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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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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차별. 여성 상위시대. 다양한 말이 오갈 정도로 짧은 시간동안 우리 사회는 큰 변화를 일궜다.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수치들이 여전히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해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하물며 과거에는 그 정도가 더 했을 것이다. ‘전통’이라며 많은 것들이 일상이었던 조선 후기,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일제 강점기 여성들의 삶은 오늘날과는 분명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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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차별. 여성 상위시대. 다양한 말이 오갈 정도로 짧은 시간동안 우리 사회는 큰 변화를 일궜다.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수치들이 여전히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해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하물며 과거에는 그 정도가 더 했을 것이다. ‘전통’이라며 많은 것들이 일상이었던 조선 후기,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일제 강점기 여성들의 삶은 오늘날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1920년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문화통치다. 숨막히는 무단통치의 시기를 지나 기만의 시대로 접어든 1920년대다. 얼핏 보면 전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게 허락된 듯한 이 시기에 ‘신여성’이라 불리는 이들이 출현했다. 오로지 아이를 낳아 기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던 여성들은 이 시기에 개인에 눈 떴다. 자신의 인격과 개성을 존중해줄 것을 부르짖었으며, 자유연애, 자유결혼 등 이전 같았으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죄악처럼 여겨졌던 것들을 추구했다. 도전에 대한 반동 또한 거셌다. 오랜 시간동안 유지됐던 가부장적 질서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리가 없었다. 마치 유럽의 중세시대에 벌어졌던 마녀사냥처럼 근대 신여성들을 향한 공격은 자행됐다. 그녀들은 방탕하고 수치심을 모르는 존재로 치부됐는데, 공격은 동시다발적으로 치밀하게 행해졌다.

변화는 190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 또한 전 시대와 비교한다면 신여성에 해당하겠으나 저자는 이들을 1920년대 출현한 여성들과는 다르다고 보았다. 1900년대의 대표적인 신여성으로 저자는 하란사, 박에스더, 차미리사 그리고 윤정원을 언급했다. 윤정원을 제외하면 이름부터가 서양식이었고, 역시나 앞서 언급된 세 명은 윤정원과는 다른 성장과정을 거쳤다. 그래도 모두가 근대 지식과 교육을 경험할 수 있는 해외 유학을 통해 보다 넓은 세계를 접했다. 영어와 일본어의 습득 측면에서도 당대 다른 여성들보다 그들은 많은 기회를 누렸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이 신여성으로 구분하기에는 의식적인 측면에서 부족했음을 지적했다. 여성에게도 남성과 같은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실제 그들의 생활은 고리타분(?)해 계몽 측면을 좀처럼 놓지 못했다. 결혼 않고 평생을 여성 교육을 위해 헌신한 그들에게 자유연애, 더 나아가 여성 해방은 불경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1920년대엔 보다 급진적인 여성들이 등장했다. 그들이야말로 ‘신여성’이라는 단어로 불리기에 충분했다.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역시나 나혜석이었다. 그녀는 이상적인 주장을 제 삶으로 직접 실천해 보임으로써 이론과 실재의 일치라는 혁명적(!)인 결과를 선뵀다. 김명순, 김원주, 윤심덕 등도 비슷한 사상을 공유하긴 했으나 전통과의 결별 측면에서는 나혜석이 한 발 앞섰다. 나혜석은 사랑에 씌워진 사회적인 시선을 거둬들였고, 인간의 감정과 취향 등을 그 빈자리에 입혔다. 오늘날의 시선에서 평해도 그녀의 목소리는 결코 고리타분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랬기에, 물론 다른 급진주의 여성들의 삶 또한 불우하긴 했다, 그녀는 기성 사회에 의해 철저한 박해를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시대는 계속 흘렀고, 여전히 여성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진영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로 갈렸을 적에도 마찬가지였다. 각기 다른 노선을 취한 이들이 걸은 길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왜 전자는 친일의 길에 접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패배주의에 젖어서? 친일이야말로 독립을 위한 강해짐의 방법이라는 확신 때문에? 반면 사회주의 진영의 인사들은 끝까지 투쟁일로를 걸었다. 우리 사회에선 위험하다 여겨졌지만.

친일을 배제하고 났을 때 어느 쪽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주장은 사실상 힘들었다. 시대적 배경 자체가 독립 외의 다른 이슈들을 허락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여성’ 또한 마찬가지여서, 여성을 논하는 많은 목소리들의 목표는 결국 조국의 독립이었다. 독자적으로 여성을 논할 수 있는 시대 상황이 아니어서 많은 여성들은 독립 운동과 국민 계몽의 틀 안에 여성을 담으려 애썼다. 운동은 개인보다 집단으로 행할 때 큰 힘을 발휘한다. 오늘날처럼 미시적인 것까지 고려하는 분위기는 당시로선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여성을 위한다는 이들이 실질적으로는 여성을 배반하는 결정을 내리는 일이 잦은 것은 양립할 수 없는 두 흐름을 억지로 하나로 묶으면서 생긴 일종의 부작용이 아니었을지 싶었다. 결국 시대가 변화를 꿈꾸는 신여성들을 짓밟은 꼴이었다. 이는 신여성에게만 해당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이후로도 우리 사회는 격변의 시대를 지나쳤다. 여성은 전쟁 시기에 어린 아이와 함께 가장 약한 존재로 공격당한다. 군사독재 시기에는 더더욱 남자 형제를, 남편을, 아버지를, 계속 거슬러 올라가 각하를 향해 절대복종하는 것이 여성스러운 것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끊임없이 투쟁해왔다. 새로운 시대를 부르는 끊이지 않는 목소리의 시작이 1920년대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 스스로를 제물삼아 새 시대를 열었던 이들이 있어 오늘날의 내 삶도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이달의 사락 q*****2 2016.10.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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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신여성, 자유연애와 여성해방을 외치다-신여성, 개념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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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때 교양과목 중에 여성학을 선택해서 수강한 적이 있었다. 그 강의는  한국 여성에 관련한 내용은 없었고, 서구여인들이 펼쳤던 여성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성취를 중심으로 진행됐던 기억이 난다.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여성사하면 서구여성사에 경도됐고, 상대적으로 우리 여성들의 목소리에 대해선 소홀하게 대했다. 신여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자유분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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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때 교양과목 중에 여성학을 선택해서 수강한 적이 있었다. 그 강의는  한국 여성에 관련한 내용은 없었고, 서구여인들이 펼쳤던 여성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성취를 중심으로 진행됐던 기억이 난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여성사하면 서구여성사에 경도됐고, 상대적으로 우리 여성들의 목소리에 대해선 소홀하게 대했다. 신여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겼던 여성일 정도로 이해가 일천했다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 

 

'신여성, 개념과 역사'는 조선말과 식민지 치하에서 여성으로서 문제를 인식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여성에 대한 개념과 실체에 대해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는 조선말 혹은 일제치하에서 가부장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닌 여성들을 전부 신여성이라고 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근대 여성 사이에서도 세대와 이념에 따라 또 노선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신여성하면 나혜석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이 책에 의하면 나혜석은 근대여성 2세대, 급진주의자에 분류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근대여성 1세대, 2세대, 3세대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고, 왜 그렇게 구분되는 것일까.

 

근대 여성 내부의 차이를 논하기 이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1890년대를 근대여성이 출현한 시기라고 거론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 시기에   근대 교육을 받고 근대 지식과 교양을 지닌 새로운 유형의 여성들이 등장했고, 가부장 남성 지배와 전제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의 평등을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여성 스스로 자각과 계몽을 위한 집단 활동에 나섬으로써, 그이식이나 활동에서 근대성을 드러낸 것이다.

 

이 근대여성들 중 1870년대에 태어나1890년대 이후 사회 영역에 진출한 일군의 여성들을  1세대 근대 여성으로 일컫는다면,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로 이행하면서,이들에 이어 새로운 여성 집단이 출현했는데, 이들은 2세대 근대여성으로 불린다.이들 대부분은 1890년대에 태어나 1920년대에 식민지 공공영역에서 활동했는데, 이 시기에 사회주의의 세례를 받은 여성들이 나타나면서 이념에 따라 민족주의, 자유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범주가 분류된다.

그런데 1930년대 이르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을 망라해서 다양한 성향과 활동을 보인 근대여성집단이 출현하고, 이들은 3세대 근대여성 에 해당하는 것이다.

 

여성으로서 제 목소리를 낸 여성집단이라고 근대여성, 혹은 신여성으로  인식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세대를 구분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탄생연대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세대에 따라 주목할만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대여성 1세대와 2세대를 구분짓는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여성주의의 의식과 이념 그리고 실천에 있다. 주장했던 여성주의의 쟁점의 내용에서 공유하는 내용도 있었지만  차이 또한 있었던 것이다. 그 공유와 차이를 가리고 구분하는 것이 세대 구분를 가르는 분수령이 되는 것이다.

1세대 근대여성은 남성과 동일한 교육기회의 요구, 경제 독립, 직업과 사회활동의 필요 등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전통시대 여인과 달랐지만, 1920년대 2세대 근대여성과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1920년대 근대여성들은 자유연애와 여성 해방을 공론화하면서 1세대와 차별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2세대 근대여성에 대해서 상당히 주목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 시기의 여성들이 노선에 따라 연애, 결혼, 가족, 모성, 정조 등에 관해 다양하고 풍성한  견해를 드러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념에 따라 보수,자유, 급진, 사회주의 중 특히나 급진주의 여성들의 견해는 일찍이 접할 수 없었던 파격성을 보였다.

대표적인 경우가 나혜석인데,  '정조는 취미'라고 했던 그녀의 말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나혜석은 성과 사랑에 대해 도덕과 윤리, 법률의 차원을 벗어나 오로지 감정이나 취향과 같은 인간의 성향에 의해 결정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성에 대해서도  본능이고 절대라는 통념에 동의하지 않았다. 여성의 모성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양육을 통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봉건사회의 현모양처에 대한 주입은  가부장제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한 방편이었는데, 이 시기 여성들은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 대해 전통사회와는 확연하게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을 뿐더러 지금 이런 발언을 해도, 찬반 논쟁이 뜨거웠을만큼 시대를 앞서간 주장을 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신'여성이라고 일컫게 된 것은 '구(舊)'여성 즉 봉건적이고 전통적이었던 여성과는 다른 사고와 의식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좀더 학문적으로 엄밀하게 구분하자면 1920년대, 그것도 급진주의적 여성들을 '신'여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내 관심도 1920년대 2세대 근대 여성쪽에 몰리게 됐다. 어렸을 때에는 나혜적이나 김원주(일엽) 등 애정행각에 관해 단편적인 이야기만 알고 있다가,이 책을 통해 이들의 주장과 여성으로서의 사고를 접할 수 있어서 그들의 사상과 견해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서 다향이엇다.오랫동안 여성주의적 입장이 대중들에게 전달되기 보다는 신여성의 사생활을 흥미위주로 전달돼 우리나라 신여성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컸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혜석이나 주로 애국투사라고 여기고 있었던 김마리아의 여성주의적 입장을 알게 된 것은 소득이었다. 제 1세대 하란사, 차마리사, 윤정원 이나, 2세대 김명순, 김원주, 정종명, 정칠성 3세대 김메리, 박화성 등, 그리고 배우로 익히 알고 있었던 복혜숙이나, 무용가 최승희, 내가 나온 중학교 설립자인 송금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이들의 여성으로서의 주장을 알게 된 것도.

 

봉건사회,가부장제의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워져 있는 1900년대 초반 근대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자각과 주장은 조선사회의 근대성을  상징하는 일이기도 했다. 다양한 관점과 사고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공적 영역에 진출하는가하면, 성과 모성, 가족 등 여성의 삶을 직접적으로 지배하던 요소에 대해 본격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고 활동했던 신여성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이들 신여성 목소리에는 시대와 이념에 따라  차이가 분명히 존재했고, '신여성, 개념과 역사'에서는 그 차이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규명하고 있다.

 

 

 

 

 

 

 

e****0 2016.06.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