 미래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과정이었다. 온전히 기억해야 온전히 보낼 수 있는 것처럼.
구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모든 말은 곧 우리의 기억. 죽는 게 죽는 게 아닌 상태의 기다림.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마음이 닿는 곳.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날 거라는 희망의 속삭임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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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이 인기도 많은 책이어서 예전부터 읽고 싶었었다 마침 리커버로 책이 나와서 얼른 샀다 양장본이고 책도 너무 예쁘게 나와서 좋았다 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예쁜 책도 좋아 이건 삶의 의미와 죽음의 의미를 되묻는 소설이다 나도 책을 다 읽고나서 삶이란 무엇인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계속 생각해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사랑에 관한 책을 읽었던 거 같다 |
유명하기도 하고 많이 읽길래 구매해서 읽어봤는데 후회없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조금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내용도 있고 거북할 수 도 있어 조금 주의하면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용을 읽기 전에 찾아봐야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주인공들의 사랑얘기도 재미있고 이런 분위기의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당연히 즐기면서 보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
최진영, 구의 증명 - 살았음을, 사랑했었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구의 증명>. 이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네 생각에 두 눈이 뻐근했다. 참지 못하고 너 보란 듯 세 편의 글을 썼다. 고작 절반도 읽지 못했을 때였다. 필사는 부러 오래 미뤄두었다. 하지만 그렇게 벌었던 시간이 허무하게 첫 문장을 베껴쓰자마자 네가 왔다. 내 안으로 사무쳐 내 모든 것을 휘감는다. 아직도 이러면 어쩌냐고. 미어지는 가슴으로는 너를 모른 척 할 수도 없고 대수롭지 않은 척 넘길 수도 없는데. 엉망으로 헝클어져서 소설을 더듬는다. 내가 그었던 밑줄을 뭉툭한 손톱 끝으로 곱씹는다. 그 시간들, 나는 온전히 ‘너’를 살았다, 예전처럼. 우리와 비슷한 계절을 보냈을까, 그들은.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19p) 그런 말을 진정으로 주고받으며 각자의 애처로운 흉곽(19p)을 서로에게 비벼대는 것으로 버티는 날들을 살았을까, 그들도. 애들이 더럽다고 놀려도 그게 ‘구’의 손을 놓을 이유는 되지 않았다던 ‘담’의 독백은 언젠가의 내 것과 같았다. 위험한 세상 대하듯 ‘담’을 대하는 ‘구’는 꼭 나를 대하던 너와 닮았지. 그런데 이런 식의 독서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나친 감정이입을 자각할 때마다 자문했다. 이렇게 읽어 내게 남는 건 뭐가 있나.
그래, 기억하자. 기억하는 거다. 지금 네가 없어도 내가 하는 거다. 날지 못해도 행복했던 그때를 내가 잊지 말자. 우리만이 우리가 했던 사랑을, 우리가 살았던 계절을 증명하니까 어떤 식으로든 기억해야지. 마음 놓고 떠올린다, 너를. 마음 놓고 불러본다, 네 이름.
들어봐. 여기 여자가 죽은 연인을 먹어. ‘담’이 완전히 미치지는 않기 위해 제 볼을, 눈을, 사지를 때리며 죽은 ‘구’의 손과 팔을 뜯어 먹어. 눈을 부릅뜨고 무엇을 먹고 있는지 똑바로 보면서 잊지 않기 위하여 연인을 먹는다. 불행은 태어날 때부터 그들의 몸에 문신으로 새겨졌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세계라고는 오로지 빚뿐이었어. 어린 구와 담이 자라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거대하게 빚덩이는 커져만 갔다. 불행의 문신은 어느 덧 몸 전체를 감싸고 있던 거지. 이 비극 앞에서 우리는 망연하게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해. 죽음이 차단할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계속 부르는 그들의 절박한 그리움을 너와 나는 들어줘야지.
우리의 계절은 짧았고 우리의 지옥은 추상적이었어. 어쩌면 있지도 않은 지옥을 운운하며 겁부터 먹은 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몸은 고되고 앞날은 곤죽 같아도, 마음 한구석에 영영 변질되지 않을 따뜻한 밥 한 덩이를 품은 느낌(73p)이 뭔지 아는 우리는 알잖아. 서로를 빈틈없이 껴안기 위해 몸부림쳐봤던 우리는 ‘그런 사랑’이 뭔지, 잘 알잖아. ‘그런 사람들’ 을 삼켜버린 구체적인 지옥에 슬퍼하자. 분개하자. 죽음으로 반토막 나버린 연인이 아파서 보고 있기 힘들 거다. 알고 있다. 하지만 피하지 말아야지. ‘구’가 살아있었음을, ‘구’가 사랑했음을 증명하는 이 잔혹하고 처절한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여기 있어야지.
-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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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을 읽고 작성하는 후기입니다. |
[도서] 구의 증명
소외된 자들의 아픔과 외로움이 절절하게 그려진 작품인 것 같다. 읽다보면 희한하다고 느껴지는 서술도 있었지만, 특유의 감성이 슬프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져서 좋았다. 책이 얇아서 휴대하고 다니며 읽기에도 좋았고, 금방 읽을 수 있을 만큼 짧고 문체가 술술 풀리는 글이라 좋았다~~ 나는 글이 너무 좋아서 읽고 또 읽느라 오래 걸렸다 ..^^ 작가의 다른 작품도 또 읽고싶다. |
그 사람을 알기 전에 다른 사람을 통해 선입견을 먼저 갖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회사에서 형성되는 선입견은 대부분 안 좋은 면으로, 문학에서 형성되는 선입견은 대부분 좋은 면으로 머리에 인식됐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입력봉사를 위한 책으로 박민정 작가의 산문집 <잊지 않음>을 다시 꺼내보게 되었는데 최진영 작가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 다시 멈추었고 <구의 증명>을 구입하게 되었다. 대출이 아니라 구입이다. 작가들은 모를 거다. 나에게 구입이 어떤 의미인지. 최진영은 내게 뜨거운 감자 한 알을 손에 쥐고 미소 지으며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쥐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해 저글링이나 하는 나와 다르게 그녀는 손바닥 피부가 다 벗겨질 때까지 그것을 움켜쥐고 가만히 견디는 사람이다. 나는 내 상상 속 이러한 그녀의 모습이 못 견디게 좋았다. - <잊지 않음, p42> 한 끼를 때우는 일은 부차적인 일이고 우울해도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우울에 익숙해진 사람임을 알지 못했더라면 이 소설을 읽으며 적지 않게 당황했을 것 같다. 박민정 작가의 말처럼, 나라면 저글링이나 하고 있을 그런 얘기를 가만히 쥐고 있다. 뜨겁거나 피부가 벗겨지는 건 부차적인 일이라는 듯, 쥐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연인들이 있다는 걸 최진영 작가는 알고 있어서다. 서로를 먹는 것 외엔 사랑할 다른 방법이 없는 연인들. 작가는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랑을 했길래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이 소설에 비하면 아프지 않은 사람과 아프지 않은 사랑을 했던 나는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랑을 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런 소설을 절대 써볼 수 없음에 나를 비껴간 불행들을 원망해야 하는가. 사람을 먹을 일이 없었다는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번 읽고 또 읽는다. 이 책이라도 먹겠다는 심정으로. |
평소에 믿고 보는 작가이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이다.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겨울방학을 읽고 너무 인상깊고 재밌게 읽어서 이번엔 구의 증명을 구매하게 되었다. 역시나 최진영 작가님!!! 믿고보는 작가이다 이번 책도 너무 재밌었다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얼른 신작 또 기다려야지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작가님 항상 응원하고 좋은 책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것도 사실 도서관에서 먼저 읽었던 작품인데... 제가 이 책을 겨울에 읽었거든요.해가 일찍 지는 터라 아직 밤이라고 하기엔 좀 이른 시간대였는데 밖은 이미 어둑하고 도서관에도 사람이 별로 없어서 집중이 더 잘 되서 그런가 사실 보다가 좀 울어서... 사람 많은 곳에서 읽기엔 좀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소재 자체는 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보면서 으..하면서 인상 찌푸린 적도 있었고 솔직히 구를 쥐어박아 주고 싶을 때도 있었거든요. 얘 뭐지? 하면서 그래도 문장이 너무 예뻐서, 그리고 초반에 구가 담이 보고싶다고 내가 몰랐어도 너는 알았어야지, 하는 그 독백이 너무 인상깊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