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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큰 글자에 놀란다. 아마도 어르신들이 읽기 편하게 배려한것 같다. 한단락 한단락 한문장 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책소개1948년생 대한민국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건국일이다. 대한민국이 그냥 아무 나라가 아닌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탄생한 날이기도 하다. 오천 년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자유민주혁명이었다. 공산 전체주의 야욕을 가진 세력과 치열하게 싸워 아주 간절하게 이루어낸 건국이었다. 이날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한국인은 백성이나 신민이 아닌, 비로소 ‘자유가 보장되는 개인이자 국민’으로 거듭났다. 건국사를 알면 온갖 고난을 이기고 대한민국이 탄생했고 번영해서 선진국 문턱 까지 오게된 것은 기적이라고 알게된다. 한 10여년 전 까지는 그랬다. 이제 선진국은 좀 보류해야 하는 시점이다. 건국사를 읽자니 눈물이 날것 같다. 5~10장이 정말 중요하다. 짧은 다이제스트 같은 핵심 역사 책, 소련군을 해방군이라는 최근 한국 근대사 교과서가 이나라 역사책인가?여기가 북한인가? 나는 한국 근대사를 배운적이 없다. 교과서에도 단 몇줄, 그저 광복후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로 끝났던 것 같다. 뒤에 몇줄 있었어도 그뒤 경제성장을 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참이다로 끝났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근대사에 관심이 있었다. 3.1절,8.15 역사 다큐멘터리가 나오면 흑백 필름을 보는것이 재밌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신탁통치 때 좌우 극심한 분열 상황 말씀 하셨고 나는 그런 이야기가 재밌었다. 화면에서 흰 머리띠를 하고 플랭카드를 들고 사람들이 뭉쳐 뛰어다니며....신탁통치 결사반대라고 외쳤단다. 좌우가 갈려서 우익은 반대, 좌익은 찬성이었다. 나는 안락한 시대였고 부모님이 말씀하는 시대는 다시는 그런 혼란 불안은 없고 모두 옛날 이야기,옛날 사람들은 참 힘들었겠다... 이 책은 그시대 이야기다.(지금 이야기이기도 한) 이책은 아주 핵심만 있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같은 크기의 글자도 큰 책이다. 문장 하나하나 가슴을 때린다. 마지막 까지 다 읽으면 그 시대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애쓴 한국의 선각자들, 특히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건국 대통령님, 처음엔 우왕자왕 계획이 없고 하마터면 소련에 넘길뻔 했으나 마지막 정신을 차린 미국, 유엔,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부모님과 같은 한국인으로 고생했던 국민들에게 깊이 감사드리고 겸허한 마음이 든다. 나중에 책 내용에 표시해둔 부분을 좀 옮기겠다. 이책에 리뷰가 많을줄 알았는데 아직 없어서 의외다. 오래전 부터 종종 이야기해보면 연세가 지금 80 되시는 분들도 그때 어린 아이여서 그렇기도하고 본인들이 관심이 없어서 나이들어서 알려고 했다면 알수있었던 건국사를 하나도 모르는 어른들도 보았다. 그분들은 아주 단순하다. 지금 사람들은 너무나 물질적인것에 빠져산다. 아주 현세적이다.나는 다른 면으로 현세적이지만 그들은 나와 또다르게 현세적이다. 내일은 책 내용을 좀 소개하겠다. 책 내용중 소련군을 해방군이라는 최근 한국 근대사 교과서가 어느 나라 역사책인가?여기가 북한인가?어처구니가 없다. 우리 역사 교과서가 소련군이 해방군으로 가르치고 있다니 ... 인류 최악의 만행중 하나- 1939 독소 불가침 조약 맺은 소련은 독일에 이어 폴란드를 같이 침공,동부를 점령, 지식인,장교, 사회지도급 인사 2,2천명을 소련 카틴 숲에서 모조리 학살,1989년 고르비 대통령이 비밀문서 공개,인정. 소련 스탈린은 9월초 김성주를 면접, 낙점해서 1945년 9월 19 소련 대위 계급장을 달고 김성주와 하수인들을 원산항에 데리고 왔다. 1945년 8.28, 소련 88여단 소속, 김성주는 북한으로 들어오기직전 적기훈장을 수여받아서 대위임. 미국은 소련의 정체 파악을 못하고 한반도 상황에서 2년동안 소련에 속아서 허송세월만 하다가 결국 유엔에 한국 문제를 넘기고 유엔에서 남북한 총선거 정부수립으로 정하지만 소련의 방해로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북한땅에 못들어간다. 소련이 있는한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워야했다. 그때 부터 좌익의 폭력 투쟁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이미 1946년 대구 폭동 때 부터,한반도와 한국에서 좌우 대결의 그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운형, 1945년 8.15일 조선총독부에 사상범 1만명 석방을 요구 16일 일제히 풀려나서 해방 직후 남한은 좌익 천지로 변함. 그래서 해방정국에서 좌파가 정국 주도하게 됨. 식량배급권,치안권,언론사 장악하는 권한 이양받음.-이유ㅡ>조선 총독부는 먼저 우익과 연결하려했으나 우익은 상해 임시정부에 권한이 있다고 하는등 뒤로 빠졌다. 그틈을 여운형이 들어왔던 것이다. 귀국하는 일본인들의 안전이 필요했으므로 총독부는 그걸 보장받고 여운형의 말,즉 일본이 잡았던 공상주의자들 석방을 들어줘야 했는데 총독부는 우익이 원하지않을텐데 했으나 총독부로서는 이제 무슨 권리가 있나. 여운형 마음대로이지.그래서 조선 반도는(그때는 한국이 아니니까)1946,8.16일 전국 사상범들이 교도소에서 1만명이 석방되어 바로 좌익 천국이 되었다. 1946년 8월 미 군정청 일반 시민 조사-77%가 사회,공산주의 선호. 1946년 5월 공산당이 불법화되자 소련의 자금 지원을 받아 폭력 투쟁을 시작한다. 좌파는 그때 부터 용어혼란술을 썼다.소련 전술을 그대로 전수 받았기에 예를들어 신탁통치를 숨기고 삼상결정이라고 쓰는등 지금 까지 그 전술을 쓰고있다. 항상 분열의 틈에서 자라나 세를 확장하여 권력 탈취하는 습성은 공산주의 불변 전술. 공산주의자들도 민주주의를 말한다. 국가 이름에도,그러나 다 용어혼란전술이다.이들이 말하는 민은 무산 노동자 계급이다. 좌우 합작해서 어떤 임시 정부를 만들면 조금 있다가 공산주의 만드는것은 식은 죽 먹기. 1946.2.8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성립,이것은 북의 단독 정부 수립이란 말이다. 그후 4달간 남북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본 이승만은 1946.6.3 정읍 발언을 한다. 좌익은 이걸 트집 걸지만 사실은 북이 저 위원회를 통해 토지 무상몰수 토지개혁을 미소공위 전 20일 만에 해치우는 단독정부를 먼저 한것이다. 전부 스탈린 지령이었다. 1946.3.20 미소 공동위원회, 이미 소련은 미국과 협상 의도가 전혀 없다고 보여줬으나 미국은 눈치 못챘다.(내 생각, 당시 미국 국무부엔 소련 스파이들이 많았다.)스탈린은 45년 9월20일 북에 부르주아 연합정권을 만들라고 지시, 이것은 동유럽을 공산화 한 수법과 같았다. 처음 다 못잡수면 처음엔 저런식 제의해 정신 무장해제 시킨후 공산 세력이 강해지면 바로 소비에트화 하는 것이다. 저런 부르주아 연합 이런 용어혼란전술에 속으면 안된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미국과 자유 진영은 순진해서 상상도 못하는 일은 소련에 거주하던 한인 2~3만명을 공산혁명 요원으로 훈련시켜 북으로 데려왔던 것이다. 그결과 북한은 바로 공산국가 건설 착수 가능했던 것. 이일을 1945년 9월 중순 부터 46년 2월 초 까지 다 했다.(이 시간은 책에 나온게 아니라 내가 내용을 맞춰본 결과)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표류,남한의 정치,경제는 혼돈상태에 빠진다. 위에 내가 갈호안에 썼던 저런 이유도 컸고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미국이 인식 못하고 있었다. 아무 계획,준비가 없었으므로 처음 부터 치밀한 소련 전략에 비교가 안됐다.(6.25 때 까지 그랬다. 그러다 갑자기 6.25가 터지자 미국이 깨달은 것이다. 소련 야욕을, 한반도 중요성을, 미국은 1949년 6,30일 철수했었다.) 1946년 3.20일 미소공위도 소련의 방해와 반대로 한달만에 결렬, 아직도 미국은 소련에 환상 기대를 가진다. 이것은 미 국무부내 소련 스파이 (1920~약 60년대 까지도 전세계 지식인중에는 좌익이 많았던)영향도 있다. 1946년 12월 좌우합작위원회, 미군정은 우익 혹은 나중에 중도로 보는 김규식, 좌익 여운형을 연결,(이런것 절대 믿지말라.공산주의로 가는 정해진 길)남조선과도 입법의원 설치, 그래도 우익이 이기자 하지 미군 사령관은 선거부정으로 규정,관선 대부분을 좌익으로 채움. 그러자 드디어 이승만은 12.7 미국으로 직접 건너간다. 좌우합작위원회 해산됨. 이승만은 한국 문제를 유엔에 이관하려 미국의 여론 주도층,언론에 한국에 올바른 정책을 호소하기 위해 방문. 미군정은 미국식 민주주의에 투철해서 관용적이었다.공산주의의 악랄성을 몰라 순진했다.온갖 불법을 저질러 1946년 5월 공산당은 은행권 위조 발행,체포령, 미군정에 폭력투쟁,총파업 시작,이것도 지금과 똑같다. 이렇게 과거에 다 했는데 아직도 당한다. 1946.10.1 대구 폭동, 1948.1.25까지 김구,중도 김규식은 이승만과 거의 같은 의견,그러다2.10 부터 달라진다.여기에는 김구는 4월19 북에가서 인민군을 보고서 기가 죽어서 나라를 만들어도 북에 먹힐거니까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북 수법에 당한다...이런!(북은 정부가 수립되기 전 군대가 먼저 창설,세계사상 드문 사례라고)김구는 세계적 시각이 없는 배경이었다.단순 무식해서 미 군정을 무너뜨리려 여러번 쿠테타 시도하는등 어이없게도 그때가 상해 시절인줄 아직도 착각. 김구는 간첩중의 간첩 성시백과 서영해에 포섭된 영향이 컸다. 1948,4월 김구,김규식 평양 방문. 소련군의 지원 받은 북한 인민군을 보자 기가 죽어서 우리가 대한민국을 건국하더라도 곧 북한의 남침으로 공산국가 세워질것이니 나라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했단다. 이제 좌익이 5.10 총선거 방해로 들어간다. 제주도 4.3 사태.그때 제주 상황은 제주도민 80%가 남로당 지지자,그런데 당시 조선 반도 사람들은 80% 정도가 까막눈이었다. 뭘 알겠나 그들이 다 세뇌,선동된것.일제시대 부터 좌익에 물든 제주도였다.그때 벌써 한국 공산당 지부를 만들었다고. 북한 간첩이자 일제 시대 소위였던 김달삼은 제주 폭동을 일으킨다. 이와중에도 김구,김규식은 좌익 세력과 같이 5.10 선거 저지,남북협상을 외친다. 남로당이 계획 주도한 4.3 무장 폭동은 한국의 총선을 방해하려는 목적이었다. 8.23~25 북한의 지하 선거인 황해도 해주 선거에 제주도민 85%가 참가했다는 것.그래서 48년 9.9 북한조선 선포. 북한의 내각 구성을 보면 전부 좌익이 항상 쓰는 말로 완전 친일 내각이다.북은 토지개혁을 통해 재산을 가진 사람을 친일로 몰아 빼앗고 숙청,그러나 친일했어도 북정권에 협조하면 괜찮았다. 북의 친일 청산은 공산에 비협조, 반공하면 친일파라며 몰아 숙청. 북의 모든 정책은 소련의 지시대로였다. 이승만을 친일 프레임으로 공격도 마찬가지. 1945.12.28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신탁통치가 결정되자 우익은 찬탁 외치는 공산당을 매국적 괴뢰집단으로 조선공산당은 반탁의 우익을 친일이었다로 공격. 김구,김규식은ㅇ 좌익의 극렬한 총선 저지 투쟁을 정치적으로 강하게 돕는다. 선거날에도 좌익은 공공기관 습격,테러 살해,방화,도로 교량 파괴,기관차 철도 파괴,전화선 절단등등 그날 하루 경찰관 51명 비롯 62명의 관리 살해되고 수백개 관공서가 습격당했다고 한다. 1948.7.24 정.부통령 취임식(중앙청 광장),8.15 대한민국 선포 기념식 유엔의 결의에 따라 5.10 총선거, 국회 구성,헌법 제정,7.17공포, 정부조직법,정부 수립. 당시 사람들에게는 정부 수립은 독립,건국이었다. 1949.8.15 1회 독립기념일,민국 건설 1회 기념일.-1948.8.15 독립이자 건국 독립기념일을 광복절로 바꾼다.절로 통일하려고, 1948.12.12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로 유엔에서 승인. 1949.1.1미국이 대한민국을 가장 먼저 승인,1.4일 중국의 장제스 정권 한국 인정(그때는 아직 공산정권 전) 유엔의 한국 승인은 6.25때 지원 근거가 된다. 한국은 유엔의 자손이라는 평. 전교조에 교육받은 30,40대는 자신의 생각이 전교조 세뇌에 영향 받지 않았는지 생각해보라. 이승만 건국대통령은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을 민주주의자라고 속여 민심을 현혹하며 활동하고 있다고 간파했다. 1945년 12월 17일 소련을 자신의 조국이라 부르는 이들은 한국을 떠나 자신의 조국에 가서 그 나라를 섬기라고 했다. 대한민국 건국의 재인식, 건국대통령 이승만 (유영익 지음),임정에서 인도까지, 대한민국을 만들다(기파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