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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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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걸으면 걷는 대로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공중의 길, 아슬아슬하게 늘려간다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내는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밑에 떠 있었다   곤충의 마지막 날갯짓이 그물에 걸려 멈춰 있듯   사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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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걸으면 걷는 대로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공중의 길, 아슬아슬하게 늘려간다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내는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밑에 떠 있었다

  곤충의 마지막 날갯짓이 그물에 걸려 멈춰 있듯

  사내의 맨 나중 생이 공중에 늘어져 있었다

 

  그 사내의 눈은 양조장 사택을 겨누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당겨질 기세였다

  유서의 첫 문장을 차지했던 주인공은

  사흘 만에 유령거미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조장 뜰에 남편을 묻겠다던 그 사내의 아내는

  일주일이 넘어서야 장례를 치렀고

 

  어디론가 떠났다 하는데 소문만 무성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그 사내의 집을 거미집이라 불렀다

   

  거미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다

  - 박성우, 「거미」

 

 

시인은 허공을 짚고 내려오는 거미 한 마리를 보고 있다. 거미는 어떻게 허공을 짚을 수 있는 것일까? 거미가 헛발질을 한 다음에야 허공은 길을 내어준다. 거미는 공중의 길을 거미줄로 아슬아슬하게 늘려간다. 거미줄이 없으면 거미는 허공을 걸어갈 수 없다. 시인은 아슬아슬 거미줄을 내며 허공을 걷는 거미를 보며 한 사내를 떠올린다. 사내는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밑에 떠 있었다”. 사내를 거미줄에 걸린 끼니에 비유하는 발상이 이채롭다.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사내를 다른 사람들이 끌고 올라왔다. 사내는 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죽음 힘으로 살면 되지 않느냐는 말은 죽음을 결심한 사내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죽음보다 더한 아픔을 사내는 살아있을 때 겪었기 때문이다. 사내는 마지막 날갯짓을 멈춘 곤충처럼 그물에 걸려 있다. “사내의 맨 나중 생이 공중에 늘어져 있었다라는 진술로 시인은 사내의 비극적인 죽음을 묘사한다.

 

그 사내의 눈은 양조장 사택을 겨누고 있었는데라고 시인은 쓰고 있다. 사내는 양조장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을까? 양조장 사택에는 누가 살길래 사내는 죽어가면서까지 그곳을 노려본 것일까? 유서를 남기고 죽은 사내는 사흘 만에 유령거미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의 아내는 남편을 양조장 뜰에 묻겠다고 외쳤다. 양조장은 그럼 원래 사내 소유였던 것일까? 가족들은 사내의 장례식을 일주일이 지나서야 치렀다. 사내는 양조장 뜰에 묻혔을까? 그럴 리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자본이 아닌가? 자본에 밀린 사내는 유서를 쓰고 죽었고, 자본에 밀린 가족들은 속절없이 어딘가로 떠났다. “소문만 무성했다는 시구로 시인은 사내 집안에 드리워진 비극을 표현한다. 소문은 진실과 거짓 사이를 맴돈다. 사람들은 진실인 듯, 거짓인 듯 소문을 퍼뜨린다. 소문은 소문을 낳는다. 말이 또 다른 말을 낳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그 사내의 집을 거미집이라 불렀다”. 사내의 집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양조장 사택일까? 옥탑일까? 그도 아니면 유령거미가 되어 사는 또 다른 집일까? “거미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다라는 진술로 시인은 시를 맺고 있다. 거미는 허공을 걷기 위해 거미줄을 낸다. 허방다리를 짚지 않기 위해 거미는 허공을 향해 헛발질을 한다. 헛발질을 한 다음에야 허공에 거미줄이 생긴다. 목을 매고 죽은 사내 또한 거미처럼 허공에 줄을 내고 싶었을까?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사내는 그러나 허공을 걷는 거미가 되지 못했다. 제 목에 줄을 감았기 때문이다. 자살은 인간만이 한다고 하던가? 자살은 자기 생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생명이 왜 생명인가? ()을 본능으로 하기에 생명이 아닌가. 거미는 살기 위해 허공을 발을 딛는다. 사내는 죽기 위해 허공에 제 몸을 늘인다. ‘인간이라는 허명에 들뜬 사람들이 만든 세상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가 

 

거미가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 건 자연(自然)이다. 자연은 생존 욕구를 본능으로 하기 때문이다. 거미줄에 걸린 곤충은 힘이 남아 있는 한 몸을 움직인다.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 곤충은 죽는다. 사내의 죽음은 이런 자연 이치와 참으로 먼 자리에 있다.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다는 말은 하지 말자. 사내는 죽고 싶어서 죽은 게 아니다. 살아가는 일이 죽는 일보다 더욱 힘들기에 그는 목숨을 끊었다. 자연을 벗어나 문명을 세운 인간이 이른 길을 죽은 사내는 분명히 보여준다. 문명을 세우기 위해 인간이 자연에 저지른 만행들을 생각해 보라. 자연에 가해진 그 만행들을 인간은 지금 동족 인간들에게도 똑같이 저지르고 있다. 자본은 이익을 중시한다. 이익이 된다면 어떤 일도 가리지 않는다. 한 사람이 죽은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진다. 자본이라는 매트릭스에서 우리는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다.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고 자본 시장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가 

    

 

 

o*****s 2019.02.14.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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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에 걸린 세상의 옹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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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황지우와 박성우의 두 시집, 모두 대단한 작품들이었다. 황지우는 그 실험적이면서 독특한 형식이 놀라웠는데 박성우의 시들은 다른 의미에서 감동케 한다. 생물학적 상상력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어린아이나 원시인의 상상력이라고 할까나. 그가 시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사람과 자연 사이에는 거리가 없다. 초록 애벌레와 사내는 같은 길 위에 앉아 있고(「길」), 시인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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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황지우와 박성우의 두 시집, 모두 대단한 작품들이었다. 황지우는 그 실험적이면서 독특한 형식이 놀라웠는데 박성우의 시들은 다른 의미에서 감동케 한다. 생물학적 상상력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어린아이나 원시인의 상상력이라고 할까나. 그가 시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사람과 자연 사이에는 거리가 없다. 초록 애벌레와 사내는 같은 길 위에 앉아 있고(「길」), 시인이 거미를 보며 노래(「거미」)하기도 하지만 거미가 시인을 관찰하며 사유(「거미2」)하기도 한다. 박성우의 시각은 이렇게 사람과 자연을 구분짓지 않는 상상력이 발동하는데, 이런 그의 상상력 덕분인지 그가 주로 소재로 끌어쓰고 있는 가난과 소외 등도 처절하게 아픈, 뼈저린 통증의 문체는 아니다. 젊음이 본 눈답지 않게 담담하게, 그리고 주위의 온갖 사물과 자연을 끌어 빗대는 척 하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말소리로 말한다. 시인의 입으로 꼼틀꼼틀하는 생물학적 상상력이 거미줄을 쳐내자, 가까이서 보아왔으나 늘 지나쳤던 세상의 작고 약한 것들이 거미줄에 걸린다. 파르르 떨리는 날개를 보고 시인은 거미처럼 걸어간다. 거미는 입을 벌린다. 먹이감은 눈을 질끈 감는다. 거미의 입에서는 거미줄로 된 베개가 나오고 이불이 나온다. 오늘 거미줄은 식탁이 아닌 시의 침대가 된다. 먹이감은 그러자 안도하면서 푸근한 가난뱅이의 잠에 빠진다. 거미줄 아래에, 놀랍도록 잔잔한 그늘을 만들어진다. 이것이 『거미』의 시인, 박성우의 전모다. 「길」과 「거미」는 모두 유사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의미의 흐름이 진행된다. <애벌레와 거미의="" 강하="" →="" 시인의="" 관찰="" →="" 애벌레와="" 거미의="" 걷기와="" 길="" 만들기="" →="" 어느="" 사내와의="" 유사점을="" 두고="" 말하기="">이다. 자연물의 관찰에서 상상력의 실마리가 이끌어 나온다는 점에서 경쾌하지만 사람 세계와의 연결에서는 무언가 아스라한 옹이(나무의 상처)들을 보여준다. 결국 나무의 옹이와 사람의 상처 사이에서 교류하고 작용하는 상상력이 시의 원동력일 것이다. 이것은 다른 시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박성우 시들의 독특함이다. 그래서 그의 시의 제목들은 한결같이 거미, 새, 달팽이가 지나간 길은 축축하다, 초승달, 민달팽이, 옹이, 감꽃, 망둥어, 굴비, 누에, 황홀한 수박, 콩나물, 깨꽃과 같은 질감과 질량이 살아있는 자연물에 가깝다. 지나치게 달콤해서 지겨워지기 쉬운 서정시나 자의식과 난해함으로 무장한 요즘 시들과는 전혀 다른 맛을 준다. 그리고 때로는 「콩나물」처럼, 또는 모든 푸른 이파리 가진 식물들이 그러하듯 아래에서 위로의 상승지향과 개김의 저항의식을 보여준다. 그것이 시적 상상력을 거미줄로 이용하는 시인의 몫이니까.

[인상깊은구절]
「길」 이파리 무성한 등나무 아래로 초록 애벌레가 떨어지네 사각사각사각, 제가 걸어야 할 길까지 갉아먹어서 초록길을 뱃속에 넣고 걸어가네 초록 애벌레가 맨땅을 걷는 동안 뱃속으로 들어간 초록길이 출렁출렁, 길을 따라가네 먹힌 길이 길을 헤매네 등나무로 오르는 길은 멀기만 하네 길을 버린 사내가 길 위에 앉아 있네
n****w 2003.11.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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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 어떤 절실함. 어떤 울림.
"[거미] - 어떤 절실함. 어떤 울림." 내용보기
거미   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걸으면 걷는 대로 길이 된다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공중의 길, 아슬아슬하게 늘려간다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내는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밑에 떠 있었다 곤충의 마지막 날갯짓이 그물에 걸려 멈춰 있듯 사내의 맨 나중 생이
"[거미] - 어떤 절실함. 어떤 울림." 내용보기

거미

 

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걸으면 걷는 대로 길이 된다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공중의 길, 아슬아슬하게 늘려간다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내는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밑에 떠 있었다

곤충의 마지막 날갯짓이 그물에 걸려 멈춰 있듯

사내의 맨 나중 생이 공중에 늘어져 있었다

 

그 사내의 눈은 양조장 사택을 겨누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당겨질 기세였다

유서의 첫 문장을 차지했던 주인공은

사흘만에 유령거미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조장 뜰에 남편을 묻겠다던 그 사내의 아내는

일주일이 넘어서야 장례를 치렀고

어디론가 떠났다 하는데 소문만 무성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그 사내의 집을 거미집이라 불렀다

 

거미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다

 

 

 이 시인의 시들을 읽으면, 안타깝다. 가엽고, 답답하다. 박성우 시인은 지리한 가난함. 힘겨운 세상살이

부조리한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시로 쓰기 위해 꾸민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여 가장 적합한 언어를 찾아 적어 놓은 것 같다. 그래서 현실을 살아가는 내 가슴에 어떤 흔적을 만든다.

 시집의 첫 작품. '거미'를 읽고, 울컥! 울렁이는 가슴 진정시킨다. 거미줄처럼 가늘지만 촘촘하고, 질긴 시들을 한 편 한 편 보다가 '어머니' 읽으면서 다시 또 가슴 짠~ 해진다.

 

 

어머니

 

끈적끈적한 햇살이

어머니 등에 다닥다닥 붙어

물엿인 듯 땀을 고아내고 있었어요

 

막둥이인 내가 다니는 대학의

청소부인 어머니는 일요일이었던 그날

미륵산에 놀러 가신다며 도시락을 싸셨는데

웬일인지 인문대 앞 덩굴장미 화단에 접혀 있었어요

가시에 찔린 애벌레처럼 꿈틀꿈틀

엉덩이 들썩이며 잡풀을 뽑고 있었어요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어머니,

지탱시키려는 듯

호미는 중심을 분주히 옮기고 있었어요

날카로운 호밋날이

코옥콕 내 정수리를 파먹었어요

 

어머니, 미륵산에서 하루죙일 뭐허고 놀았습디요

뭐허고 놀긴 이놈아, 수박이랑 깨먹고 오지게 놀았지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어머니 마음이 어떤지, 시인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해 본다. 농사꾼 부모님과 오남매 얼키고 설켜 자란 나는 웬일인지 박성우의 시가 낯설지 않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견디는 것에 익숙해진 삶. 거미가 가는 실을 뽑아 길을 만들듯, 한 발 한 발 이어가는 삶의 길. 이것을 시인은 아름다운 시어로 승화시켰다. 그래서 읽는 이의 가슴에 작은 울림을 만든다.

 

 가장 인상깊은 시 한 편을 마지막으로 적어본다.

 

 

콩나물

 

너만 성질 있냐?

나도 대가리부터 밀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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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이 된 그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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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고 지루한 날들이었지만 고만고만하게 견딜 만했다. 애벌레의 상태로 첫 시집을 묶는다. 이제 내 손을 떠나는 시들이므로 나비가 되든 나방이 되든 어쩔 수 없으리. - 시인의 말 中     2000년 신춘문예당선시집을 통해 박성우 시인의 존재를 알게 되어 구입한 그의 첫 시집. 나비와 나방의 상반된 운명이란 게 뭘까. 둘 다 짧은 생이 주어진, 어쩌면 첫 번째 날갯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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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고 지루한 날들이었지만

고만고만하게 견딜 만했다.

애벌레의 상태로 첫 시집을 묶는다.

이제 내 손을 떠나는 시들이므로

나비가 되든 나방이 되든 어쩔 수 없으리.

- 시인의 말 中

 

  2000년 신춘문예당선시집을 통해 박성우 시인의 존재를 알게 되어 구입한 그의 첫 시집. 나비와 나방의 상반된 운명이란 게 뭘까. 둘 다 짧은 생이 주어진, 어쩌면 첫 번째 날갯짓에 거미줄에 걸릴 줄도 모를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작은 생물. 둘에게 두드러진 차이는? 낮과 밤? 화려한 날개짓으로 햇살을 받아 반짝이든 용케 어둠속에서 빛을 찾아 생을 부딪치든 이미 내 손을 떠났으니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말인가.

 

  그의 거미를, 거미가 살고 있는 거미집을 먼저 살펴보고 싶었다.

 

한달 만의 식사다

나방은 즙이 많아서 좋다

위턱과 아래턱을 놀린 지 오래여서

입이 좀 뻐근하다 집주인이 들어온다

저 남자는 시를 쓴다.

한 달 전, 저 남자가 이사를 왔을 때

나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인은 게을러서

화장실 귀퉁이에 세들어 사는 내 집을

빗자루로 걷어낼 일이 없기 때문이다

간만의 식사 탓일까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자꾸 신트림이 나온다

밥 먹는 내 모습을 처음 보았겠지, 남자가

칫솔을 문 채 한참이나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날개라도 한쪽 떼어줄까

남자도 나처럼 오랫동안 굶었는지 깡말라간다

생각하면 저 남자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이곳에 들어올 때마다 지금처럼

내가 잘 있는지 먹이는 언제쯤이나 잡게 될런지

쳐다보곤 하던 따뜻한 눈길, 알기나 할까

- ‘거미 2’ 부분

 

  거미의 눈을 빌려 자신을 바라보는 시인. 한참을 골똘히 거미를 쳐다봤을 시인, 한참을 골똘히 시인을 쳐다봤을 거미. 그들 사이에 흐르는 침묵은 시인에겐 거미의 눈으로 잠간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동시에 거미에겐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둘 사이에 미묘한 끈이 생긴다. 따뜻한 시선이 만들어진다. 쓸쓸하고 지루한 날들이었지만 고만고만하게 견딜 수 있었던 것 중 하나는 그에게 거미 같은 존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고독하면서도 하염없이 따뜻한.

 

  그의 시가 나방이 되어 거미밥 신세가 된다면 오히려 시인이 흡족한 웃음을 보이지 않을까. 나방이 머잖아 내 생을 점쳐주는 거미줄이 되어 아슬아슬한 공중의 길을 만들 테니까. 시가 내 생을 이어줄 길을 만들어줄 테니까.

 

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걸으면 걷는 대로 길이 된다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공중의 길, 아슬아슬하게 늘려간다

- ‘거미’ 부분

 

방,

안의 거미줄만이 내 거처를 간섭하였다.

- ‘정읍역’ 부분

 

 



YES마니아 : 골드 a*****4 2009.12.24. 신고 공감 0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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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책을 읽히시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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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는 몸으로 책을 읽히시는 어머니가 있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에서 가난의 문제를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의 가난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 뿐이지, 그의 정신은 풍요로울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의 풍요로움에는 바로 어머니가 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다니는 학교, 그가 학생이든 그 학교의 조교이든 그 학교의 청소
"몸으로 책을 읽히시는 어머니" 내용보기
그의 시는 몸으로 책을 읽히시는 어머니가 있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에서 가난의 문제를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의 가난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 뿐이지, 그의 정신은 풍요로울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의 풍요로움에는 바로 어머니가 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다니는 학교, 그가 학생이든 그 학교의 조교이든 그 학교의 청소부이다. 끈적끈적한 햇살이/ 어머니 등에 다닥다닥 붙어/물엿인 듯 땀을 고아내고 있었어요// 막둥이인 내가 다니는 대학의/ 청소부인 어머니는 일요일이었던 그날/ 미륵산에 놀러 가신다며 도시락을 싸셨는데/ 웬일인지 인문대 앞 덩굴장미 화단에 접혀 있었어요/ 가시에 찔린 애벌레처럼 꿈틀꿈틀/ 엉덩이 들썩이며 잡풀을 뽑고 있었어요/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어머니,/ 지탱시키려는 듯 호미는 중심을 분주히 옮기고 있었어요/ 날카로운 호밋날이 코옥콕 내 정수리를 파먹었어요// 어머니, 미륵산에서 하루죙일 뭐허고 놀았습디요/ 뭐허고 놀긴 이놈아, 수박이랑 깨먹고 오지게 놀았지// -[어머니 전문] 이 시 하나만으로도 그에게 있어서 어머니란 어떤 존재인지 나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람들에게는 정신적인 근거지가 있기 마련이다. 그 근거지는 고향, 집, 별 등 많은 말들도 대변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말은 어머니이다. 또한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을 알고 있는 시인은 좋은 시를 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성냥개비가 되어가는 줄 모르는 어머니는/ 베틀에 앉아 삼베 뭎을 팔고 늦은 밤에 돌아오셨다/ 그런 이유로 우리들은/ 남의 집 반찬에 익숙해져갔다// -[생솔 中에서] 위의 두 시를 보더라도 그에게 있어서 어머니란 시와 동격이 되는 것 같다. 그에게 책을 읽히고 시를 쓰게 하는 힘인 것 같다.
m*****1 2003.09.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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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증에 걸린 시인의 중얼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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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인의 최대의 쟁점은 . 모두들 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뒷부분의 평론도 이 시집의 주제는 이라고 말한다. 가난이라기 보다는 난 이라고 말하고 싶다. 박성우 시인은 결핍으로 인해 힘들었던 사회적 개인으로서 체험들을 유려한 언어로 승화시킨 작품이라는 평을 듣는다. 절대 부족과 절대 결핍. 물질만능주의에서 가난은 죄가 되기도 하고 최대의 결핍과 상처로 남기도 한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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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인의 최대의 쟁점은 <가난>. 모두들 <가난>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뒷부분의 평론도 이 시집의 주제는 <가난>이라고 말한다. 가난이라기 보다는 난 <사회로부터의 결핍="">이라고 말하고 싶다. 박성우 시인은 결핍으로 인해 힘들었던 사회적 개인으로서 체험들을 유려한 언어로 승화시킨 작품이라는 평을 듣는다. 절대 부족과 절대 결핍. 물질만능주의에서 가난은 죄가 되기도 하고 최대의 결핍과 상처로 남기도 한다. 때로는 그 상처가 한 인간을 타인과 다른 경지에 올리기도 한다. 회화스런 박성우 시인의 첫 시집이라는데, 앞으로의 그의 활동이 궁금해 진다. 꼭 두번을 읽어야 이해가 되는 <거미>. 인간과 거미의 교묘한 끈을 느낄 수 있다.
k*****a 2002.10.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