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말하는 벽돌책은 조금이라도 관심이 동하는 주제를 다루면 큰 맘 먹고 독서하는 편이다. 저렇게나 두꺼운 책으로 내겠다고 마음 먹은 저자와 출판사가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지 사뭇 궁금해지기 때문. 이 책도 그런 접근으로 읽게 된 책이다. 번역서를 먼저 도서관에서 훑어본 후 '어머 이건 원서로 좀 봐야겠어' 하는 마음이 동해서 고민없이 구입. 읽으면서 보니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에 발췌할 만한 지문들도 자주 보인다. 그런 부분들은 어떤 식으로든 써먹을지 몰라서 별도로 표기해 둔 채 전반적으로 밑줄 쫙쫙 치며 흥미롭게 읽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No Exit, 번역서에 따르면 '출구 없는 방'이다. 그 유명한 사르트르의 명제 "타인은 지옥이다"가 등장하는 작품 제목이기도 하고 실제로 이를 언급한다. 그런데 그간 저 명제를 오해하고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원서인고로 직접 인용하기보다는 간단히 내용을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말은 인간에 대한 혐오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이 계속 지켜보고 있는 한 자기 자신과 타인 사이의 적절한 균형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인식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래서 사람은 독서를 해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읽어야 한다. 어설프게 읽은 척 하게 되면 타인은 지옥이다는 저 말의 함의를 결코 알 수 없을테니. 책에서는 또한 backstage 개념을 언급한다. 역시 유명 인사인 어빙 고프먼이 주창한 개념으로서 이 역시 간단히 정리하자면 우리가 진정한 우리 자신일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우리의 보편적 욕구를 뜻한다. 무대에서 형성된 인상을 의도적으로 벗어던지는 곳이 바로 백스테이지, 무대 뒤가 되는 것. 이런 무대 뒤가 없는 곳, 항상 무대 위에서 출구 없는 방 그 곳에서 언제나 타인의 시선 혹은 감시를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면 그게 바로 사르트르가 말한 지옥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견해에 적극 공감하면서 한줄소감에 적은 것처럼 당할 때 당하더라도 이런 내용들을 좀 알고 나서 당하면 그래도 덜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하는 게 뭐냐고? 우리 자본주의 사회는 갈수록 그 무대 뒤가 사라지고 있음이다. 나 혼자 밖에 없는 내 집은 가장 전형적인 무대 뒤가 아니느냐고? 휴대폰까지 꺼버리고 한동안 오래 지낼 수 있다면 인정, 어 인정.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내 집에서 혼자 있음이 정녕 혼자일까? 페이스북과 인스타를 비롯한 각동 SNS 알림들과 매시지들이 있는 한 무대에서 완전히 내려온 것은 아닐진대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고 깊이 논의될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인 만큼 관심 있는 분들께는 적극 추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