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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아가던 소녀 양신은 사고를 당한 뒤, 1930년대 일제강점기 타이완 타이중의 명문 약재상 가문 ‘지여당’의 딸 쉐쯔(유키코)의 몸 안에서 눈을 뜬다. 일본식 근대문화와 타이완 전통문화가 공존하는 낯선 시대 속에서 쉐쯔로 살아가게 된 양신은, 점차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도시였지만 그 안에는 식민지 시대 특유의 차별과 불안, 그리고 여성들에게 강요된 희생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쉐쯔는 가족과 주변 여성들을 통해 “여성은 결국 가문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마주한다. 화루이, 하오쯔 같은 여성들은 누구보다 강하고 똑똑하지만 결국 시대와 가족의 책임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접어야 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쉐쯔 역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마음과 누군가는 가문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리고 그녀 곁에는 샤오짜오가 있다. 조용하고 다정한 샤오짜오는 쉐쯔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해 주는 존재다. 함께 책을 읽고, 벚꽃을 보고, 기차 여행을 떠나고, 작은 사탕 하나를 나눠 먹는 평범한 순간들이 쌓이며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어 간다. 하지만 시대는 두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전쟁은 가까워지고, 현실은 사랑만으로 넘기엔 너무 거대했다. 결국 샤오짜오는 교토로 떠나고, 쉐쯔에게 남은 것은 은방울꽃 장식과 “다시 만나자”는 약속뿐이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작품은 단순한 타임슬립 로맨스를 넘어, 식민지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상실과 청춘, 그리고 끝내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좋았던 건 “거대한 비극”보다도 사소하고 평범한 순간들을 너무 애틋하게 그려냈다는 점이었다. 같이 밥을 먹고, 꽃을 보고, 비 오는 날 따뜻한 국물을 나눠 먹고, 편지를 쓰는 장면들이 왜 그렇게 슬프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등장인물들도 그런 평범한 일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싶었다.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건 결국 샤오짜오와 쉐쯔의 편지였다. “꽃 지는 시절 또한 꽃 피는 시절이다.” 이 문장을 읽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너무 먹먹했다. 사랑은 끝나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사람은 결국 상실을 끌어안은 채 살아간다는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름다운데 너무 슬펐고, 잔혹한 시대 이야기인데도 끝내 따뜻함을 잃지 않는 소설이었다. 읽는 내내 벚꽃 냄새와 오래된 기차역 공기, 비 오는 타이중 골목 풍경이 눈앞에 흐르는 느낌이었다. 마티스블루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어요. #꽃피는시절 #양솽쯔 #문현선 #1938타이완여행기 #책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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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피는 시절_양솽쯔_문현선 옮김 이 책을 받고 나서, 들은 양솽쯔 작가님의 국제 부커상 소식!! 앞서 읽은 <1938 타이완 여행기>로 타이완 최초 전미도서상 번역부문에 이어 부커상까지! 수상 전에 바로 읽었다는 괜히 들뜬 마음으로 타이완 여행기의 출발점이라는 꽃피는 시절을 펼쳤다.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되었지만 여전히 몽글함과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서늘하기도, 흐릿한 안개 속 같기도 하다. <1938 타이완 여행기>에서 예습되었던(?) 타이완 식민지 시기의 배경지식과 낯설었던 음식명들에 익숙해졌기에 가독성이 훨씬 좋았다. 음식 이름으로 나뉘어졌던 소제목이 꽃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오감을 자극하는 음식과 식탁의 묘사는 계속된다. 또한, '여성'의 삶에 특히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는데, 실로 또렷히 다가온 그 생생함에 그 시대를 여행하고 온 느낌이다. 역시나, 이번 책에서도 작고 사적인 장면들이 쌓이며_ 오히려 식민지 시대의 공기가 더 또렷하게 전해진다. 어떤 감정들은 끝내 정확한 이름을 얻지 못한다. <꽃 피는 시절> 속 인물들 역시, 사랑이나 우정 같은 단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마음들이 보인다. 식민지 시대의 타이완. 누군가는 일본어를 배우고, 누군가는 자신의 언어를 삼킨 채 살아간다.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이었는데, 왜 침묵과 여백이 이리 느껴졌을까. "그것은 꽃 피는 시절이자 또한 꽃 지는 시절이었다." 📍 -하오쯔가 "무슨 책이든 다 사면, 그런 쓸데없는 걸 어디 두려고." 말했을 때, -> 뜨끔했다........... -타이완여행기에서 많은 음식을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새로운 음식이 나온다. 톈탕, 행인차는 무슨 맛일까.. -여전히 우리나라와 과거와 현재, 타이완의 과거와 현재에 이입도하고, 비교도 하게 된다. -타이완 여행기와 마찬가지로 주석이 보기좋게 위치해있고_ 또한 없었다면 책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 -중간 중간 실린 시구, 음악들의 가사가 또한 아름다워 여러 번 읽게된다. -여러분~ 양씨 가문 지여당 건축도와 주요 등장인물 관계도 뒤에 있어요~! (다 읽고 발견한 나......;;) -단순히 개인적으로 부커상 수상 전에 책을 읽은 것만으로도 뿌듯한데, 이 책을 선택하고 번역, 출판까지 한 마티스 블루 출판사 관계자분들은 얼마나 뿌듯할지. -이번 주 작가님이 한국오셔서 북토크하는데..못가서 너무너무 아쉽다 ㅠㅠ 📌 -빛과 그림자, 아름다움과 추악함, 꽃과 총포, 강성한 제국이 확장한 시야와 식민지가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할 구속은 동시에 존재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꽃잎은 흩어지는 빗방울처럼 시들어 떨어졌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눈물 속에서 아른거려 흐려진 멀구슬나무꽃이었다. -문학과 음악에 기댈 때만은 나도 고통을 잊을 수 있었어.....내가 죽을힘을 다해 시선을 이 세계의 현실적인 측면으로 돌리려 할수록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어. -그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시절을 살았다. 그러나 인간이란 본디 그런 것이 아닌가? 어떤 이유도 없이 이 세계에 던져져, 현실의 좁다란 틈새에서 길을 찾는다. 꿈 같고 신기루 같은 인생에서 의미를 찾는다. -좋든 나쁘든, 선하든 악하든, 나는 모두 받아들이며 이 곳에 왔다. 그러니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이 잔혹한 세계를. -'생명의 의미'라고 하는 것은 죽음 앞에서 아무런 힘이 없다. *도서제공 #꽃피는시절 #마티스블루 #수선화의서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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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꽃이 함께 있는거 아니에요? 노랑이와 하양이랑.” “아름답지요? 막 피었을 때는 흰색인데 다음 날은 노란색으로 변해요. (…) 금화, 은화라고 하는 쌍둥이 자매가 있었답니다. 두 사람은 사이가 무척 좋았죠. (…) 나중에 그들의 묘에 이런 꽃이 피어났다고 해요. 사람들이 자매의 이름을 따서 꽃 이름을 지었죠. 금은화라고.” 102쪽 양솽쯔의 <꽃 피는 시절> 은 ‘역사 + 백합 + 타임슬립’ 을 다룬 소설로 지난 번에 재미있게 읽었던 작가의 <1938 타이완 여행기>의 출발작에 해당된다고 한다. 순서대로 읽었어도 좋았겠지만 시리즈물은 아닌데다 저자의 매력적인 문체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만났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뻤다. 그리고 저 위의 문장을 맞는 순간 저 부분은 꼭 서평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저자 양솽쯔에게도, 또 소설속 소녀들에게도 ‘백합’에 꼭 맞는 문장이라고 느껴졌다. 우선 주요 인물인 ‘쉐쯔’는 취업을 준비하던 대학생 양신이가 타임슬립으로 과거로 돌아간다. 하필이면 타이완이 식민지였을 때라 언어도 어렵고 무엇보다 여성들의 삶조차 지금보다 더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 하지만 <1938 타이완 여행기>에서 그렸던 것처럼 저자는 시대의 암울함과 여성의 자유롭지 못한 신분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고통만을 드러내기 보다는 재치있는 필력과 ‘먹고 사는 중요한 부분’을 중심으로 인물이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서 역사를 넘어선 인간이 가지는 숙명에 대해서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타임슬립을 주제로 한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 책은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의 인물로 가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자주 하게 만들었다. ‘거의 백 년의 시간을 타임슬립해서, 내가 이 생애 이 세계로 온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만약 21세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의 나는 돌아가기를 바라는가?’ 499쪽 분명 그 시대에도 여성해방까지는 아니더라도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던 여성들이 있었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누군가도 떠오르기도 했다. 또 서로가 질투하고 시기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주는 쉐쯔와 지여당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만났던 고왔던 사람들이 떠올라 몰입이 더 되었던건지도 모른다. 타임슬립까진 아니더라도 분명 지금, 여기에서 이 소설을 읽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앞서 언급한 <1938 타이완 여행기>가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작’에서 ‘부커상 수상’ 소식을 접했다. 서평을 수정했다. 줄거리와 감상을 잔뜩 늘어놓았던 이전 글에서 저자가 다루는 것이 결코 ‘한 여성’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 수정했다. 부디 양솽쯔의 산문집도 곧 만날 수 있길 바란다. #꽃피는시절 #양솽쯔 #문현선 #1938타이완여행기 #책추천 @matisseblue_book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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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꽃 피는 시절 ⠀ ⠀ 타이완의 역사도, 소설도 처음이라 정보도 없이첫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 ‘21세기의 한 대학생이 1920년대 타이완 일제강점기 지주 가문의 막내딸로 타임슬립한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 처음에는 판타지 같은 설정이라 가볍게 읽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묘하게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졌습니다. 소설 속 1920년대 타이완의 풍경은 교과서나 영화에서 수없이 보아왔던 우리의 일제강점기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식민지라는 거대하고 억압적인 시대의 공기, 그 안에서 차별받고 지워지던 정체성들. ⠀ 낯선 이국의 이야기인데도 마치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읽는 듯한 서글픈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특히 제 마음을 흔든 건 그 시대 속 ‘여성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설움 속에서도 소녀들은 학교를 다니고, 단짝 친구와 비밀을 공유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각별한 벗이 되어 연대하더라고요. 시대의 억압과 ‘여성’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죽을힘을 다해 삶의 틈바구니를 만들어가던 소녀들의 모습이 참 애틋하면서도 단단하게 다가왔습니다. ⠀ ⠀ 책을 읽는 내내 문득 우리 나라의 역사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뜨겁게 불타오르는 나라에 대한 애정함으로 가득찬 우리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거든요. ⠀ 이 소설 속 소녀들의 맑고 시린 재스민 향 같은 감정들을 마주하며 비로소 그 시절의 삶이 입체적인 슬픔과 기쁨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우리의 그 아픈 시대에도 이 소녀들처럼 아파하고, 또 서로를 위로하며 버텨왔겠구나 싶어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습니다. ⠀ 거대한 역사라는 파도 앞에서도 결국 마지막까지 삶을 지탱해 주는 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평범한 이들이 나누는 따뜻한 마음과 연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멀리 타이완의 이야기이지만 모진 계절을 버텨내고 자신만의 꽃을 피워낸 소녀들을 보며 이상하게도 깊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 ⠀ 낯선 시대와 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모진 시대 속에서도 끝내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던 소녀들. ⠀ 아마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것 같습니다. ⠀ ⠀ ⠀ #꽃피는시절 #양솽쯔 #문현선 #1938타이완여행기 #책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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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서평단 <<꽃 피는 시절>>은 현대를 살고 있던 신이가 타임 슬립해서 일제 강점기의 타이완에 살고 있던 6살 소녀의 몸에 빙의해 살아가는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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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을 끝내며 읽게된 작가의 이름에 대해 먼저 소개하고 싶다. <1938 타이완 여행기>로 부커스 상을 수상한 양솽쯔. 그런데 알고 보니 ‘양솽쯔’는 작가 혼자만의 이름이 아니었다. 쌍둥이 동생과 함께 사용하던 필명이었고, 안타깝게도 동생은 책이 완성되기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이 이름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함께 꿈꾸었던 시간과 기억까지 담겨 있는 이름 같았다.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대학생 ‘양신이’가 어느 날 갑자기 일제강점기 시절 대만의 다섯 살 소녀 ‘쉐쯔’로 타임슬립 하며 시작된다. 흥미로운 건 단순히 과거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점이다. 어린아이의 몸으로 낯선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꽤 신선했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경계하지만, 조금씩 조심스럽게 그 시대와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사랑스럽다.
쉐쯔가 살아가는 ‘지여당’은 마을의 지주 집안이다. 큰 집 안에는 가족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와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누군가는 가문의 기대를 짊어지고,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포기한 채 살아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한 대저택 같지만 그 안에는 답답함과 체념, 그리고 작은 희망들이 조용히 숨어 있다. ‘일제강점기 대만’이라는 배경 때문에 조금 더 무겁고 역사 중심적인 이야기를 예상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독립운동이나 거대한 정치 이야기보다는 당시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에 더 집중한다. 특히 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억압받고 살아갔는지, 또 가문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삶이 얼마나 쉽게 희생되었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거창한 역사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숨결 같은 이야기랄까. 그리고 그 속에서도 사랑은 조용히 자라난다. 쉐쯔와 샤오짜오 사이에는 단순한 우정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깊은 감정이 흐르고, 셴원은 쉐쯔와의 미래를 꿈꾼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시대와 규범 안에서 얼마나 조심스럽고 애틋한지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이 작품은 퀴어 감수성을 튀지 않게,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함부로 규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느낌이 참 좋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책 맨 뒤에 실린 ‘지여당’ 지도였다. 읽는 동안 내가 상상했던 공간들이 그림으로 펼쳐지는데 괜히 반갑고 정겨웠다. 예전에 중국 여행에서 보았던 오래된 주택들의 풍경이 겹쳐 떠오르기도 했다. 등장인물들이 어느 방에서 웃고 울었는지 떠올리며 다시 지도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었다. '지여당'의 소개가 나올 때 이 지도를 펼치고 본다면 훨씬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꽃 피는 시절>는 화려하게 감정을 흔드는 소설은 아니다. 대신 오래된 나무 가구처럼 천천히 온기를 남기는 이야기다.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마치 아주 먼 시절 누군가의 삶을 잠깐 빌려 살다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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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이 작품의 타임슬립은 흔한 회귀 판타지와는 결이 다르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를 체험하는 일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에 가깝다. 식민지의 언어를 배우고, 낯선 이름으로 불리며, 시대가 정해놓은 역할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쉐쯔는 점점 깨닫게 된다. 인간은 시대를 완전히 벗어난 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선택할 수 없지만, 무엇을 잃지 않을 것인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시대는 인간의 언어를 바꾸고, 식탁을 바꾸고, 사랑하는 방식을 바꾸며 존재의 형태까지 흔들어놓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감각이다. 시대는 인간의 삶을 규정할 수는 있어도, 가장 깊은 곳에 남아 있는 감각까지 완전히 지워내지는 못한다. 낯선 타이완 음식들이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이름들을 읽는 것만으로 낯선 향수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인간에게 음식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기 위한 물질이 아닌 듯하다. 어떤 국물의 냄새는 어린 시절의 풍경을 불러오고, 한 입의 맛은 이미 사라진 사람을 다시 식탁 앞으로 데려온다. 식민지 시대처럼 모든 것이 흔들리던 순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밥을 짓고, 누군가를 위해 국을 끓이고, 계절의 맛을 기억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언어보다 먼저 맛으로 세계를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작품 속 음식들은 단순한 생활 묘사가 아니라, 지워지지 않으려는 삶의 흔적과도 같다. 역사가 한 나라의 이름을 바꾸려 할 때조차, 사람들은 혀끝에 남은 기억으로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거대한 이념보다도 반복되는 일상의 감각 속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다. 이들은 혁명을 일으키지도, 시대를 뒤집지도 않는다. 대신 함께 밥을 먹고, 이름을 불러주고, 누군가의 슬픔을 조용히 받아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런 작고 사소한 행위들이야말로 무너지는 시대를 버티게 만드는 힘처럼 느껴진다. 역사책은 흔히 전쟁과 권력, 영웅의 이름을 기록하지만, 인간의 삶을 실제로 지탱해온 것은 어쩌면 이런 존재들이 아니었을까. 꽃은 가장 찬란한 순간에만 피어 있는 것이 아니다. 비를 견디고, 계절을 통과하고, 다시 피어나기까지의 모든 시간을 포함해 비로소 꽃이라 불린다. 이 소설의 여성들 역시 그렇다. 꺾이지 않는다는 것은 거창한 저항이 아니라, 끝까지 서로를 놓지 않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단순히 젊고 아름다운 시절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어쩌면 피고 지는 과정을 견뎌낸 시간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양솽쯔는 이 작품을 통해 타이완의 과거를 복원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을 현재로 끌고 온다. 인간은 폭력의 시대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사랑과 상처가 동시에 남아 있는 과거를 어떤 언어로 껴안을 수 있는가. 어쩌면 인간은 과거를 극복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기억조차 삶의 일부로 품어안으며 앞으로 걸어가는 것. 완전히 봉합되지 않은 기억은 사라지지 않은 채 인간 내부에 남아, 이후의 삶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우리는 어떤 시간을 지나 지금의 자신으로 피어나게 되었는가. 이 책은 과거를 명확히 정리해주는 소설이라기보다, 정리되지 못한 감정의 내부를 오래 헤매게 만드는 소설에 가깝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낯선 타이완의 역사 이야기로 읽히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이미 오래전 자신의 안에 침전되어 있던 상실과 그리움을 건드리는 기록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인간은 살아가며 수많은 시간을 지나치지만, 어떤 시대는 사라지지 않은 채 이후의 삶 전체를 흔들어놓는다. 『꽃 피는 시절』은 바로 그런 기억의 잔향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꽃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피고 지고 다시 피어나기까지의 시간을 모두 견뎌낸 끝에 비로소 한 송이의 꽃이 된다. 지금 자신의 삶 또한 어떤 계절을 지나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돌아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소설은 오래 마음에 남을 것이다. ✏️도서출판 마티스블루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