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등단했고 등단한 지 13년만에 나온 김연숙 시인의 첫 시집. 첫 시집이라는 것과 '눈부신 꽝' 이라는 제목이 맘에 들어 구매했다. 문학동네 시인선 시리즈를 모두 구매하는 건 아니지만 최근 들어서 문학동네 시인선 시리즈를 자주 구매하고 있다. 나는 그냥 모니터 속 글자들을 보고 있을 뿐인데 골치 아픈 지젝 선생 인터뷰에 골몰했을 뿐인데 모니터 옆에 반쯤 남은 파카 잉크병 왜 쭈욱 한번, 들이켜고 싶었나 입술 위에 검푸른 밀크 스마일을 흐르게 하고 혀와 목구멍과 식도 뱃속까지 시커멓게 물들이면 시원할 것 같았나 나는 그냥 밤을 치려고 새들새들 작아지는 밤톨이나 깎으려고 자그만 과도를 집어들었을 뿐인데 짧고 뾰족한 그 칼날 난데없이 부르르, 저 혼자서 진저리를 치더니 어딘가를 누군가를 푹, 찔러보고 싶었나 박아보고 싶었나 나는 그냥 빵 봉지나 들고서 우리 동네 일방통행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차들이 내 앞으로 스쳐가고 있었는데 왜, 한쪽 발 불쑥 내밀어 우두둑 뜨겁게 박살 한번 나보고도 싶었나 나는 그냥 평온한 포커페이스 하루하루 무난하게 건너가고 있었는데 - 밀크 스마일 그 여자 태어났을 때 온 식구 허탈해서 누워버렸죠 꽝 뽑았다고, 딸이었다고 빈 동그라미 안에서 꽝 아기 쌔근쌔근 자고 있었죠 다섯 살 무렵부터 온몸으로 태가 흐르더라는 아주 일품이라는 그렇고 그런 얘기들 아홉 살 때 얻어 읽은 폭풍의 언덕 귓가에 먹먹한 그 폭풍에 사로잡혀 속편을 쓰고 또 쓰고 끝내, 그 여자의 연애는 꽝이었다죠 전생을 보고 머리 위의 후광도 볼 수 있다던 웬 도인이 말했었대요 당신의 오라는 흰빛이군요 꽝은 당연히 흰빛 지금 그 여자 머리 위를 한번 보세요 눈부신 꽝입니다 - 당신은 꽝입니다 모든 시를 다 이해한 건 아니지만 왠지 계속 여운이 남는 느낌이다. 가까이 두고 보일 때마다 아무데나 펼쳐서 읽어보고 있다. 13년만에 나온 첫 시집인데 두번째 시집은 언제쯤 나오려나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