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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것이 아름답다(문예), 월든(은행나무)에 이어 오랜만에, 읽고도 도대체 무얼 읽었는지 집중이 안되고 앞뒤가 맞지않는 문맥의 문장들, 머릿속에 남는게 없는 감정적 여운마저 없는 그런책이다. 아이히만의 일생, 그의 말과 법정 진술, 행동에서 그 무능함과 생각없음을 계속 말하려는건 알겠는데 일단 도무지 읽히지가 않는다. 200여쪽 좀 안읽고 중지 - 바이백 판매 신청 번역자는 현학적이고 학구적이고 지적으로 보이고 싶어서 환장한듯하고, 나름대로 이쪽 권위자이거나 내공이 깊은 사람일텐데 번역을 이렇게 했다는건 독자를 똥으로 보고 기만하며 자기는 학식있는 지식층이라는 오만함과 선민의식이 가득한것 같다. (더불어 무책임한 출판사도) 소개를 보니까 철학과 교수인거같은데, 헬조선 지식인은 왜 이런 부류들이 많은지....쯧쯧 2만원가까이 쳐날린 돈도 읽은 시간도 아깝고 억울함과 분노를 넘어 안타까움에 다 읽지도않고 이렇게 리뷰라도 남겨야겠다. 마르크스 "경제학 철학 수고"같은 책도 정말 어려웠지만 나름 얻은것이 많았는데, 이건 책이 말하려는 "내용"이 어려운게 아니라 그냥 "우리말"을 못알아먹는 책이다. 번역이 잘됐다면 한나 아렌트의 메시지와 함께 정말 두고두고 볼 책이 될뻔했는데.....결국 욕으로 귀결되니 참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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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란 표현을 제기한 내용으로 이미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던 히틀러 치하에서, 그의 정책을 수행한 아이히만이 전범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현장을 참관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글로 채워져 있다. 한나 아렌트가 보기에 재판 현장의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한 관료로서의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정책의 내용이 무엇이든 자신의 직분을 충실히 한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동기이며, 정의감이 없이 단지 자신의 직분만을 충실하게 한다면 누구라도 아이히만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대중들은 히틀러를 추종했던 인물들의 본성이 ‘악마성’을 지닌 것으로 생각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아렌트가 지켜본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때문에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이란 표현을 사용하자, 대중들은 아이히만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결국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은 오랫동안 논쟁을 거쳐 이제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용어로 굳어지게 되었다. 디양한 자료와 재판 과정을 통해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아이히만은 관료로서의 출세욕 이외의 학살에 대한 동기나 유대인에 대한 반감을 지닌 인물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정신은 지극히 정상적이라 평가되었고, 관리로서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단지 그것이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히틀러 정권이라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즉 아이히만은 위로부터 하달된 명령과 법을 따랐을 뿐이며, 히틀러 치하에서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없었’다고 진술하였다. 그의 문제는 모든 상황을 스스로 인식하여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점이며, 재판 과정 내내 아이히만은 당시 상황에 대해 자신은 중간 관리로서 어쩔 수 없이 일을 처리했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여러 곳에 설치된 가스실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된 현실을 알면서도, 자신은 명령에 복종할 뿐이라는 변명과 함께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렌트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방대한 양의 소송 서류를 읽고 분석했으며, 다양한 기사와 인터뷰 등을 토대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단지 재판 참관기로서의 의미만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와 정치적 상황까지를 포괄하여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렌트는 재판을 참관하면서 법정에서 느꼈던 생각들, 피고인 아이히만의 성장 과정과 삶의 내력, 그리고 히틀러 정권의 대 유대인 정책 등이 갖는 의미를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아이히만의 범죄 행위만이 아니라, 전 유럽에 걸쳐 발생했던 유대인 정책에 대해서도 개괄적으로 논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하여 비로소 왜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제시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성과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면밀히게 검토하여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아이히만처럼 상황 속에 휩쓸려 다른 사람의 인생이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1980년의 광주항쟁에 투입되었던 계엄군의 행위라든지, 최근의 '정권 농단'에 개입했던 인물들의 행위도 결국 ‘악의 평범성’이란 측면에서 설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의 표지에 있는 다음의 문구가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다.
“사유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악이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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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요즘 책방 방송을 보고 흥미가 생겨서 구매를 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내용은 심도가 있었고 아이히만의 잔인함과 평범성에 대해 잘 기술한 책 이다 ! 그럼에도, 별점이 낮은 이유는 . . 왜 한길사 였을까 이 훌륭한 원서를 . . . . 정말 굳이 비유해서 말하자면, 번역기 돌려서 거기에 나온 번역을 복사 + 붙여넣기 로 넣은 내용 같아서 읽는데 너무 힘들었다.
아이히만에 대하여 ( "나치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의 탄생 제2차 세계대전이 지난 뒤 유대인 학살 소식이 전세계에 알려졌을 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나 아렌트도 그것이 진실이라고는 믿지 못했지만 결국 그 소식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의해 잡혀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렌트는 예정되었던 대학의 강의를 취소하고, 미국의 교양잡지 『뉴요커』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참관하게 된다. 이로써 이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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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착석한 아이히만은 그동안 숨어지냈던 범죄자의 흉악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침착하고 평범한 일반인의 모습이었습니다. 누가 그를 유태인학살의 주범으로 생각할수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평범했습니다. 그의 모습을 TV에서 보고있던 한나 아렌트는 그의 사고의식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녀는 유태인 학살의 범죄자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참관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바로 이 사건을 통해서 그녀는 나치주의보다 더 무서운것은 다름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사고의 무능함, 말하기의 무능함"이 얼마나 경악스럽고, 치를 떨게하는 사악함이 될수있다는것이었습니다. 선함의 반대는 악함이 아니라, 무능한 사고력과 무사유가 가져오는 인간의 행동속에 그것들입니다. 우리도 또한 그러한 무사유적 행동과 말을 하고 있지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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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성으로 유명한 한나 아렌트의 그 책이다. 1961년부터 예루살렘에서 열린 독일 나치의 전범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을 담담히 기록하고 있다. 저자의 이야기는 최소한으로 하고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정리하였다. 저자인 한나 아렌트도 유대인이기에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유대인이 담담하게 써내려 가는 이야기는 묘한 느낌이 난다.
아이히만은 1960년에 아르헨티나에서 납치되어 1961년부터 예루살렘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다른 나치 전범들이 2차대전 패망 직후 뉘른베르크에서 재판을 받았던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 재판을 쇼처럼 보이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고, 아이히만의 변호인은 변호보다 아이히만의 기록을 통해 돈을 벌고자 하는 욕구가 더 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중에 아이히만은 결국 사형을 선고받고 얼마 되지 않아 교수형을 당한다.
유럽 각 지역별로 어떻게 유대인들이 소개되었는지 설명하는 부분에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였다. 유럽에서 독일이 아닌 국가들은 유대인들의 소개에 적극적이지 않은 경우가 꽤 많았다. 덴마크같은 경우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거부하기도 하였고 스웨덴은 갈곳이 없어진 유대인을 받아주기도 하였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는 적극적으로 유대인 소개를 시행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독일을 따라서 적극적으로 소개에 응한 나라도 있지만...
또한 유대인 장로들이 독일의 유대인 소개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이야기는 좀 놀랍기도 하였다. 일제 치하 우리나라의 친일파와 마찬가지로 유대인 장로들은 독일이 유대인을 분류하고 소개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은 살아남고자 하였다. 그래도 유대인 장로들은 그들의 의지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이 결국 희생되었다는게 우리나라 친일파들과의 차이일까? 게다가 실제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통제하고 죽이는 실제 일은 같은 유대인들이 실행하였다는 사실에서 다시 한번 놀라기도 하였다. 마냥 피해자인줄만 알았는데... 생각해보면 인간이란 그런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의 핵심으로 이야기되는 악의 평범성은 재판중에 보여준 아이히만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아이히만은 특별히 악하지 않았다. 그는 잘 알려진대로 법과 명령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는 유대인 소개 전문가로써 맡은바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차관 이상이 모여서 했던 반제회의에서 유대인 소개에 대한 반대 없이 어떻게 잘 할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는 것을 보고 그는 더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악의 평범성이다. 주어진 법과 명령의 테두리 안에서 그 테두리가 과연 바른 것인지 고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사유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이다. 법대로 하라는 이야기에 수긍해버리는 모습이 바로 아이히만이 갖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악은 평범하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법 경계를 넘나드셨다. 법이 바르게 적용되고 있는지 항상 우리에게 되물으셨다. 지금도 묻고 계신다. 법의 경계를 넘어가면 큰일 날 것 같고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을 것 같고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하지만, 세상의 큰 악은 그런 사유조차 하지 않는데에서 일어난다.
비단 법만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많은 일들에서 그렇지 않을까? 매일 큰 고민 없이 사용하는 일회용품은 어떨까? 사회 질서 유지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이야기되는 것들도 돌아보고, 교회나 가정에서도 계속 고민하고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멈추고 돌아보지 않을때 우리는 아이히만을 통해서 본 악의 평범성에 빠져버리기 쉽다.
한편으로 다들 고민하고 행동할 때 다양한 모습이 실질적으로 충돌하게 될 것이다. 태극기와 촛불처럼, 동성애 옹호와 반대처럼, 낙태 허용과 반대처럼, 예배 중지와 지속처럼... 그런 충돌과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더 나아가야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들은 그런 어려움을 직관적으로 깨닫고 사유를 멈추고 사유하지 않는 악의 평범섬에 굴복하는게 아닐까?
#2020년 #독서 #독서감상 #한나아렌트 #아이히만 #악의평범성 #한길사 #법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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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은 저자 한나 아렌트가 《뉴요커》의 지원을 받아 1961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하게되면서 세상에 드러나게 된 도서다. 도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은 재판이 이루어진 법정, 즉 정의의 집을 시작으로 제 15장 판결, 항소, 처형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에필로그와 후기가 덧붙여져 있는데, 필자는 에필로그 초반까지 읽었다.
포기한 이유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경우 에필로그까지 오는데 20일 가량 걸린 것 같다. 덕분에 다른 책을 손도 대지 못했다. 엄청난 시간낭비였다. 왜 이런 명저를 두고 시간 낭비냐며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필자에겐 낭비였다. 읽고 또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게 필자의 글구멍이 딸리는 탓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번역이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번역이전에 한나 아렌트의 글에도 문제가 있는건 아닐까? 감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번역이 잘 되었다해도, 사실 읽기 쉬운 도서는 아니다.)
덧붙이자면 원서에서 하이픈을 번역본에서 가로로 바꾸었다. 필자는 하이픈이 남발되어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몰입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하이픈의 남발도 남발이지만, 그 내용이 너무 길다.
필자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으려 했던건 아이히만이란 인물과 악의 평범성에 대하여 좀 더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은 필자에게 그런 도움을 주진 못했다. 오히려 다른 책들마저 읽기 싫을 정도로 어떤 슬럼프에 빠지도록 했다. 좀 지쳤달까...
그래도 꾸역꾸역 읽었다. 그렇게 15장까지 어떻게든 읽었다. 끝까지 읽다보면 그래도 이해가 되겠지... 그런데 에필로그 초반을 읽으며 생각했다. 진작 덮을껄... 이제라도 덮자. 누군가는 에필로그까지 갔으면 아깝다, 더 읽어보지 하겠지만... 이미 필자는 지쳤고 미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장까지 읽으며, 어떤 질문을 던지며 읽었는지 묻는다면, '나는 아이히만과 달랐을까?' 그런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읽었다 말할 것이다. 요구되는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 알고 있는다해도 내가 바로 잡을 수 없다면, 그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질문을 던졌을때 필자는 적어도 아이히만을 욕할 순 없었다.
아이히만을 욕할 수 없다는 것이, 그와 같은 행동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런 소시민으로 남아있을 것이란거다.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로 소시민이 되는 것도 어쩌면 악일 테니까. 악은 선한자들이 가만있을때 승리하는 법이다. 필자는 그를 욕할 수 없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속 아이히만은 추후 밑줄을 따라 개인적으로 다시 정리해볼 생각이다. 그전에 개정판이 나온다면 차라리 개정판을 읽겠지만, 개정판은 아마도 안나올 것 같다. 어쨌든... 지금은 다시 읽어볼 생각이 나지 않는다. 혹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는 이유가 필자처럼 아이히만을 알고 싶다거나 악의 평범성을 이해하고 싶은 거라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한나 아렌트의 생각> 을 읽는 편이 낫다. <한나 아렌트의 생각>은 개괄서로 아렌트의 저서들의 쉽게 살펴볼 수 있다. <한나 아렌트의 생각>의 저자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번역한 김선욱님이다. 번역은 필자에게 좀 별로였으나, 직접 저술한 <한나 아렌트의 생각>의 경우는 훨씬 좋았다. 그러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좀 버거웠던 분들은 <한나 아렌트의 생각>을 통해 정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필자가 그랬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도저히 이해 안돼서 <한나 아렌트의 생각>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보았으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완독하지 못한 것에 미련은 사실 없다. 그래도 개정판이 나온다면 다시 읽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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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나 아렌트를 대학교 교양수업이었던 철학강의에서 처음 알게되었다. 프로이드처럼 한 손에 시가를 들고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아렌트의 모습은 정말 대단한(?) 사유를 하는 철학가의 면모가 보였다. 그게 첫인상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곳저곳 책을 탐독하다보니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이 종종 들려왔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설명은 어려운 이 이론을 드디어 책으로 독파하게 되었다. 책은 생각보다 두꺼웠으며 그렇기에 쉬이 읽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가 유일하게 대중을 대상으로 쓴 책이라는 것에 희망을 가지고 읽어나갔고 완독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누구에게 명령을 받고 추천을 받았던 나의 행동이 일어난 것에 책임은 나고 선택도 내가 한것이다. 이러한 간단한 진리와 사실을 한 사례를 통해 서술해나가는 아렌트의 사유가 놀랍고 흥미롭게 읽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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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1906년 독일 졸링겐에서 태어난 아이히만은 1932년 비밀 나치당에 입당했고 같은 해 하인리히 히믈러가 조직한 나치 친위대 (SS) 정예부대에 들어갔다 히믈러가 국가안전국(RSHA)를 창설했을 때 베를린에 있는 유대인 담당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다 1942년 1월 베를린 근교에서 나치 고위관리들이 모여 유대인 문제의 마지막 해결책에 필요한 계획과 병참업무 준비에 관한 회의를 열었는데 아이히만은 이 문제의 책임을 맡음으로써 사실상 대량학살을 뜻하는 이 마지막 해결책의 집행자가 되었다 그는 유대인을 식별하고 집결시켜 그들을 집단수용소로 보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전쟁 뒤 아이히만은 미군에 붙잡혔으나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했다 이후 몇년 도안 중동지역을 전전하다가 1960년 5월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에서 체포되어 이스라엘로 이송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의 특별법정에서 재판을 열었는데 1961년 4월 11일부터 시작된 이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지난 뒤 유대인 학살 소식이 전세계에 알려졌을 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나 아렌트도 그것이 진실이라고는 믿지 못했지만 결국 그 소식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의해 잡혀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렌트는 예정되었던 대학의 강의를 취소하고 미국의 교양잡지 뉴오켜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참관하게 된다 이로써 이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탄생한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해 보고를 하면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언급을 하였는데 이는 어떠한 이론이나 사상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아주 사실적인 어떤 것 엄청난 규모로 자행된 악행의 현상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 악행은 악행자의 어떤 특정한 약점이나 병리학적 측면 또는 이데올로기적 확신으로 그 근원을 따질 수 없는 것으로 그 악행자의 유일한 인격적 특징은 아마도 특별한 정도의 천박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또 그에 앞서 있었던 경찰심문에서 보인 그의 행동뿐만 아니라 그의 과거에서 사람들이 탐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특징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어떤것이었다 그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흥미로운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이었다 그는 한때 자기가 의무로 여겼던 것이 이제는 범죄로 불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그는 이러한 새로운 판단의 규칙을 마치 단지 또 다른 하나의 언어규칙에 불과한 것처럼 받아들였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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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 책을 읽었다. 유대인 학살관련하여, 또 부제인 "악의 평범성"이란 말이 궁금하여, 필독서라는 이 책을 참 힘겹게 읽어내려갔다. 나치 친위대에 들어간 아이히만은 마지막 해결책이라 불리는 유대인 대량학살의 집행자가 되었고, 유대인들을 집단수용소로 보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전쟁 후에 도망다니다 체포되어 예루살렘의 법정에 나치 전범으로 재판을 받게되었고,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그 재판과정을 한나 아렌트가 참관했고, 이 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피고 아이히만은 "신 앞에서는 유죄라고 느끼지만 법 앞에서는 아니다"라는 주장을 했고, 정신과 의사들과 성직자들은 그를 아주 정상적이고 매우 긍정적인 사람으로 발표했다. 오히려 유대인 증오자가 되지 않을 이유가 더 많았다고도 했다. 아이히만은 의외로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게 많은 유대인들을 식별하고 모아서 죽음으로 몰아넣은 잔인한 짓을 했는데도 말이다. 적어도 그정도의 잔인한 짓을 하려면 어딘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던지, 어린시절 엄청난 트라우마가 있던지 그래야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아이히만은 판단하고 생각하는 능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것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지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능력이 없어보였다. 8000만에 달하는 사람들의 총통에 오른 것을 성공으로 보고, 그 성공만으로도 복종해야 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는 아이히만은 "성공"을 가장 중요시여겼고, 그래서 복종했다. 아이히만의 논리는 자신의 의무에 충실했으며, 명령을 잘 지키고, 법을 잘 지키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 법이 옳고 옳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은 것처럼 보였고 자신은 오로지 그 법을 잘 지켰다는 것이다. "악"은 꼭 대단한 신념이나 종교가 없어도 평범한 속에서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할 줄 모른다면 우리는 누구나 아이히만같은 악행을 저지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은 상사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고 아무리 주장한 들,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판단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불복종하는 것이 맞겠지. 처음에는 의외로 평범한 아이히만때문에 놀라기도 했지만, 뒤로갈수록 논리적으로 생각못하는 그가 아주 평범하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읽어볼만한 책임이 분명하지만 잘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때문에 안타깝다. |
| 한나 아렌트라는 이름은 익히 들어왔지만, 작가의 저서는 읽어 본 적이 없어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어요. 앞에 짧게 붙어 있는 해설? 이 더 좋았습니다. 하지만 원본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끝까지 읽었습니다. 익히 일고 있는 학살에 대한 이야기면서도 결국 사람의 본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근래 나치와 관련한 글을 많이 읽는데, 그런 저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었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다른 책을 읽어봐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