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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의 시는 쓸쓸하고 높고 고독하다. 그럼에도 한쪽 귀퉁이에 한 개의 시어, 하나의 표현을 통해 빛을 보게 한다. 인간은 언제까지 쓸쓸하고 아플까, 인간은 언제까지 즐겁고 행복할까. 다만 살아갈 뿐이다. 영원한 아픔도 영원한 행복도 없다. 묘비의 말을 기억한다. 오늘은 네가, 내일은 내가... 허수경 시인을 추모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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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에 실린 칼럼을 읽었다. 허수경 시인에 관한 글이었다. ‘1988년 출간된 허수경 시인의 첫 시집에는 ‘우리는 지방 도시 근교에 살고’ 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지방 도시 근교에는 비닐하우스마다 한 개씩의 태양이 이글거리고 황화철로 삭아 내리는 강과 공장, 사람은 살지 않으나 도시를 먹여 살리느라 죽어가는 도시 근교가 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 하는 시다. 읽을 때마다 “근교”가 도심의 식민화된 지역으로, 산업 발달의 부담 전가가 잘 형상화된 곳으로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에 이 시를 떠올렸다. 이 ‘근교’는 어디까지 확장될까. 우리는 이 땅에 대한 착취의 끝에 가서야 비로소 확장을 멈추게 될까.‘ 참으로 짧게 살다 간 시인다운 한숨에, 갈수록 주변이 도시화 되는 간절한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렸다. 그런 마음인데 yes24에 떠 있는《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을 만나 참으로 반갑기도 하고 아프기도 해서 주문했다. 8년 만에 나온 시인의 유고 시집엔 생전에 쓴 시 42편과 산문 3편이 실려 있다. 시인과 절친한 사이였던 김민정 시인이 허 시인으로부터 노트북을 전달받아 거기에 있던 작품을 모아 펴냈단다. 유고 시집의 머리에 담은……
시를 쓰는 삼엄함 속에 지구를 반 바퀴를 돌아 외국에서 살면서 공부하고 시를 썼습니다. 즐거움 속에서 벗들을 만나고 시를 나누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시를 쓸 것인가?” 이 모든 시간을 다 합하여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예!” 하고 저는 답할 것입니다.
시인이 지상에 친필로 남긴 마지막 시인의 말은 참으로 간절해서 읽으며 울고, 옮겨 적으며 또 울어야 한다. 그 해 2018년 10월 3일 타국 땅에서 시인은 세상을 떠났으니…….
가끔 생각하지,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나는 구십이 넘어 연가 한 편을 꼭 쓸 거라고 (중략)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아직 뭔가를 쓸 수 있는 구십이라는 나이가 나에게 있다면 나는 그대의 무엇을 가장 마지막까지 쓸까 어느 순간에는 영원 같은 어긋남의 빛이 있어 그림들 속에 숨겨진 웃음과 울음은 서로 안아주었다고 (중략) 얼굴은 붉어지겠지 그러니 아주 마지막 날에 이 연가를 써야겠다 (중략) 이렇게 쓸지도 몰라 저녁은 갑자기 오더니 어둠은 천천히 오시네, 라고 (중략) -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중에서
그대는 하얀빛이었다가 푸른빛이었다가 붉은빛이었다가, 내가 지워지면서 그대가 스며 들었다고, 그래서 시인은 우리가 되어 산과 같이 서 있었고 해가 지던 풍경이 우리 발을 건드렸다고, 생의 흐름과 시간을 사유하는 서정적 느낌의 시를 내놓는다.
이 시는 어느 지붕을 그리워하는 오전 3시 20분에 시작된다 이 시는 난만한 곡선을 가진 지붕 위에 덮힌 눈이 햇살에 간지러워하며 녹아내리는 것을 지켜보던 오전 11시 21분에 시작된다 (중략) 그리고 이 시는 끝이 나도 얼굴은 사라지지 않는 오전 3시 10분에 이 시는 다시 시작된다 - ‘이 시는’ 중에서
무심하지만, 이렇게 시간은 흐르고 나나 우리는 또 무심하지만, 저세상에 있을 시인은 다시 기다리면서 물들면서 간절하게 시를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생일인 6월 9일에 맞춰 유고 시집이 나왔으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올해 허 시인의 기일 전에 사망 신고 문제도 해결해야 할 것이겠다. 아직 서류상으로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니…… 이제는 쉬게 해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