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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권위 있는 수상 시집이고 지난 많은 시간 가까이 했었던 추억을 가진 작품집이다. 그러다 소설과 문학비평 쪽으로 마음을 쏟는 시간을 가지면서 잠시 떠나 있었던 시집이다. 그런데 올해에 들어 갑자기 시를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여 오랜만에 우리나라의 시의 흐름을 살피고자 생각하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해마다 발간하는 현대시 수상집을 찾게 되고 만나게 되었다. 제목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로 이루어진 김복희 시인의 수상집이다. 물론 다른 수상 후보자들의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수상집은 수상자를 중심으로 읽게 되는 게 보통이다. 나도 우선 수상자의 작품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
참 시를 가까이 했던 시간들이 많았다. 언어의 리듬성, 간결함과 상징적인 표현이 좋아 이런 유형의 문학 장르에 마음을 빼앗겼던 지난 시간들이 있었다. 생활이 리듬을 가진 언어가 될 수 있도록 독서와 습작을 통해 노력을 했었고, 마음에 들지 않은 언어들을 만나면서 허전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되고 언어에 자유를 얻게 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요즘은 많은 일상을 리듬을 가진 언어로 표현하면서 스스로 행복해 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면서 만나는 김복희 시인의 수상작은 우선 어려웠다. 언어는 일상적인데 그 언어가 지향하는 곳을 찾아가는 연결성이 무척 난해하게 다가왔다. 쉽게 읽혀지는 작품은 아니었다. 작정을 하고 의미를 찾아야 하는 작품이 아닌가 여겨졌다.
시인의 작품엔 천사가 많이 등장한다. 천사는 어떤 이들의 가슴에서만 살아있는 존재다. 어떤 이가 아닌 사람들은 그 존재가 쉽게 다가들지 않는다. 그 미지의 존재가 살아서 꿈틀거린다. 그리고 천당과 지옥, 현실 속을 내왕한다. 그들의 시선으로 만나는 세계가 일상적인 세계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심리 안에 들어가기 전까진 쉽게 언어가 살아서 머물지 않는다. 억지로 그들의 세계를 접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바를 상상하며 다가갈 때 언어가 마음을 열고 다가든다. 그렇지 않으면 언어의 의미가 행간에서 뚝뚝 떨어져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그 모래알을 줍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모래가 시멘트와 결합해 하나의 구조물이 되었을 때 온전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나에겐 그 구조물이 쉽게 보이진 않았다. 부분적으론 방도 보이고 거실도 보이지만 전체적인 집과 그 부분들이 잘 조각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평가도 되고 인정도 받은 구조물이다. 그러기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 의미를 찾아내고 인정을 해나가는 방법을 통해 읽어나갈 수밖에 없는 독서의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여겨도 참 어려웠다. 언어를 연결하는 나의 시멘트가 부족한 모양이다.
시인의 세계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 의식의 날개가 미지의 공간을 맴돌고 있다. 그가 만나는 존재는 떠나보낸 자들과 남아있는 자들 사이에 있다. 떠나보낸 자들은 그렇게 두면 될 것인데 그것을 현실 속에서 끄집어내어 아파하고 있다.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사라져간 것들에 잡혀 행동거지가 자유롭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떠나보낼 자들은 떠나보내야 하는데, 떠나가지 않은 의식이 언어에 박힌다. 그 언어가 날개가 되고, 날개는 곳곳에서 상처가 된다. 상처는 다시 언어를 통해 치유가 되고, 언어는 다시 날개를 만든다.
의식의 세계를 형상화하긴 쉽지가 않다. 그것이 사람들이 다녀본 길이 아니면 더욱 그렇다. 그런 것들은 넌지시 나타낼 뿐이다. 그것을 구체화할 때 어려워진다. 언어를 가지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근거해 그 언어를 소유한다. 그러기에 타인이 가진 경험과 지식이 담긴 언어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아무리 일반화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멋진 그림이 아니면 더욱 어려운 것이 언어의 그림이다. 난 시인의 언어 그림을 만나면서 내 의식의 한계를 많이 경험했다. 내가 생각하지 않거나 내가 만나는 의식의 거울과 매우 상이한 세계를 현실의 언어로 조각하고 있는 매체를 만나면서 많은 당혹감을 가졌다. 오히려 무력감을 느꼈다.
비밀은 별건 아니고, 네 가슴속에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하고 사진을 찍은 다음 네 가슴 속에 놓아두는 거야 그 위에 옷 더미와 휴지와 먼지가 또 쌓이겠지 그게 네 가슴이고 그게 내가 기꺼이 살고 싶은 네 가슴이고 그게 내가 몰래 쓴 시고....... 나는 어쩐지 속이 얹힌 것 같아 차가워진 손을 살살 주물러본다
-네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서-
시인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가깝게 느껴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으로 일어나는 스스로의 모든 일상이 정제되어 시가 된다. 그 위에 얹히는 문제들은 모두 현실 밖의 세계다. 그 세계를 현실로 가져올 때 그 무게가 대단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살아있음으로 가지는 열망이 아닐까? 천사도, 천사를 통해 만나고자 하는 꽃도, 천국의 의미도, 무거운 울타리가 되어 옆에 머문다. 그렇게 나에겐 다가왔다. 시인이 존재하는 세계와 만나는 세계가 무척 낯설게 조우하고, 그것은 거리만큼이나 이상한 충격으로 다가드는 것을 느꼈다. 다시 찬찬히 읽어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후보자 7 분의 작품들도 더불어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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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청년 윤동주가 「쉽게 씌어진 시」에서 고백했듯이 인생이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시를 쓰고 소설을 쓴다는 것, 문학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창작된 작품들을 읽는다는 것이 대체 이 시국에 무슨 소용과 쓸모,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그런 회의가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드는 요즈음이다. 일상을 영위하기가 힘들듯, 그 어떤 책도 읽어내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얼까. 이것은 한강의 평생 화두였다는, '글쓰기는 구원이 될 수 있는가'와도 맞닿아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애초에 그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쓰고 읽는다는 행위를 통해서 과거와 연대하고, 현재와 조우하며, 미래를 꿈꾼다. 그걸 시인 김복희 식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모두 우리가 알았던 사람들의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면서 살고 있는 것'인 셈이다.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원하고, 과거가 현재를 돕는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그 가능성을, 아주 실낱같을지라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는 김복희, 권박, 김리윤, 김은지, 민구, 박소란, 서윤후, 신동옥의 시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개인적 호불호와는 별개로, 상을 받을 만한 시인들이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청년 윤동주가 시인 윤동주로서 다음과 같이 시를 맺었듯이, 우리 역시 그렇게 시대의 어둠을 조금씩 내모는 현재를 조우한다. 우리의 미래이기도 한 사람들을.그 들의 선의와 신념과 열정을. 우리는 그렇게 연대하고, 서로를 구원한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