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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의 팔꿈치 읽다가 움찔했는데, 앞니가 부러져서 고생한 적이 있고 이게 정말 가장 힘들었던 때였던지라 가끔가다 꿈에 나온다(...) 지금은 고쳤지만. 치아라는 건 확실히 좀 그로테스크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 외에도 굉장히 끔찍하고 떠올리기 싫은데 흘깃거리게 되는 공포를 전반적으로 잘 표현한 시집인 듯하다.
장편 시가 하나 있었는데 낙태와 관련된 데다 어쩐지 소설같은 느낌이 들어서 맘에 들진 않았다. 옛날 피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아이를 많이 낳던 분들, 특히 여자 아이를 낙태하던 시절을 겪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글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사회에 관해 너무 많이 다룬 나머지 되려 시대성이 떨어진다고 보면 되겠다. 요즘은 여성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낙태에 되려 관대해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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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결국 알고 있으면서도 속는 경우가 많다. 속는 사람들을 비웃는 인간들이 많지만, 그럴 경우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하고 다짐만 하면 족하다. 아니지. 그래도 속아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감정이 앞서나간다면 침착하게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마음을 돈으로 팔아넘긴 사람들이 성공하고 사람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살아갈 아무 목표가 없어야 그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잘못된 것은 돈에 눈이 먼 시스템일 뿐이고 이를 깨닫지 못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잔인한 속임수에 속아넘어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출할 신용마저 없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나마 돈이 있으니까 속을 수 있는 거라고... 나같이 돈도 힘도 없는 자는 속을 여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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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매우 좋아한다. 한 몇 시간은 사진이나 그림을 감상하며 빙글빙글 돌 자신 있다. 돈이 없어서 요새는 꽤 활력을 잃었지만, 돈 모으면 이런 곳들만 골라 투어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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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상자에서 꺼내어 시간의 가장 귀한 보석을 감춰둘 곳은 어디인가?
지금 흐르는 이 시간은 한때 어떤 시간의 꿈이었을 거야. 지금 나는 그 흐르는 꿈에 실려가면서 엎드려 뭔가를 쓰고 있어. 곤죽이 돼가고 있어. 시간의 원천, 그 시간의 처음이 샘솟으며 꾸었던 꿈이 흐르고 있어.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달덩이가 자기 꿈을 달빛으로 살살 풀어놓는 것처럼. 시간의 꿈은 온 세상이 공평해지는 거였어. 장대하고 아름답고 폭력적인 꿈.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무너뜨리며 모든 아픈 것들을 녹여 재우며 시간은 흐르자고 꿈꾸었어. 이 권력을 저지할 수 있는 자, 나와봐. 이 세계는 공평해야 된다는 꿈. 아무도 못 말려. 그런 꿈을 꾸었던 그때의 시간도 자신의 꿈을 돌이킬 수가 없어. 시간과 시간의 꿈은 마주 볼 수도 없어.
서시다. 시집의 방향을 알려주거니와 대표한다. 시간에 대한 것일뿐더러 시인과 시에 대한 이야기 같아서일 게다. 목숨을 가진 존재라면 누구도 시간을 벗어날 수 없다. 지금 흐르는 이 시간이 한때 어느 시간의 꿈이었을지라도 시간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렇더라도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무너뜨리며 모든 아픈 것들을 녹여 재우고 싶은 장대하고 아름답고 폭력적인 꿈을 꾸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바로 우리의 존재이고 그것의 극명한 한 양태가 시인이자 시일 테다. 그리하여 “우리는 뭔가를 기다리지만 기다릴 수가 없다”(「나는 짜장면 배달부가 아니다」), 그리고 “나를 끌고 다니는 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 저 팔꿈치, 내 마음이 아니라 저 삐걱대는 계단과 딱딱한 벽, 더러운 발바닥, 검은 미로의 갱도”(「릴케의 팔꿈치」)이다.
개천은 용의 홈타운
용은 날개가 없지만 난다. 개천은 용의 홈타운이고, 개천이 용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날개도 없이 날게 하는 힘은 개천에 있다. 개천은 뿌리치고 가버린 용이 섭섭하다? 사무치게 그립다? 에이, 개천은 아무 생각이 없어, 개천은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을 뿐이야.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용은 벌컥 화를 낼 자격이 있다는 듯 입에서 불을 뿜는다. 역린을 건드리지 마, 이런 말도 있다. 그러나 범상한 우리 같은 자들이야 용의 어디쯤에 거꾸로 난 비늘이 박혀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있나.
신촌에 있는 장례식장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햇빛 너무 강렬해 싫다. 버스 한대 놓치고, 그다음 버스 안 온다, 안 오네, 안 오네…… 세상이 날 홀대해도 용서하고 공평무사한 맘으로 대하자, 내가 왜 이런 생각을? 문득 제 말에 울컥, 자기연민? 세상이 언제 너를 홀대했니? 그냥 네 길을 가, 세상은 원래 공정하지도 무사하지도 않아, 뭔가를 바라지 마, 개떡에 개떡을 얹어주더라도 개떡은 원래 개떡끼리 끈적여야 하니까 넘겨버려, 그래? 그것 때문이었어? 다행히 선글라스가 울컥을 가려준다 히히.
참새, 쥐, 모기, 벼룩 이런 것들은 4대 해악이라고 다 없애야 한다고 그들은 믿었단다. 그래서 참새를 몽땅 잡아들이기로 했다지? 수억마리의 참새를 잡아 좋아하고 잔치했더니, 다음 해 온 세상의 해충이 창궐하여 다시 그들의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 않니,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어, 영원히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린다 해도 넌 벌컥 화를 낼 자격은 없어, 그래도 개천은 용의 홈타운, 그건 그래도 괜찮은 꿈 아니었니?
한때 개천이 용의 홈타운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너무 아득하게 여겨지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개천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개천은 없다. 수억 마리의 참새를 잡았듯이 개천을 척결해 버렸다. 참새가 사라진 세상, 다음 해 온 세상의 해충이 창궐하여 다시 그들의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개천의 세상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개천에 살던 수많은 목숨만 죽어갈 뿐이다. 필경 세상은 다른 것을 준비하고 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처절하게 죽어나가는 목숨이다. 다른 쪽에서 질펀하게 벌이고 있는 잔치판이다. 이들의 극명한 불평등이다. 그리하여 지금 개천은 용의 홈타운이라고, 그건 그래도 괜찮은 꿈 아니었냐고 자위하는 것은 전혀 위무가 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