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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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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튜버가 필사하기 좋은 책으로 추천한 에세이집이다. 필사하기 좋은 책. 작가에게 그보다 더한 찬사가 있을까. 정작 필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눈으로 베껴 쓴다는 기분이 들만큼 문장부호, 줄 바꿈, 어휘선택, 문장의 길이까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평소 같으면 후루룩 읽었을 만큼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후딱 읽고 던져놓고 싶지 않았다.   《일기》. 제목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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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튜버가 필사하기 좋은 책으로 추천한 에세이집이다.

필사하기 좋은 책. 작가에게 그보다 더한 찬사가 있을까.

정작 필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눈으로 베껴 쓴다는 기분이 들만큼 문장부호, 줄 바꿈, 어휘선택, 문장의 길이까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평소 같으면 후루룩 읽었을 만큼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후딱 읽고 던져놓고 싶지 않았다.

 

일기. 제목처럼 늘 몸에 지니고 다녀도 좋을 법하게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책이다.

저자, 황정은. 책날개에 얼굴 가린 사진 한 장과 프로필도 없이 소설가라는 간단하다 못해 빈약한 작가 소개가 있다. 약력 몇 줄 넣기가 어려워서 생략한건 아닐테고, 뭔가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며 검색해 봤다. 76년생, 불문과 중퇴. 의 그림자, 야만적인 앨리스씨등의 장편소설과 디디의 우산, 연년세세등의 소설집을 출간했다. 최근 문학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항의한 일로 뉴스에도 등장했다. 세월호, 미투, 소수자 인권 문제 등, 사회의 여러 문제를 고민하고, 세상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작가다. 그러다 보니 책에 수록된 열한편의 에세이도 대부분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세상과 손잡고 있다.

 

수명壽命의 명엔 타고 났다는 의미가 있고 그 때문인지 나는 가끔 수명이나 이라고 말할 때 그 목숨이 본래 가진 길이를 본 것처럼 말한다. 명이 다했다고 말하고, 명이 줄거나 늘었다고 말하고, ()명을 연장하고 단축했다고 말하면서 ...... 하지만 지금 사람들의 명은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는 구조構造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재정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의료서비스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지, 어떤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혐오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 어떤 형태의 가난을 겪었는지/겪고 있는지, 어떤 제도와 정책의 영향을 받으며 살고, 어떤 정책이 부재한 채로 그 부재의 영향을 받으며 사는지 등등이 전부 명의 조건이다.

(p34)

 

문득 시간을 생각하고, 나와 주변인들의 나이를 헤아려보고, 인간의 DNA와 노화를 떠올리고, 그 다음엔 주어진 수명을 살 수 없는 소수자의 문제에 눈을 돌린다. 의식의 흐름을 논리정연하게 확장시켜가며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간다. ‘일기라는 제목 때문에 신변잡기식의 가벼운 이야기를 예상했지만 글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가장 사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신에게 매몰되지 않고, 서로의 이음새를 보고, 모두의 안녕을 걱정한다.

게다가 저자는 그저 참여하거나 문제를 지적하는 데만 의의를 두지 않고, 용기 있게 자신의 피해 경험을 토대로 해결책을 찾아내,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자 노력한다.

 

어린 시절의 나를 탓하지 않는다. 그 일들을 내가 원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이렇게 된다고, 결국엔 무감해지고 괜찮아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경우엔 만날 때마다 그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친척들과의 왕래를 뒤늦게나마 중단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내가 겪은 어려움이 그것만은 아니었다는 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

그러나 그 순간들을 잊은 적은 없다.

(p.180)

 

가장 충격적인 챕터였던 흔.

부모님의 살뜰한 보살핌 없이 고군분투해야 했던 어린 시절, 아무도 방어해주지 않던 그 때 겪은 성폭력은 오래도록 트라우마가 되었고, 저자는 아직도 어제 일처럼 괴로워한다. 가해자인 사촌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여전히 애써 외면하는 중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더 화나는 건 부모의 뜨뜻미지근한 태도, 그리고 더더 노여운 일은, ‘커서 뭐가 되려고라는 죄책감을 피해자가 짊어지도록 만드는 닫힌 사회였다.

 

처음엔 얼마나 잘 쓴 글인가에 주목하고 봤는데 뒤로 갈수록 단어나 문장, 문체보다 작가 자신에게 몰입하게 되었다.

필사를 추천할 정도로 문장이 아름답다고 해서 읽은 책이다. 내가 아름다움이란 말의 뜻을 오해했나보다. 아름답다는 걸 그저 미사여구나 깔끔하고 정갈한 문체 정도로만 이해했으니 말이다. 이 책의 문장들은 분명 아름답지만 그것은 손끝으로, 머리로 얻어진 게 아니었다. 진주를 껴안듯 그렇게 아파하고, 당장 손해 볼망정 차마 남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살아온 당당한 결과물임을, 이제는 안다.

어찌어찌 연습해서 문장은 그럴듯하게 쓸 수 있을지 몰라도, 진실을 파고드는 올곧은 그 마음을 반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일일이 베껴 쓰지는 않았지만 빨리 읽고 넘기기 아쉬워 한 문장, 한 문장,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따라 쓰기에도 좋지만, 소리 내어 읽기에도 적당하다는 것을.

눈으로, 입으로, 손으로. 그렇게 공들여 읽고 싶은 책을 만났다.

s*****e 2023.06.24. 신고 공감 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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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日記』 다들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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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에는 그 사람의 생각과 고민이 담겨 있다. 혹시라도 누가 내 마음을 들여다볼까 봐 열쇠 달린 일기장을 구매해 쓰기도 했다. 지금은 어떤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일기를 쓴다. 물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보다는 불특정다수가 보는 거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하게 된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시인 혹은 소설가의 에세이를 즐겨 읽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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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에는 그 사람의 생각과 고민이 담겨 있다. 혹시라도 누가 내 마음을 들여다볼까 봐 열쇠 달린 일기장을 구매해 쓰기도 했다. 지금은 어떤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일기를 쓴다. 물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보다는 불특정다수가 보는 거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하게 된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시인 혹은 소설가의 에세이를 즐겨 읽는 편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마음이 드러나는 글을 읽고 있으면 작가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공감의 일환일까. 어쨌든 에세이를 자주 읽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에세이를 잘 쓰지 않기로 유명한 작가들의 책이 나올 때면 몹시 두근거린다. 이제야 마음을 터놓을 준비를 한 그들의 진솔한 마음들을 느끼고 싶어서다.

 

 

 

황정은의 이번 책도 처음으로 펴낸 에세이라 의미 있다. 많은 사람이 기다렸을 작가의 에세이는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기억과 고통의 시간이 혼재하는 글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고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절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그냥 묻어버리고 싶은 기억들. 하지만 에세이를 쓰게 되면 말하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을 거 같다. 비슷한 경험과 기억이 있다면, 그걸 말하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 혹은 자주, 글은 치유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드러냄으로써 치유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황정은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이는 황정은의 글을 읽고 출판일을 하게 되었다고도 밝혔다. 다른 사람들이 황정은을 높게 평가하니 읽게 되었다가 반하게 된 케이스다. 작가의 책이 나올 때마다 구매하게 되는 것.

 

시집과 같은 아담한 사이즈의 책에서는 진지함이 가득했다. 부모와 자매들의 애틋함. 고통스러운 기억.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행되는 것들 때문에 우리는 아프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도 애써 기억을 감춘다.

 

 

 

소설을 쓰는 일은 여우에 홀려 여우굴에 들어가는 일과 얼마간 닮았다. 백지를 바라보다가 한 계절, 두 계절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봄비 내릴 때 책상 앞에 앉았는데 소설 한 편을 마무리하고 나오니 낙엽이 떨어지는 때,라는 패턴으로 시간이 흐르는 일을 직업으로 택해 살다보니 나이를 띄엄띄엄 생각하거나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32페이지)

 

소설을 쓰는 일은 디스크 등 각종 통증을 유발한다. 소설을 쓰기 위해 파주로 이사한 뒤의 일상을 적은 글에서 작가는 자신만의 운동법을 소개한다. 호수공원 쪽으로 산책하는 작가의 일상과 책 이야기를 한다. 민요상 책꽂이는 라디오에서 내용을 들어 얼른 그 부분을 읽고 싶었었다. 네 살의 조카가 세계문학전집의 출판사 이름을 따라 쓴 민요상이라는 글자에서 조카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민요상 책꽂이라 이름 붙이고 조카에게 물려줄 것을 상상하는 그 마음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목포행에서 작가는 목포 신항에 인양된 세월호를 보고 느낀 점들을 말한다. 고통과 치욕의 사고에서 멀어져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내 일이 아니라고 그동안 잊고 있었다.

 

빨강머리 앤을 보고 자랐던 우리는 앤에 대한 관심에서 마릴라 아주머니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라마에서 출발하여 학대당하는 아이에 대하여 말하는데 우리가 사회의 이면을 너무 모른척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연재가 이어지는 동안 문장을 계속 쓸 수 있었고 덕분에 소설 한편을 무사히 썼다.

쓰고 싶지 않다거나 쓸 수 있다거나, 아무튼 쓰는 것을 생각하는 일은 쓰지 않는 틈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도 새삼 알았다. (161페이지)

 

매일 일기를 쓰면서 문장을 쓰는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아무렇게나 쓴 글이 그의 일기다. 소설처럼 완벽한 문장들의 집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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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21.11.01. 신고 공감 1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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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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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황정은이 첫 에세이를 냈다. 제목도 의미심장한 『일기日記』다. 하루를 기록하는 일, 그건 단순하면서도 어렵다.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은 평범으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하루는 어떤 이에게는 생사의 갈림길이며 어떤 이에게는 변곡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그런 마음이 커진다. 코로나 시대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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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황정은이 첫 에세이를 냈다. 제목도 의미심장한 『일기日記』다. 하루를 기록하는 일, 그건 단순하면서도 어렵다.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은 평범으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하루는 어떤 이에게는 생사의 갈림길이며 어떤 이에게는 변곡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그런 마음이 커진다. 코로나 시대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날들을 살아가면서 하루하루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면서도 그 변화에 어떻게든 반응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건 낯설게만 느껴진다. 반응의 시차가 너무 큰 것일까. 어쩌면 나에게만 해당되는 기분일지도 모른다.

r*********s 2021.11.02.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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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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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열렬하게 좋아하게 되면 그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진다. 유명 연예인의 팬이 그러하듯 기사를 사진을 찾아보고 기사나 인터뷰 내용을 읽고 그를 알아간다. 독자에게 소설가도 다르지 않다. 특히 나에게 황정은이라는 작가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사적이면서 내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일기를 읽으면서 한 편으로는 모든 걸 다 기록해 주기를 바라면서도 한 편으로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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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열렬하게 좋아하게 되면 그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진다. 유명 연예인의 팬이 그러하듯 기사를 사진을 찾아보고 기사나 인터뷰 내용을 읽고 그를 알아간다. 독자에게 소설가도 다르지 않다. 특히 나에게 황정은이라는 작가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사적이면서 내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일기를 읽으면서 한 편으로는 모든 걸 다 기록해 주기를 바라면서도 한 편으로는 비밀스러운 뭔가를 감추기를 바랐다. 이상한 마음이지만 그랬다.

 

그의 글에서는 단조로우면서도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출퇴근을 하는 동거인과 사는 작가에게 파주의 공간은 뭐랄까 어떤 경계처럼 다가왔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로 나눠진 것 같았다. 산책을 하는 일상, 눈이 오면 베란다에 눈사람을 만드는 일, 화단에 식물을 가꾸는 일, 그것은 보편적인 일상이지만 그 안에 담긴 그만의 시간과 그만의 사유는 우리의 그것과 달랐다. 차분하면서도 담담하게 자신의 내부를 보여주다가 한 발짝 다시 뒤로 물러나는 그 모습이 나는 좋았다. 물론 이 모든 건 나의 기분이며 나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뭐 어쩌겠는가. 나는 그녀가 좋고 그녀를 읽고 그녀를 기대하는 게 전부인 것을.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읽고 책을 쓰는 사람이기에게 책갈피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면서도 이런 한 문장에서 나는 괜히 고마웠다. 그 역시 내게는 다른 사람이고 그가 만들어 낸 것으로 나는 위로받았고 무기력했던 어떤 시간을 구했으니까. 그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게 새삼 고맙다고 할까. 우리에게는 우리를 구원할 누군가의 글, 누군가의 음악, 누군가의 영상이 필요한 존재들이다.

 

다른 사람이 애써 만들어낸 것으로 내 삶을 구한다. (19쪽)

 

사실 황정은의 글에 대해 더 많은 걸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더 안다고 말하고 싶은 욕망, 그의 소설에서 내가 발견한 작은 기쁨 같은 것들에 대해 그게 맞냐고 질문하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글은 때로 아무 말도 필요 없게 만들기도 한다. 그저 거기 있어 읽고 읽은 후 가만히 후련해지고 뻐근해지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황정은의 하루하루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글들이 그러하다. 세월호 사건 이후 거리에 나가 집회를 참여하고 목포항에서 바다에서 건져올린 처참하고 녹슨 세월호를 보는 시간이 그러하다. 우리는 그의 글에서 함께 그 순간을 떠올리고 그 기억을 붙잡고 간직하려 애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사람들은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삭아버릴 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76쪽)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같은 걸 보고 같은 걸 듣고 같은 걸 겪는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전혀 같지 않다. 나와는 다른 환경에 놓인 사람들과 나를 같게 둘 수는 없다. 코로나를 경험하면서도 우리는 서로 다른 기억을 갖게 된다. 누군가의 죽음을 생각하며 지내온 시간은 곧 삶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 그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것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피할 수 없는 천등과 번개처럼 다가오는 무언가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황정은이 추천사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소설이나 동생들의 동의를 얻고 꺼내놓은 상처의 기억들. 나는 그가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 소설이 무언인지 알 수 있었고 그가 언급한 책들의 목록을 잊기 않기로 했다. 어쩌면 그는 삭제하고 싶었을 말들이 저 깊은 곳에서 스스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독려한 그것이 바로 그런 책이니까. 글이 힘이니까. 내가 황정은의 글에서 얻는 그것처럼.

 

그래도 나는 자주 바란다고 말하고 믿는다고 말한다. 예컨대 당신의 건강을 바라고 사람의 선의를 믿고 굳이 희망하는 마음을 나는 믿는다. 믿어 의심치 않겠다는 믿음 말고, 희구하며 그쪽으로 움직이려는 믿음이 내게 있다. 다시 말해 사랑이 내게 있으니, 사는 동안엔 내가 그것을 잃지 않기를. (160쪽)

 

알 수 없는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을 지켜보는 일은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거기다 여전한 혐오와 차별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서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것은 정치를 행한 기대일 수도 있고 예술을 향한 마음일 수도 있고 한 줄의 문장을 붙잡는 일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루를 견디며 하루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버팀목이 되면 좋겠다. 황정은의 글은 아마도 그 버팀목 가운데 든든한 하나가 될 것이다. 앞으로 계속 그의 글을 읽고 살아갈 것이다. 함께 이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기의 중요한 부분으로 기록될 수 있으니 얼마나 반갑고 좋은 일인가.

 

더 많은 이들이 그의 글을 읽기를 바라면서도 어떤 글은 나만 읽고 싶은 욕심을 부린다. 이런 우습고 보잘것없는 마음이 사랑이라는 걸 수줍게 고백해 본다. 고백이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r*********s 2022.05.24.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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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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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서?    아니, 그렇지는 않을게다.   일기는 말 그대로 하루의 기록,인데...내 입장에서는 한 동안 특별한 일 업이 지리멸렬한 날들만 반복되었다. 하지만, 이 작가의 글을 읽다보니...일상의 반복을 빙자하여 스스로 무관심하고 냉소적이지는 않았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완전 좋아서 난리칠 정도는 아니지만, 적당히 신간이 나오면 주목하게 되는 작가가 우리집 근처인 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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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라서?  

 아니, 그렇지는 않을게다. 

 일기는 말 그대로 하루의 기록,인데...내 입장에서는 한 동안 특별한 일 업이 지리멸렬한 날들만 반복되었다. 하지만, 이 작가의 글을 읽다보니...일상의 반복을 빙자하여 스스로 무관심하고 냉소적이지는 않았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완전 좋아서 난리칠 정도는 아니지만, 적당히 신간이 나오면 주목하게 되는 작가가 우리집 근처인 파주에 산다는 것이 인상적인데...이렇게 후진 동네에 살면서 나는 그냥 저냥 밥이나 먹고 살고있는데...작가는 이런 저런 생각도 하고, 글도 쓰고 그렇게 사는 것이 조금 낯설다. 물론 작가가 밝고 명랑한 나날을 적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먹을 걱정만 하고 살았다면, 이 작가는 조금은 더 사회에 관심을 갖고 살았던 것 같아서 살짝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아니다. 내가 부끄러워질 것은 없다. 나 역시...주어진 내 삶에서 살아내려고 애쓰고 있을 뿐. 

 

전체적으로 마음에 드는 글들이였는데, 마지막 부분에서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썼고..말해서 다행이다. 

써내려 가면서  느꼈을 오만 감정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말하고 썼기 때문에... 작가가 조금은 더 편하게 자고 밥먹고 산책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덧붙임. 작가님, 건강하시기를. 

YES마니아 : 로얄 c******m 2021.12.20.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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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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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 스위치를 통해 읽으면서도 어서 책으로 엮이기를 기다렸다 몰라 종이책으로 읽으니까 훨씬 훨씬 후어어얼씬 좋더라고 나는 아주 얇은 책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전에 계간 문학동네에서 읽었던 산문이 뒷부분에 같이 엮였더라고- 덕분에 다시 읽었고 역시 좋았다    * 내 이웃들이 반달터에 두고 있는 관심을 나는 안다고 썼지만 실은 '아니까;라고 쓰는 데 하루를 망설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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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 스위치를 통해 읽으면서도 어서 책으로 엮이기를 기다렸다

몰라 종이책으로 읽으니까 훨씬 훨씬 후어어얼씬 좋더라고 나는

아주 얇은 책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전에 계간 문학동네에서 읽었던 산문이 뒷부분에 같이 엮였더라고-

덕분에 다시 읽었고 역시 좋았다 

 

*

내 이웃들이 반달터에 두고 있는 관심을 나는 안다고 썼지만 실은 '아니까;라고 쓰는 데 하루를 망설였다. '안다'고 쓰거나 말해야 할 때 나는 매우 축소된다. 내가 그것을 안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내가 그걸 모른다는 것을 안다. 알아버린 것을 모르는 척, 안다고 말해야 할 때 나는 순진한 척을 하며 무언가를 단념하고 있고 그래서 안다고 말하는 것이 내게는 늘 얼마간 책임을 지는 일로 느껴진다. 그래도 목포가 항구도시라는 것을 알고 그 도시 어디쯤에 서울분식이 있다는 것을 안다. 운정호수공원의 가로등들이 새벽 한시쯤 꺼졌다가 다섯시쯤 켜진다는 것을 나는 알아.

 

*

사랑해요 황정은

이것도 알아줘요

 

YES마니아 : 플래티넘 c*******l 2021.10.31.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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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잊을 수 없던 12월 3일 이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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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에세이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문장이다계엄과 탄핵, 슬픔과 분노, 다정함과 고마움따뜻한 빛처럼 위로가 되는 황정은의 작고 단단한 기록들#작은일기#황정은#창비황정은의 문장을 소설로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황정은에게 소설쓰기를 멈추게 했다. 2024년 12월 4일, 전국민에게 또다시 잊지 못한 하루를 만들어냈다. 권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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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에세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문장이다

계엄과 탄핵, 슬픔과 분노, 다정함과 고마움
따뜻한 빛처럼 위로가 되는 황정은의 작고 단단한 기록들

#작은일기
#황정은
#창비

황정은의 문장을 소설로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황정은에게 소설쓰기를 멈추게 했다. 2024년 12월 4일, 전국민에게 또다시 잊지 못한 하루를 만들어냈다. 권력에 미친 한 인간의 선택, 비상계엄이라는 황당하면서 두려움에 떨게 했는 그 결정의 날을 우리는 잊지 못할 것이다.

<작은 일기>는 소설가 황정은이 현직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라는 초유의 사태 이후에 대해 써내려간 글이다. 12월 3일 이후로 매일의 삶을 기록하며 광장에 나가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집안에서, 거리에서 보고 느꼈던 것을 기록했다. 함께 분노했고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한 피로감에도 광장으로 나갔다. 감히,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던 시간들. 우리가 모두 한마음이지 않다는 사실이 처참하면서도 매일 쏟아지는 뉴스에 지쳐버리기도 했다. 어떻게 법원에 쳐들어갈 수 있는지, 탄핵을 반대할 수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폭설에도 밤새 자리를 지키는 키세스단이나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시민들의 모습에 우리는 모두 놀랐고 감동했으며 고마웠다. 극단적이면서 폭력적인 극우세력의 모습 앞에서 다른 의미로 놀라웠고 극우세력과 함께하는 언론, 정치인, 사법기관의 행태에는 씁쓸함을 넘어 참담하고 슬프기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참담함을 딛고 평온함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 무모하고 끔찍했던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했다. 여전히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고 윤씨의 태도는 꼴도 보기 싫지만 분명 우리에게 정의로운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에 동조했던 인간들의 이름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P. 188 윤석열, 한덕수, 최상목, 심우정, 지귀연, 조희대
(더많은 인간들이 있겠지만)









P. 10 번역서 두권을 주문하는 김에 귤을 샀다. 지난달에 백두대간수목원을 방문하고 들은 이야기도 곧 원고로 정리해야 한다. 오늘은 원고지 다섯매를 썼는데 밤에 한번 더 보면서 다듬고 싶다.

오후 열시 이십삼분
계엄.

P. 13 국회의원이든 시민이든 그 자리에 모인 사람 중에 절박하지 않은 이가 있었을까. 나도 계엄에 반대하고 윤석열의 탄핵과 구속을 간절히 바라며 서 있었지만, 윤석열과 그가 초래한 국가 상태를 묘사하려고 ‘정상‘과 ‘비정상‘을 반복해 말하는 몇몇 연설은 집중해 듣기가 어려웠다. 이사회의 정상성 기준으로 불편과 부당을 겪는 사람들, 소수자들도 여기 있는데 별 조심성 없이 그 말들이 사용되고 있었다. 선 자리가 따끔했고, 뒤쪽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 불편함을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래도 되는 시간일까. 2016년 광화문에서 한 생각을 2024년 국회 앞에서도했다.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느꼈다.

P. 38-39 12월 3일, 국회가 계엄을 해제하고 새벽 네시 삼십분에 이를 때까지, 그리고 이후로 주말까지, 특수요원들을 동원한 국지전 위험이 있었다는 뉴스 보도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국지전을 일으켜 계엄을 정당화하고 장기 집권으로.
2024년 12월 둘째 주, 지금으로선 이름도 붙이지 못할 이 기간의 불안과 울분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감히.
혼란이 어느 정도 가시고 나니 이 말만 입속에 줄곧 서 있다. 감히.

P. 43 나도 겪곤 하니까. 그 무서운 일을 내게 너무나 중요한 그것이 당신에겐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목격하는 일, 사람의 무언가를 야금야금 무너뜨리는 그 일을.

P. 58 그 추운 밤을 그 자리에서 보낸 사람들도 놀랍고, 그들에게 난방 버스며 음식이며, 바람 넘는 고개에서 버티는 데 도움이 되는 물품들을 즉시 보낸 사람들도 놀랍다. 그건 나라에서 받은 것이 없어도 위기가 닥치면 들불같이 일어난다는 어느 민족의 성격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남의 곤경과 고립을 모르는 척 내버려두거나 차마 두고 갈 수는 없는 마음들 아닐까. 남의 고통을 돌아보고, 서로 돌볼 줄 아는 마음들.

P. 64-65 사람들의 악함을 마음에 들여 되짚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게도 그 싹이 무성하게 있으니까. 그런 것이 자신에겐 없을 거라고 믿는 얼굴 앞에 서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내게는 그런 입장 역시 악함의 기반이 되는 약함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람들의 약함에 내가 얼마나 분노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약함은 어느 정도 그의 탓일까. 그리고 권력 가진 이들의 혼돈 그 자체인 악함도 약함에서 그 탓을 찾을 수 있을까.

P. 85 누가 그랬나. 케이팝과 응원봉의 물결을 보며 축제 같다고.
그런 면도 물론 있지만 이 집회의 가장 깊은 근원을 나는 그 순간에 본 것 같았다. 슬픔. 저마다 지닌 것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을 가지고 나간다는 그 자리에 내가 바로 그것을 쥐고 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무사를 바라며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그 자리에 남아 밤샘 집회를 하고 있다.
눈 내린다.
파주에도 서울에도.

P. 102 현장에서 체포된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이삼십대 남성이라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같은 세대 여성들이 이 나라 민주주의와 헌법을 지키려고 추운 날 거리를 돌아다니고 서로를 돌보며 밤을 새우고는 할 때, 저들은 비틀린 세계인식과 자아 인식으로 국가기관인 사법부에서 난동을 부렸다. 대가를 치를 것이다. 동시에 이 광경을 봐야 하는 사회구성원들도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그들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가르쳐온 걸까. 1월 19일 새벽, 우리 사회가 그간 육성해온 일부가 크게 자라나 이 괴상망측한 열매를 거뒀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다, 이것도 과정이지, 결과도 아닐 것이다.
젊은 남성들의 이 고집스러운 고립이 징그럽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냉소와 혐오와 자기연민과 기만으로 가득한그들이 놀이 삼아 자신과 타인의 삶을 조롱하고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이제 더 보고 싶지 않다. 불법 계엄이라는 국가폭력이 그들과 너무도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다. 스펙트럼으로 이 내란을 보면 윤석열이 그들의 일면이기도 할 테니까.

P. 112 2월 27일 목요일 오후 여덟시 오분
지난 2월 25일.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탄핵 재판의 최후 변론이 있었다. 국회 측 대리인인 장순욱 변호사의 최후 변론이 내게무척 아름다웠다. ˝오염˝이라는 말로 내 상처의 원인을 부드럽게 짚어주는 것 같았다. 말헌법의 오염. 바로 그것을 내가 견디기 어려웠다. 정확한 말이 건네는 위안을 받았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피청구인은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언동을 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말했습니다. 헌법을 파괴하는 순간에도 헌법 수호를 말했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헌법의 말, 헌법의 풍경을 오염시킨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이 노랫말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우리도하루 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그 첫 단추가 권력자가 오염시킨 헌법의 말들을 그 말들이 가지는 원래의 숭고한 의미로 돌려놓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국민과 함께 이 사건 탄핵 결정문에서피청구인이 오염시킨 헌법의 말과 헌법의 풍경이 제자리를찾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P. 166 4월 4일 금요일 시간기록없음
윤석열이 오늘 파면되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 일치로 오전 열한시 이십이분에 선고되었다.

불신과 환멸과 걱정과 불안으로 말라 죽을 것 같던 마음이 단숨에 차올랐다. 세상을 향한 감이 그렇게 또 뒤집혀서, 나는 정말 얄팍하구나, 생각했다. 헌재 앞에 모인 사람들의 함성을 뉴스로 들었다. ˝당신들하고 동시대를 산 덕분에 이걸 보았어, 영광입니다.˝ 그 말을 내 집 거실에서 광장의 함성에 보탰다.

그 이름으로 시작되는 마지막 일기가 되기를 바라며 이만 마침.

P. 184
나는 손상되었습니다.
엄중함을 엄중함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받은 상처로
사랑하는 것,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남은 상처로 손상되었고
그 일부를 일기에 담았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y*******2 2025.08.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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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이야기를 일상의 언어로 꺼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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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이라는 작가를 그저 몇개의 단어로 기억하고 있었다. 소설가, 디디의 우산, 계속해보겠습니다, 책읽아웃. 채널예스를 읽는 사람이라면 황정은 작가를 모를 수가 없지만 나는 그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기에 그런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그의 첫 에세이가 나왔을 때 뭔가 가족의 출판을 축하하는(!) 느낌이어서 지나치곤 했다. SNS를 하다보면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들에 세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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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이라는 작가를 그저 몇개의 단어로 기억하고 있었다.

소설가, 디디의 우산, 계속해보겠습니다, 책읽아웃.

채널예스를 읽는 사람이라면 황정은 작가를 모를 수가 없지만

나는 그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기에 그런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그의 첫 에세이가 나왔을 때 뭔가 가족의 출판을 축하하는(!) 느낌이어서 지나치곤 했다.

SNS를 하다보면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들에 세뇌를 당하는 부작용이 있긴 해도

가끔은 좋은 글, 좋은 책을 소개받기도 하는데

황정은 작가의 에세이 일기도 그 중의 하나였다.

이렇게나 좋다는 얘기가 많은데 어쩐지 읽어야할 것 같았다.

 

요즘 에세이를 너무 읽는 것 같아서 이제 좀 그만 사야겠다 했는데

여전히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늘 궁금한가보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코로나 시대의 일기"

일기를 이렇게 잘 쓸 수도 있구나 하는 첫인상으로 문을 열었다.

너무한다. 글을 이렇게 잘 쓰면 다른 사람은 일기를 어떻게 쓰나.

일기라는 형식을 빌어 쓴 글들이긴 해도, 참 지나치게 잘 쓰는구나.

새삼 황정은 작가의 소설과, 다른 글들이 궁금해졌다.

 

파주라는 다소 쓸쓸한 공간,

코로나 19로 인한 자발적 격리,

내면으로 내면으로 파고들어 나오는 진심의 글들을 읽으며

같이 나도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들이었다.

에세이였지만 그녀가 다루는 주제는 가볍지 않았다.

세월호, 아동학대, 가족내 성폭력까지.

꺼내기 힘든 이야기들을 일상의 언어로 써낸 것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도 저자의 조심스러운 단어선택이 마음에 와 닿았다.

자신의 생각을 대놓고 드러내고 강요하지 않으려는 그 조심스러움이

그녀에 대한 신뢰를 갖게 했달까.

그 외에도 책갈피 취향, 빨강머리앤 이야기, 종이책 옹호론과 같이

개인적인 이야기도 동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너무 가볍지 않아서, 너무 무겁지도 않아서 좋았던

글 잘 쓰는 작가 황정은의 첫 에세이 일기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b 2022.02.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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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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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라서 소장용 책만 구입하는 편인데, 황정은은 내 최애 리스트중 하나다.  일단 책 표지가 맘에 든다. 책 등에는 금박으로 이름 배경이 채워져 있어서 이쁘다.  책 내용이야 뭐 황정은을 아는 독자라면 알만한 그 특유의 무드가 에세이에도 있다.  그러니까 그게 무심하게 읽다가 툭툭.하고 사람 먹먹해지게 하고 책을 덮고 한템포 쉬게 만든다. 그래도 왜 이 작가를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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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라서 소장용 책만 구입하는 편인데, 황정은은 내 최애 리스트중 하나다. 
일단 책 표지가 맘에 든다. 책 등에는 금박으로 이름 배경이 채워져 있어서 이쁘다. 
책 내용이야 뭐 황정은을 아는 독자라면 알만한 그 특유의 무드가 에세이에도 있다. 
그러니까 그게 무심하게 읽다가 툭툭.하고 사람 먹먹해지게 하고 책을 덮고 한템포 쉬게 만든다. 그래도 왜 이 작가를 이렇게 좋아하는지 친구들에게 설명할때면 나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냥 작가와 독자가 케미가 맞다면 팬이 되는 거겠지. 

YES마니아 : 로얄 b******o 2021.10.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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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고 또 기록하여도 모자란 어떤 욕구들로 가득하여... 황정은, 일기 (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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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은평둘레길 4코스를 가장 빠른 시간에 이동한 날이다. 우리는 아주 짧은 구간은 느린 속도로 뛰었고, 대부분 구간은 빠르게 걸었다. 빠르게 걷는 것과 느리게 뛰는 것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아내가 말해 주었다. 걷는 속도를 계속 올린다고 하여 달리기가 되는 것은 아니고, 걸을 때와 뛸 때에는 사용 근육과 근육의 사용 반경 등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아주 짧게
"기록하고 또 기록하여도 모자란 어떤 욕구들로 가득하여... 황정은, 일기 (日記)" 내용보기

  어제는 은평둘레길 4코스를 가장 빠른 시간에 이동한 날이다. 우리는 아주 짧은 구간은 느린 속도로 뛰었고, 대부분 구간은 빠르게 걸었다. 빠르게 걷는 것과 느리게 뛰는 것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아내가 말해 주었다. 걷는 속도를 계속 올린다고 하여 달리기가 되는 것은 아니고, 걸을 때와 뛸 때에는 사용 근육과 근육의 사용 반경 등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아주 짧게 설명해 주었다. 


  “... 공포와 혐오는 애쓰는 상태가 아니다. 그중에 혐오는 특히 그래서, 그건 지금 내게도 쉽다. 그런 감정이 내게 문득 쉬울 때, 뭔가가 누군가가 즉시 싫고 밉고 무서울 때 나는 그것이 어느 정도로 상상된 것인지, 혐오는 아닌지를 생각한다.” (p.69)


  기자촌공원에서 점심을 먹고 기자촌공원지킴터에서 향로봉 쪽으로 방향을 잡아 올랐다. 기자능선 초입 바위에 홀로 나부끼듯 서 있는 소나무를 바라보느라 한참을 있었다. 기자능선의 왼쪽으로는 지난주와 확연히 달라진 숲의 색을 확인할 수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언제나 변함없이 요란한 도시의 한 켠이 바라다 보였다. 기자능선을 지나 좁고 경사진 오르막을 올라가는 동안, 트레일 러닝화를 신은 채였기 때문이라고 하고 싶다, 공포스러웠다. 


  “꽃을 들여다보며 쓴 문장엔 그날의 기억이 깃든다. 색을 보고 향을 맡고 잎맥을 관찰하며 소설을 생각한 오늘 오전도 틀림없이 문장에 깃들었는데 어느 문장을 그렇게 썼는지를 나만 알고 나는 그런 게 즐겁다...” (p.117)


  친척 결혼식이 있어 일요일의 산행을 포기했다. 작은 고모의 셋째 딸의 첫째 아들의 결혼식이었다. 어린 시절 방학 때면 시골의 할머니 댁에 머물곤 했다. 고개 넘어로 시집을 간 작은 고모가 한과를 직접 만들어 가져다 주셨다. 할머니는 도시에서 온 손주를 귀히 여겼지만 통 웃지 않으셨고, 언 손을 잡고 호오 불어준 것은 오히려 작은 고모였다. 작은 고모에겐 네 명의 딸과 두 명의 아들이 있는데, 그들도 도시에서 온 우리를 아껴 주었다.


  “... 문학의 존멸은 내 싸움이 아니다. 내가 오늘 무슨 생각을 했는지, 뭔가를 썼는지, 쓸 수 있었는지가 나는 궁금할 뿐이다. 소설을 쓰며 살다보면 문학이란, 하고 묻는 질문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 이미 있는데 하필 왜 있느냐고 물어 멈추게 만드는 질문을. 누가 내게 그렇게 물으면 나는 일단 그를 의심한다. 개수작 마, 하고 실은 생각한다... 그렇게 묻는 이를 만나면 너는 실은 내 원고나 내 싸움엔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너의 싸움에서 네가 스스로 찾찾지 못한 대답을 내게서 가져가려는 것뿐이다, 하고 생각하며 그를 잘 봐둔다.” (p.142)


  큰 고모쪽까지 합하여 내게는 모두 열 한 명의 고종 사촌이 있는데, 그로부터 비롯된 5촌 지간의 (내종질이라는 어려운 단어로 정리되는) 조카들이 (지금 꼽아보니) 열 여덟 명쯤(?) 된다. 오늘은 그 중 한 명의 결혼식이었다. 오늘이 이 조카들 중 세 번째 결혼식이었으니 앞으로 열 다섯 번이 더 남은 셈이다. 여기에 더해 이종 사촌 쪽의 조카가 두 명 더 있고, 결혼 안 한 사촌 조카도 두 명 더 있고, 친 조카도 세 명이 있다. 아내와 나는 자식을 두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이제 많이 늙어서 하루하루가 다르다. 바닥이 따뜻하면 잠을 잘 자는 것 같아 저녁엔 보일러를 틀어둔다. 햇감자와 오이를 요즘은 자주 먹고. 해당화는 끄트머리 잎이 조금 말랐지만 가지 곳곳에서 가시 같은 빨간 싹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 주람엔 둘째 동생이 자기 집 설거지통에서 싹을 틔운 수세미를 두고 갔는데 조그만 화분에 심어두었더니 동거인과 내가 모르는 사이에 튼실한 떡잎이 두장 올라왔다. 수세미가 쌍떡잎식물이었네, 하고 동거인이 동생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봄 내내 화초들을 심어 화단을 잘 가꾸었는데 보러 오라고 초대할 사람은 없다.
  동거인과 나는 그것도 괜찮다.” (p.166)


  아내와 둘이 조용히 다녀올 작정이었지만 막판에 아버지가 결혼식 참석을 고집하셨다. 아버지가 가시니 어머니도 가겠다고 하셨고, 아내는 그냥 집에 머물기로 하였다. 다행히 차가 막히지 않아 녹번에서 수서까지 오며가며 한 시간씩이 걸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느 선까지 결혼식을 참석해야 하는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버지가 계신 동안엔 모든 결혼식에 (장남인 내가 아버지와 함께) 참석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뉘앙스로(?) 알게 되었다. 


  황정은의 《일기(日記)》를 읽었더니 갑자기 일기가 쓰고 싶어졌다.

 

황정은 / 일기 (日記) / 창비 / 204쪽 / 2021 (2021)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21.10.3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