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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타난다를 찾아가는 길(파블 17기 1-1)
"사치타난다를 찾아가는 길(파블 17기 1-1)" 내용보기
1995년 이글거리는 태양이 땅덩이를 집어삼킬 듯 맹렬한 열기로 덤비던 한여름 돌연한 일로 혈육을 잃은 뒤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예상치 못했던 일로 작별 인사 한마디도 못한 채 떠나보내야 했던 무상한 시간은 자연스런 일상을 앗아갔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 들기 힘든 시간들이 늘어났다. 부는 바람에 분분이 흩어져 날리는 벚꽃 잎을 보며 시절 인
"사치타난다를 찾아가는 길(파블 17기 1-1)" 내용보기

    1995년 이글거리는 태양이 땅덩이를 집어삼킬 듯 맹렬한 열기로 덤비던 한여름 돌연한 일로 혈육을 잃은 뒤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예상치 못했던 일로 작별 인사 한마디도 못한 채 떠나보내야 했던 무상한 시간은 자연스런 일상을 앗아갔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 들기 힘든 시간들이 늘어났다. 부는 바람에 분분이 흩어져 날리는 벚꽃 잎을 보며 시절 인연 따라 피었다 지는 자연의 섭리는 모든 생명체는 멸하고 만다는 진리를 함의하고 있는 듯하다. 생사의 구속에 얽매어 지쳐버린 정신을 바로 세우기 위한 방편을 찾던 중 1996년 조계 총림(叢林)인 송광사에서 열린 짧은 출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45일 간의 사찰수련회에 동참하였다. 휴대폰을 반납하고 법복으로 갈아입은 뒤 사자루에 모인 참가자들은 공동 수행에 동참하였다. 새벽 예불, 기초적인 교리공부, 참선 시간, 발우 공양 등으로 꽉 짜인 일정은 숨 막히는 시간이었지만 일상에서의 여러 역할에 끄달리지 않는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한 저자는 어떤 모임에서 10년 묵언 수행을 한 송담 스님 소식을 듣고 지금 갈증을 느끼고 있는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 선지식을 친견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살면서 쌓인 문제로 마음이 오염될 때마다 무력감은 더했고 피폐해진 육신과 마주하는 일은 덧없음을 더했다. 저자는 인간관계에서 쌓인 문제를 해결하고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깨달음을 얻은 송담 스님을 만나고 싶은 절박함으로 낯선 한국을 찾았다. 1987년 송담 스님의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한국 사찰의 문화와 예법을 익히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송담 스님을 친견하는 날을 고대하며 쉴 새 없이 수련해갔다. 육체적·정신적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자신은 왜 송담 스님처럼 안 되는 것인지 자책하면서 자신을 담금질해갔다.

 

   ‘그분은 어떤 사람일까?’

   자신만의 진언을 품고 지내던 저자는 마침내 19881월 송담 스님을 만나 그 문하에서 변함없는 집중력으로 참선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스님은 진정한 나의 경험 주체를 찾으라며 출가를 권유했지만 모든 것에 집착하고 미련이 있었던 저자는 그 청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산문 밖으로 향하는 저자에게 스님은,

   “어서 빨리 갔다 와, 우리 같이 도 닦자.”

   라며 문제가 생긴다면 딴 데 가지 말고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로펌 사무실 직원으로 일하면서 관성대로 행하는 자신을 사랑하며 살기도 어려웠다. 돌아왔던 길을 되짚어 사찰로 돌아온 수행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남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며 공양간을 수련의 장으로 여겼다.

   ‘참선 수행을 제대로 하려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 놓이든 그 상황을 수행으로 삼는 법을 터득할 줄 알아야 한다.’

   과거에 머물지 말고 미래를 꿈꾸지도 말라는 송담 스님의 가르침은 오직 이 순간, 일어나는 그 마음에 집중하며 감정을 통제하여 내면의 평화를 위하는 참선 수행의 길에 들어섰다.

 

   꽉 짜인 틀 속에서 주어진 일들을 행하느라 힘든 수행 생활은 산문 안에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환산 스님은 송담 스님에 대한 믿은 하나로 도반들과 뜻을 같이하는 승려로 맺은 불가의 인연에 감사하면서도 종교적 삶이 위선적이고 기만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용한 송담 스님은 어미 사자가 새끼 사자를 훈련시키듯 제자들을 가르쳤다. 사찰 생활에서 오는 절망과 무의미함을 느끼며 외로움이 엄습할 때마다 제멋대로 날뛰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탐욕과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이 우리를 외롭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든다는 점을 기억하고 주변인들의 행동을 비판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왕왕 있었다. 속이 상할 때에는 몸으로 가라는 스승의 말처럼 꾸준한 참선 수행으로 내 마음을 통제하며 즉각적인 치유가 일어나도록 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그 상황을 수행으로 삼는 법을 터득할 줄 알아야 한다는 송담 스님의 가르침은 심신을 훈련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만큼 인내심을 전제로 하였다.

 

   열을 맞춰 반가부좌하고 단전호흡으로 좌선하는 시간 10분은 어찌 그리도 길던지 화두를 놓지 말라는 지도 법사의 가르침이 무색할 정도로 잡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참선을 계속하는 이유는 몸과 마음의 고요함 속에 평화를 찾고 조그마한 일에도 감사하며 행복해하는 자신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패에서 벗어나기 위해 5R 방법-회복(Recovery)재충전(Recharge)자기성찰(Reflect)전략 다시 세우기(Re-strategize)다시 시작하기(Re-engaga)을 따라 자기 혁신을 이룰 필요가 있다. 개인적 고통을 해소하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시작해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자극하는 것으로 나아가 인간의 의식을 일깨워 변혁을 일으키는 것으로 끝이 나는 참선은 내면에 묻혀 있던 지혜를 일깨우는 일이다.

   ‘이 뭣고?’

   화두를 들고 올바른 호흡과 자세로 참선을 행할수록 해로운 습관에서 벗어나 고통을 끊고 건강한 삶을 회복하여 자기 변혁을 이룰 수가 있다.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길 바라는 마음이 탐욕을 낳고,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분노와 망상으로 이어짐을 알아차리며 의식의 흐름을 차단하는 일이 중요하다. 어지러운 마음이 일어나 상상이 나래를 펴고 넘쳐나지 않도록 일념 단속하고 한 생각 이 뭣고?’를 계속해야 한다.

 

   경험으로 터득하는 나만의 방식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 고독한 길이지만 유한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고 답함으로써 인생을 살아가는 자기만의 방법을 터득하는 일은 개성으로 발현된다. 환산 스님은 불교 TV 프로그램 방송에 출연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참선법을 진행하였다. 저자는 스승의 권유로 시작한 방송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회의하며 다른 역할을 수행해 왔음을 깨달았다. 참선은 종교 교리를 무조건 믿고 복종하는 게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고 불가능한 질문을 던지는 구도자여야 함을 환산은 알아차렸다. 송담 스님의 맹목적인 추종자로 기계적으로 살고 있는 자신과 직면했을 때에는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는 것이 우선이라 여기고는 한국 사찰을 나와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찾아 나섰다.

 

   교리나 의식을 중시하는 종교의 덫에 빠지지 않는 참신함으로 카르마로부터 벗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깨어나 훨훨 날아가는 자유를 얻는 깨달음의 길은 도처에 자리함을 일깨운다. 저자는 정적인 전통 좌선에 육체적인 소극성을 보완하여 균형을 맞추는 요가를 공부하기 위해 들른 발리의 우붓에서 아픈 마음을 치유 받으며 생명을 구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누군가가 시간을 내어 자세를 바로잡아 주고 호흡을 가다듬어 준 일은 요가를 배울 때가 처음이었다니 한국사찰에서의 고독한 수행의 험난한 길이 떠오른다. 몸을 이완시키는 법인 아사나를 배움으로써 유연성을 키워 참선 자세에 접목하니 한결 편해짐을 체득하며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아갔다. 한 주거지에서 다음 주거지로 옮겨 다니며 요가의 대가로 알려진 이들의 수업을 듣고 삶을 긍정하는 즐거운 수행법인 참선을 오랫동안 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적극적이었다. 요가 스승 티와리가 스승의 비전에 대한 자기만의 비전으로 스승의 가르침을 이끌 듯 저자 역시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 카이발랴다마 요가 연구소에서 티와리 초급과정을 마치고 또 다른 비전을 찾고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면 40도에 육박하는 한여름 선풍기도 돌아가지 않은 사자루에 따닥따닥 붙어 앉아 수행하던 찰나의 시간을 떠올린다. 공동 수행 공간에 몸을 누이고 뒤척거리다 경내를 돌며 만물을 일깨우는 목탁 소리에 일어난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사찰 내 처소에서 밝아오는 불빛은 하루를 여는 희망의 빛이기도 했다. 자신의 자리를 정리하고 열을 맞춰 대웅전으로 향하는 걸음은 구도자의 초심을 살피는 걸음이었다. 자비를 실천하며 맑고 평화로운 마음을 늘려가는 노력을 기울일 때 참선 수행은 확인되지 않은 전제들을 다 내려놓고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남의 칭찬이나 욕에 반응하지 않으며 남의 허물을 달래면서 타인의 장점을 키워줄 수 있는 통찰력 있는 지혜로 자기 변혁을 이루고 싶다. 크고 작은 일들이 얽히고설켜 감내하기 힘든 부분들이 속출할 때에도 이 뭣고?’를 붙들고 호흡을 조절하며 화를 다스리는 용기로 괴로움을 벗어나고 싶다.

   ‘사치타난다!’

n*****9 2020.01.06. 신고 공감 2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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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의 심연과 만나는 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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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을 좋아한다. 그곳에서는 급할 것도 없고 서둘러야 할 것도 없고 시간의 흐름도 다르게 느껴진다.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 지친 마음을 좀 내려놓고 평온한 시간을 가져보라고 산사의 바람도 속삭여주는 듯하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스님의 낭랑한 염불 소리나 목탁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불교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보는 것도 그렇다. 무엇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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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을 좋아한다. 그곳에서는 급할 것도 없고 서둘러야 할 것도 없고 시간의 흐름도 다르게 느껴진다.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 지친 마음을 좀 내려놓고 평온한 시간을 가져보라고 산사의 바람도 속삭여주는 듯하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스님의 낭랑한 염불 소리나 목탁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불교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보는 것도 그렇다. 무엇이 그렇게 산사의 풍경 속으로 이끄는 걸까. 오래 전에 읽은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쓴 현각 스님이 떠올랐다. 오직 진리, 즉 베리타스(Veritas)를 찾기 위해 애쓰던 벽안의 외국인이 숭산 스님을 만나 불교에 입문하고 수행하는 과정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인상적이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곳도 끊이지 않은 마음의 번뇌가 일렁이는 다른 모습의 사회라는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참선을 주제로 이 책을 쓴 저자 테오도르 준은 미국으로 유학한 한국인 부모님의 아들로 태어난 재미교포 2세이다. 그는 환산 스님으로, 방송에서 오랫동안 참선을 가르치기도 했다는데 TV와 담을 쌓고 살아서인지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앞서 현각 스님의 경우와는 불교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좀 달라서 왠지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진리를 찾다가 숭산 스님의 설법을 듣고 스님이 되고 싶었다는 경우에 비하면, 그는 마음속에 들끓던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이나 어렸을 때부터 쌓여온 온갖 마음의 고통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 계속되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송담 스님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질풍노도와 같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마음속을 꽉 채우고 있던 질문들의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마치 한 편의 성장 소설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항상 자신의 관점으로 타인들을 바라보기 마련이어서 그럴까. 화려한 스펙과 안정된 진로가 약속되었을지도 모르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의지대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호기심을 갖게 된다. 다른 분야보다 종교계에 대한 입문은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는 보통사람들의 삶에 회의적이었다. 또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아웃사이더로서 정체성을 고민했고, 풀리지 않는 인간 존재의 목적과 본성에 관한 의문으로 고통 받고 있던 듯하다. 이민자인 부모님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당혹감을 느꼈다는 것을 보면 보통 사람들보다 예민한 감수성과 이타심도 보였고 강한 것 같으면서 여린 마음으로 내면의 고통이 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인간으로 살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인간은 정말 피와 살로 이루어진 물질적 존재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그 이상의 것이 있을까 

육신이 죽은 뒤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냥 영원히 사라지는 것일까 

우리 몸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어떤 것이 있을까 

인간은 정말로 어떤 존재일까 (1권 p40~41)


  그의 내면에는 항상 이런 질문들이 들끓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도 한번 쯤 마음속에 품을 수 있는 생각이지만 대개는 더 이상 빠져들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승려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고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할 생각도 아니었다고 한다. 대학시절 선불교 모임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송담 스님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고 졸업하기만을 기다린다. 송담 스님을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자신의 건강하지 못한정신을 치료할 방법을 찾기 위한 절박함 이었다.


  10년간 묵언 수행을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송담 스님을 향한 저자의 마음은 마치 인기 아이돌을 향한 소년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2년을 기다린 끝에 친견하던 날, 스님의 아우라에 완전히 압도되고 이후 출가하여 수행자 생활을 하는 내내 마음속을 지배하게 된다. 스님을 향한 존경심과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선불교 모임에 참여한 부류에 세련된 젊은 대학생들이 많았던 것을 생각할 때 딱히 종교라는 이미지보다는 문화로서 향유하지 않았나 싶다. 내면의 고통을 치유하겠다는 일념으로 송담 스님을 만났지만 스님은 그것을 말이나 개념으로 전달할 수 없고 참선 수행을 통해서 알 수 있도록 도와 줄 수는 있다는 말을 듣는다. 어차피 세상의 어떤 공식 같은 삶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참선이라는 생각에 이르러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분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 삭발을 하고 절에서 발우 공양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불경을 소리 내어 일고 각종 의례를 진행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한국어도 한자(漢子)도 몰랐던 상황에서 스님의 법문이나 전문적인 불교용어를 어떻게 다 익혀나갔을까. 배움에 대한 지원이 없어서 혼자서 터득해야 했기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일상의 활동들을 해나가면서도 종종 낯선 자신을 발견한다. 권위와 복종을 보았고 폭력적인 기운 속에 숨겨진 두려움과 절망을 발견하면서 동료애를 느끼기도 한다. 그들과 자신의 공통점이 있다면 세상이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아파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밖에도 전통적인 종교 문화의 측면에서 알지 못하는 것믿는 것사이의 혼란으로 힘들어 하며 연극적으로 보이는 종교에 위선을 느낀다. 한 달에 한번밖에 볼 수 없는 송담 스님을 학수고대하며 보낸 순수한 마음이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송담 스님에게 홀딱 반했기 때문이었다고 회상하는 부분에서 묘한 연민이 느껴졌다.

 

  참선, 하면 고요한 법당에 정좌하고 있는 수행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수계를 받은 지 2,3년이 지난 어느 날 방송실에 망연하게 앉아 있다가 송담 스님과 마주친다. 반갑기도 하고 내면의 갈등을 들킨 것 같아 복잡한 마음이 된 환산 스님은 자신을 바라보는 송담 스님의 표정을 감지한다. 흐뭇한 애정, 염려와 연민, 약간의 슬픔까지 깃들어 있는 그 표정을. 항상 제자의 내면을 꿰뚫는 듯이 간파하고 있던 송담 스님은, 뭐든지 배울 수 있는 세상이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있다며 이야기를 꺼낸다.

 


속상할 때나 화가 날 때나 슬플 때나 두려울 때 그리고 마음이 아플 때는 어떻게 해야 해?”

                                            (1권 p158)


  참선이 필요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참선은 수행자만이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왔다. 정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속상해도 화가 나도 아닌 것처럼 위장하고 그것을 풀지 못해 앙금을 쌓으며 세월을 보내지 않았는가. 인간관계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는 감정의 상처를 수도 없이 받는다. 그때그때 바로 밀어낼 수 있다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정신의 건강을 온전히 지켜내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우리가 이뭣고?”를 읊조리며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은 마치 자동차를 타고 흙먼지 속을 달릴 때 먼지로 뒤덮인 유리창을 와이퍼로 한 번 닦아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간단한 한 번의 작동으로 앞이 환해지듯이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것을 참선으로 막을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참선에는 요중선(움직이는 참선)과 정중선(앉아서 하는 참선)이 있다고 하는데 일상생활에서도 참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 놓으면 스트레스, 충격 등 정신적인 안정을 빨리 되찾고 평화로운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명상법은 참선 밖에 없다는 것이다.

참선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올바른 자세, 올바른 호흡, 올바른 생각 이렇게 세 가지면 어디서든지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원래 참선의 기본자세는 가부좌 자세지만 현대인이 실천하기에는 어려운 자세이므로 의자에 앉아 참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을 권한다. 이 자세는 학교, 직장은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스트레스와 불안한 마음을 제거할 수 있는 실시간 참선이며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참선법이라는 것이다.

 

  그 방법은, 준비단계로 감정 치유를 위한 호흡을 먼저 하고나서 본 호흡으로 들어가는데 복식호흡을 하면서 이뭣고라는 화두를 들어 질문하면 된다이뭣고이것이 무엇인가?’ 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라고 한다. 이 화두를 던지는 이유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내면의 이것에 대해 알고 싶고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란다. 짧은 말의 이뭣고가 리듬감 있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도 모르게 이뭣고를 읊조리곤 했는데 뭔지 모를 붕 떠있는 듯한 불안한 마음들이 사라지고 평온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챙김 명상[ mindfulness meditation ] 이 떠오르기도 했다. 자신의 속마음이 변화되어가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일상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뭣고는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화두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기 전에 그러지 않도록 막아주는 경고등처럼 말이다. 감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순간에 이뭣고를 말하며 현실로 돌아와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참선을 활용하면 좋을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문명의 혜택 속에 살고 있지만 그에 비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누구보다 많은 업적을 올려야 대우 받는 세상이다. 삶이라는 과정 자체에서 마주하는 외로움, 우울, 불안, 중독적인 생활습관, 갈망과 혐오, 화와 집착 등 온갖 감정을 마음속에서 물리치는데 사용할 수 있다. 부정적인 생각이 더 커지기 전에 서둘러 없애버릴 수 있는 예방 차원의 개인 맞춤형 정신 건강 프로그램이라고 하니 배워서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마음에 남는 문장들


우리는 건강을 위해 몸을 깨끗이 유지해야 한다는 건 알면서 왜 마음에 대해서는 그리지 않을까?”(P182)


'참선은 살아가는 방식이다.’(P248)


양동이가 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올바른 해결책은 안에서 구멍을 막는 것이다. 바깥에서 막으려고 해서는 소용이 없다.”(P315)


'참선은 죽음에 대한 불안을 억누르는 대신에 그 불안의 에너지를 연료처럼 이용한다. 죽음에 대한 불안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이면 이뭣고?” 화두에 더 강렬하게 집중할 수 있다. 사실 이 죽음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참선이 정말로 생명력을 갖게 된다.’(P320)

                                  -이상은 1-


참선으로 각자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참선을 통해 우리 모두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2P257)


  맑고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한 참선부터 사는 동안 두렵게 여겨지는 죽음에 대한 불안을 참선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일상생활에서 조용한 참선과 활동적인 참선이 균형 있게 이루어지면 우리의 몸과 마음 정신은 평화롭고 맑은 상태가 될 것이고, 세상이 조화롭고 나아가서 우주와도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참선을 접하게 된 초심자라면 인내심을 갖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 매 순간을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수시로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마음의 평온을 유지 할 수 있으며 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행복하면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기는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작용으로 인해 베푸는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 국가, 세계로 넓혀갈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평화로운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참선이 추구하는 미래상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 두 살의 청년은 송담 스님을 만나 영감과 감동을 받고 그분처럼 되고 싶었던 환산 스님은 어떻게 되었을까. 30년 가까이 수행자 생활을 하는 중 7년 전에 활구 참선을 가르치라는 송담 스님의 권유로 TV방송을 시작하며 유명세를 얻고 성공적인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지만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보다 앞서 이미 환산 스님의 마음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출가하게 되면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벗어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절의 운영방식에서 군대라는 조직의 모습을 보았고 비영리 중소기업에 취직한 것처럼 느껴졌단다. 자신이 싫어했던 세상의 모습을 피해서 왔는데 절에 와서 다시 만났다고 할까. 계파와 파벌이 생겼다 흩어지고 불만과 갈등, 경쟁과 논쟁, 동정과 연민의 감정들, 일반 사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나 싶다.

 

  TV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광대라 여기며 환멸을 느끼고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 했던, 원래의 자신의 삶으로 돌아 갈 결심을 한다. 당시 척추전방전위증이라는 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던 터라 여러 보직에서 물러날 이유도 타당했지만 심경은 복잡해 보인다. ‘물과 산소같은 존재였던 스님에 대한 애착과 추종자노릇을 그만 두고 떠나야 한다는 확신 사이에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다. 불교를 믿어서가 아니라 스님을 믿기 때문에 스님이 되었고 자신은 언제나 송담 교도였다는데. 믿었던 사람, 믿었던 세계에서 빠져 나오며 무엇을 보았을까. 마치 환상에서 깨어난 것처럼 황망하게 느껴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슬프면 이상하게 그 슬픔 한가운데서 기쁨이 느껴진다. 온 힘을 다해 꽉 붙들고 있던 뭔가를 잃어버리고 나니 아니, 놓아버리고 나니 비로소 주위의 모든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었다.(2-p57)

 

그 정원에서 마침내 깨달았다. 성인이 된 후로 줄곧 엉뚱한 곳을 들여다보고 잘못된 기준과 관점에 연연해왔다는 것을. 더 나은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하다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땅속에서 금을 찾다가 결국 그 땅을 놓쳐버린 꼴이다.(2-p75) 

 


  한때 무관심했던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 살아가기 위해 가게를 열고 출근을 하기 위해 서두르는 사람들을 보며 진짜 살아가는 모습을 느끼게 된다. 무언가에 흠뻑 빠져있을 때는 주위의 사정이 눈에 들어오지 않듯이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평범함에서 새로움을 발견한 것이다. 절을 떠나온 것을 후회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대부분의 청춘을 보냈으니 그 감회도 남다를 법하다. 요가를 배워 참선에 접목하기 위해 발리와 우붓을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지난날의 자신을 떠올린다. 혼자서 모든 일을 하는데 익숙해졌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오래 걸렸고 편하게 지내지 못하는 것 등,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부모를 두고 떠난 긴 세월을 뒤늦게 안타까워하고 승려로 살았던 30년을 놓아버린 후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이 여행의 과정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삶을 맞이하여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치르는 통과의례의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저자는 다소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종교에 귀의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에서 빠르게 회복하도록 돕는 참선을 우리의 삶에 포함시키는 방법을 나누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혁신과 자기 진화의 혜택을 누리도록 돕는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고도의 경쟁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도 없다.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상태에 처했을 때 참선을 배워서 실천한다면 위기도 극복할 수 있고 좀 더 행복하고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진정한 참선은 일상생활을 벗어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것이다.” 

                                                           -본문 중-

 


  나는 1년 반 전부터 108배 운동을 하고 있다. 무릎에 무리가 오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했지만, 심신 건강에 탁월하다는 한의사의 체험 이야기를 읽고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했던 때는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7월이었는데 약 100일 정도를 하루도 쉬지 않고 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내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요즘은 의식적으로 일주일에 세 번 정도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횟수는 세지 않고 15분 내외로 몸을 굽혔다 펴는 동작을 반복 하다보면 몸도 따뜻해지고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해진다. 마음의 평온은 물론 근육 단련에도 좋은 효과를 보았다. 참선은 복식호흡을 하며 내면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생각되는데, 두 가지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심신의 건강에 더욱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30년 가까이 한 사람과 한 세계를 믿고 따르며 살아가다가 그 세계에서 떠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믿고 사랑했던 스님을 떠나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그의 끝과 시작을 아름답다고 혹은 아름답지 못하다고 가볍게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사람이 인생의 과정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선택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고 각자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에게도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추종자로서 살아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 곳에서 살아가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웠고 깨달았을 것이다. 참선을 화두로 이 책을 쓴 것도 자신의 지난날을 통해서 변화된 삶을 제대로 바라보고자 계획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영감과 사랑을 받았던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지금은 21세기 도시 수행자가 되어 참선을 가르치고 강연을 하는 등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굽이굽이 세월을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앞으로의 삶이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보통사람들의 행복은 물론 온 인류의 안녕을 위해 참선을 널리 알리고 소통하는데 이바지하기를 기원한다.

 

 

h*****7 2020.01.18. 신고 공감 14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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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까?, 참선 1,2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까?, 참선 1,2" 내용보기
뚝- 뚜뚝-. 어딘가 조용한 동굴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런 동굴 속 물방울 소리가 어디선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온다고 했을 때, 그 물방울 소리에 온 신경을 기울여 듣는다해도 이내 곧 우리의 머리와 마음은 기억의 강을 넘나들 것이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대화를 떠올리고 이런저런 일들을 상상하기까지 한다. 하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신경쓰이는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까?, 참선 1,2" 내용보기

뚝- 뚜뚝-.

 

어딘가 조용한 동굴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런 동굴 속 물방울 소리가 어디선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온다고 했을 때, 그 물방울 소리에 온 신경을 기울여 듣는다해도 이내 곧 우리의 머리와 마음은 기억의 강을 넘나들 것이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대화를 떠올리고 이런저런 일들을 상상하기까지 한다. 하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신경쓰이는 내면의 소리-해야할 일들의 목록이 계속 떠올리는-까지 모두 들으며 글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두 권으로 된 방대한 내용의 책속에서 어떤 걸 먼저 끄집어 낼지 뒤죽박죽 섞인 채 내안에서 계속 싸우고 있다.

 

오직 지금 여기, 이 순간만 생각하기가 어쩜 이리 어려울까?

 

여러가지를 다 잘하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빠르게 처리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타고난 천재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헌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들의 경우, 대개 집중력이 뛰어난 듯하다. 오직 지금 여기, 매순간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집중도 집중이지만 감정에도 쉬이 휘둘리지 않다니, 그게 가능한 걸까? 

 

헌데 그걸 가능하게 도와주는 것이 바로 '참선'이라고 한다. '참선'이 무얼까...?

 

참선은 당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 당신의 생각과 감정, 말과 행동을 관리하고, 정신적 고통에서 빠르게 회복하도록 돕는 완전한 자기 변혁의 길이다. (1권, p16)

 

나아가 참선의 목적은...

 

진정한 마음, 당신(내)안에 묻혀 있던 지혜를 발견하는 것(1권, p19)이다.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람쥐 쳇바퀴같은 틀에 박힌 일상을 살다보면, 지나온 과거가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다. 어찌보면 가장 자유롭고 커다란 가능성을 품었던 학창시절을 왜 그리 삭막하게 보내야했는지 괜스레 안타까워진달까? 지금에서야 알게된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삶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지나간 것은 이미 지나간 것,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또 한번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이 귀하고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쓰고 더는 안타까워 하지 않으려면 '참선'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

 

 

'참선'을 알게 되고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애썼고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이 책의 저자, 테오도르 준 박의 삶을 통해 '참선'에 대해 알아보면...

 

그는 여느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은, 어찌보면 더 탄탄대로의 삶을 살아왔다. 유학생으로 부모님이 미국에 건너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계 미국인으로 이름만 대면 거의 다 아는 유명한 하버드 대학을 다녔고 친구를 사귀며 별탈없이 잘 지내왔지만 그런 자신의 삶에 계속 의문을 가지게 된다. 지인들을 통해 알게 된, 10년간의 묵언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송담 스님'이란 분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온다. 본래 불교나 절과는 뜻이 없었으나 송담 스님을 만나고 그에게서 뭔가를 느낀 그는 스님의 가르침을 받겠다는 일념으로 '환산 스님'이라는 법명을 받아 머릴 깍고 행자부터 시작해 마침내 송담 스님을 곁에서 모시는 시자가 되는데 어느날, 방송 매체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고 한국 전통의 참선 효과와 실천 방법에 대해 강연도 하고 불교 관련 TV매체에 꽤 여러 번 출연하며 참선을 알리는 일을 시작하지만 3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다...!

 

'참선'에 대해서만 논했다면 자칫 지루하고 어렵게만 느껴졌을 수도 있는데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어느 한 사람(개인)이 어떻게해서 '참선'을 접하게 되었는지 그 경험담을 상세히 전함으로써 '참선'에 보다 더 다가가기 쉽게 해준다. 그리하여 내가 이해한 바로는...

 

참선 = 명상


즉, 참선은 명상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올바른 자세와 호흡, 생각(이뭣고?)'으로 어렵지 않게 쉬이 할 수 있는 명상이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현실적으로 "이뭣고?"에 집중하려 애를 써도 머릿속에 갖가지 생각과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주위가 산만해지는 것이 초보 수행자들이 직면하는 첫번째 문제다. 주위가 산만해지고 집중이 안 될수록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더 힘들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호흡을 부드럽게 일정한 박자로 조절하는 것도 더 어려워진다. 유감스럽게도 정신이 산만해지면 결국은 호흡과 자세의 균형도 깨지고 경직된다. 참선을 배우려 애쓸 때 가장 좌절감을 느끼는 면이 바로 이부분이다. 집중하려 해도 잘 안되는 우리의 어설픈 모습이 고대 경전이나 현대 명상 지도서에 멋지게 묘사된 의식의 고양 상태와 너무 다르다는 사실. 참선을 잘해보려 노력하는 것이 짜증 나는 수업으로 느껴진다. (1권 p266~267)

 

무조건 이렇게 하면 된다...가 아니라 잘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알고나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보다 더 알기 쉽게 들리고 믿음이 가고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저자가 존경했던 어느 한 스님의 말처럼...

 

"한 시간 앉아 있는 동안 단 1분이라도 일념으로 집중할 수 있다면 대단히 잘한 거야."(1권, p267)

 

참선이 진전을 보이는 것은 오직 끈기와 관련이 있다.(1권, p268)

 

또 한번 깨닫는 바지만 살아가면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건 없다. 이 책의 내용에서 가장 깊이 와닿았던 대목은 저자와 그의 친구 세바스찬이 나눈 대화였는데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1권, p130~132)

 

"...(중략)... 그 분이 너를 바라보면 그분은 정말로 너를 보고 있는 거야."

 

"중간에 걸러지지 않은 직접 지각을 이야기 하는 거구나.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 경험에 가까운 것."

 

"그게 너의 기본 상태가 되는 거야."

 

"...(중략)...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창의적인 사람이라해도 그분이 너를 보면 그분과 너 사이에는 어떤 베일도 잡음도 없어. 그냥 공기뿐이야. 깨끗이 비어 있어. 그분이 너에게 말하면 정말로 너에게 말하는 거야. 그분이 머릿속에 갖고 있는 너에 대한 이미지가 아니라...(중략)...

 

지금껏 누군가가 너를 정말로 봐준 적이 있어?
누국가가 정말로 너에게 말을 걸어준 적이 있어?
다른 누군가를 하나의 온전한 사람으로 만나본 적 있어?
우리는 늘 우리가 생각하는 그 사람의 이미지를 보고, 이미지에 얘기하지 않아?
늘 세상과 단절되어 자기 머릿속에 갇혀 살지 않아?"  

 

너무나도 의미심장한 이 대목을 읽고 왠지 마음이 덜커덩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고등학생 시절, 난 내안에 '또다른 나'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나는 누구이며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그러면서도 그 시기에 마땅히 해야할 일들을 묵묵히 해내었지만 그렇게 살다보니 언제 그런 의문을 가졌냐는 듯 '또다른 나'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가장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에서 나를 바라봐주었을, 그때의 '또다른 나'는 무엇이었을까? '참선'에 대해 배우고 '참선'을 꾸준히 실천한다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씌워진 편견과 선입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다른 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걸까?

 

수많은 의심과 불신 속에서도 깨어있는 사고와 열린 마음으로 편견없이 사람들을 대할 수 있다면 나는 지금보다 행복할 것이요, 우리에겐 보다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


참으로 생각이 많아지는 이야기인데 지금 당장 '참선'을 해야겠단 마음이 들진 않지만-저자도 언급하듯 아무래도 무시할 수 없는 저항감 때문이다-아주 조금씩 느리더라도 천천히 시작해봐도 되지 않을까? 우리가 참선을 해야 하는 이유는 살다보면 속상할 때가 있기 때문(1권, p283)이라는데 그 모든 괴롭고 속상한 순간에 단1분이라도, '이뭣고?'를 떠올리면서 참선을 해보면 어떨까? 그렇게 조금씩 저항감을 줄이고 익숙해지다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꾸준히 '참선'을 하고 있을 테고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가장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가진 '또다른 나'를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마음이 속상할 때 몸으로 갈 수 있도록
마음이 아픈 사람에겐 치유가 될 수 있도록
그 누구라도 혼자가 아닌 우리일 수 있도록
더는 마음이 속상한 사람이 없기를...!

 

왜냐면...

 

우리 모두에게 단 한번 뿐인 삶이니까.


**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까...?


저자는 외모가 영락없는 한국인이지만 태어나 자란 곳은 미국이다. 그는 어느 곳에서든 이방인이었던 게 아닐까 싶다. 헌데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나'로만 바라봐주는 송담 스님을 만나 제자가 되고 깊이 흠모하고 따랐으나 스님의 가르침과 참선을 통해 이윽고 들리게된 내면의 목소리를 계속 모른 척 할 수 없어 또 한번 삶의 전환점을 갖게된 것 같다. 송담 스님의 시자도, 선불교의 승려도 아닌 21세기 도시 수행자로, 테오도르 준 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고 속상한 마음을 낫게 해 줄 '참선'의 길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는 그에게 무한한 응원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

 

'참선'이든 그 무엇이든 아무리 좋다해도 '강요'가 아닌 '반드시 스스로 행하고 깨달아야 함'을 알게해 준 이야기, 넘 고맙고 감사합니다.

 

 

 

'바람이 불면 겨울나무가 되어라."(1권, p303)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창조한다는 것.(2권, p37)

 

잊지 않고 꼬옥 기억할께요...♤

 

 

 

k****e 2020.01.20. 신고 공감 10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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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는 삶을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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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란 단어를 좋아한다. 조용하고 잠잠한 상태의 마음을 원한다. 나의 마음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한 게 좋다는 걸 아는데도 그게 참 어렵다. 내 마음 하나 어쩌지 못하면서도 세상 일들이 내 마음 같지 않아 속상하고 힘들다. 친구나 지인도 마찬가지다.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면서 불만을 토로한다. ‘고요’를 만들거나 그것에 다가가려 하지도 않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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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란 단어를 좋아한다. 조용하고 잠잠한 상태의 마음을 원한다. 나의 마음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한 게 좋다는 걸 아는데도 그게 참 어렵다. 내 마음 하나 어쩌지 못하면서도 세상 일들이 내 마음 같지 않아 속상하고 힘들다. 친구나 지인도 마찬가지다.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면서 불만을 토로한다. ‘고요’를 만들거나 그것에 다가가려 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그것을 원한다. 이런저런 불평과 생각의 끝엔 결국 산다는 게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이토록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가, 란 질문으로 이어진다. 삶이란 허망한 것이구나. 결론을 맺다가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는 살아 있음이 감사하다. 간사한 마음, 그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사는 게 평온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참선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스승인 송담 스님의 단호한 말씀처럼 말이다.

 

“참선은 진짜 인간이 되는 길이지. 진정한 인간의 삶을 사는 방식이기도 하고, 또 우리가 마음을 다스리고 단속하는 방법이지.” (1권, 158쪽)

 

살수록 어려운 게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상담을 받고, 강연을 듣는다. 뭔가 발견하기 위해서,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말이다. 미국계 한국인인 저자도 그러했다. 보통의 삶을 사는 20대 청년이었고 고민과 방황의 끝에서 한국의 송담 스님을 찾아왔다. 10년간 묵언 수행을 하고 참선의 대가로 알려진 스승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다. 처음부터 출가의 길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그저 참선에 대해 존재의 이유에 대해 알고 싶었을 뿐이다. 누구는 이 책을 통해 참선의 세계를 배우고 경험하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테오도르 준 박이란 사람의 인생 이야기이자 누구나 한 번쯤 품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느꼈다. 존재와 동시에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사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국계 한국인으로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 한국의 사찰에서 스님의 길을 걸으며 스승인 송담 스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일, 그것은 힘들고 험난한 여정이었다. 그 안에서 참선의 기쁨을 찾는 일이야말로 수행은 아니었을까. 그가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느낀 것을 솔직하게 들려줄 수 있었던 건 그 과정에서 자신이 변화했기 때문에 ‘참선은 삶에 대한 일이다’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나는 참선을 시도했지만 그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없었다. 창피하지만 당연한 결과다. 그럼에도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고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그가 특별한 사람이 아닌 보통의 우리와 같았기 때문이다. 하버드를 졸업하고 30년 가까운 시간을 수행자의 삶을 살면서 강연과 강의를 통해 얻은 명성을 유지했다면 달랐을 것이다. 오히려 절을 떠나 세상으로 나와 여행을 하고 요가를 배우고 그 안에서 참선의 의미를 세상에 알리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더욱 놀라웠다. 본연의 나로 돌아와 초심의 마음을 돌아보고 나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선택은 아니었을까. 일상에서 참선을 하면서도 꾸준하게 요가 수련을 배우고 깨달음을 얻는 그의 모습은 아무런 노력 없이 변화를 바라고 고요를 원하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생을 걸고 세상에 말할 수 있다. 방탕과 방황으로 채워졌던 20대를 알기에 지금의 청춘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참선의 어려움을 알기에 참선을 배우는 이들의 좌절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상처 입은 치유자였다.

 

치유를 해주는 모든 사람에겐 아픔이 있다. 어쨌거나 우리는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통해 공감과 연민을 배운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사라지기를 바라게 되는 것도 자신의 불행을 통해서다. (2권, 103쪽)

 

참선에 대해 몰랐다. 그저 심신수련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여겼다. 마음을 모으는 기도, 명상, 호흡, 요가, 이런 단어들이 함께 떠올랐다. 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테오도르 준 박의『참선』을 읽었지만 여전히 나는 참선에 대해 잘 모른다. 그가 안내하는 방법대로 참선을 해보았지만 집중도 쉽지 않았고 “이뭣고”를 반복하는 일도 어려웠다. 그러니 삶의 화두를 생각하는 일이나 감정을 다스리는 건 엄두를 낼 수도 없다. 수많은 반복과 노력의 있어야만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참선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참선으로 시작해 참선으로 끝나는 하루가 얼마나 충만할지 짐작할 수 있다. 삶을 긍정하는 즐거움 가르침이자 수행법이 우리에게 얼마나 절실한지 알게 되었다.

 

참선은 우리 내면에 있는 해와 달의 빛을 모으고 주위의 구름에 초점을 맞춰 다 태워 없애버린다. 참선을 하면 더욱더 많은 빛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뚫고 나와 우리의 마음을 환히 비추고 몸을 가득 채운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두 눈과 얼굴에서 빛이 난다. 마침내 그 빛은 우리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빛이 비치는 대로 행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2권, 280쪽)

 

우리는 제대로 살기를 원한다. 그것은 나를 지키면서 타인과 함께 공존하는 일이다. 나의 내면을 수시로 들여다보고 주위를 살피는 일은 쉬우면서도 힘들다. 그래도 놓쳐서는 안 되는 걸 안다. 참선의 삶을 사는 일도 그렇다. 이제 겨우 참선에 대해 알아가는 내가 거들 말은 아니지만 참선이 주는 위대한 감동을 당신이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1,2권 통합 리뷰입니다.)

 

 

r*********s 2020.01.20. 신고 공감 10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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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를 가다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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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 시간을 좋아한다. 영혼마저 서늘해지는 듯한 그 시간에 나는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숲길을 따라 산책을 하고, 산 위 체육공원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맑아진 정신으로 집에 돌아와서는 일 년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찬물에 샤워를 한다. 경건한 의식과도 같은 일련의 절차들을 나는 수십 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렇게라도 하면 남보다 예민한 나의 성향이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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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 시간을 좋아한다. 영혼마저 서늘해지는 듯한 그 시간에 나는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숲길을 따라 산책을 하고, 산 위 체육공원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맑아진 정신으로 집에 돌아와서는 일 년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찬물에 샤워를 한다. 경건한 의식과도 같은 일련의 절차들을 나는 수십 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렇게라도 하면 남보다 예민한 나의 성향이 조금쯤 무뎌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것은 일본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가 말했던 둔감력이 내게는 아주 없거나 있어도 아주 미미한 수준에서 그친다는 사실에 대한 한탄이자 어떻게든 개선해보고자 하는 몸부림이 아닐 수 없다. "둔감, 그것은 바로 본래의 재능을 더 크게 꽃 피우는 최대의 원동력이다."

 

테오도르 준 박이 쓴 <참선 1, 2>을 읽으면서 나 역시 저자와 비슷하게 예민한 성향을 타고 태어났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예민하다는 건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하루하루의 일과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는 건 차라리 고문에 가까운 일이며 그런 것에는 관심조차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어울렁 더울렁 어울려 살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민하다는 건 자신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낼 잠재적인 가능성을 지녔다는 것이며, 이를 스스로 통제하거나 극복하지 못하면 자신의 삶 역시 힘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예민함을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자신에게 끌리는 예술에 심취하거나 요가든, 명상이든, 혹은 참선이든 자신의 영혼을 직접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하거나. 이런 까닭에 선천적으로 예민하게 태어난 사람은 예술가가 되거나 종교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고 나는 믿는다. 

 

"왜 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이토록 힘든 것일까? 왜 나는 그냥 남들처럼 살지 못할까? 인생의 소소한 기쁨들에 감사하며, 피할 수 없는 짐들은 기꺼이 짊어지고, 때때로 발생하는 불편함과 충격을 견디면서 말이다. 세상의 무의미함과 만사의 덧없음을 무심히 넘기면 좋으련만 왜 나는 더 의미 있게 살아갈 방법이 있다고 그토록 확신했을까?" (참선 1권, p.124)

 

<참선>을 깊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 인간의 자기 고백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비록 저자와 나는 판이하게 다른 인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겠지만 저자가 젊은 시절에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던 인생에 관한 숱한 질문들을 나 역시 끝도 없이 묻고 부딪쳐왔던 까닭에 저자의 고백이 예사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비교종교학을 전공했던 저자가 일신의 영달을 뒤로한 채 송담 스님의 시자가 되어 '환산'이라는 법명을 받고 30여 년의 출가생활을 했다는 그가 2017년 환속하여 다시 테오도르 준 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하면서 저자는 과연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수행 과정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지혜를 그는 이 책을 쓰면서 확연히 깨닫게 된 것은 아닐까.

 

"반면 큰 지혜를 가진 사람들을 어리숙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남의 칭찬이나 욕에 반응하지 않아서 때로는 사회화가 덜 된 사람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멸시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반면, 작은 지혜를 가진 사람은 경쟁심과 불안감으로 가득할 때가 많다." (참선 2권, p.184)

 

나도 학창 시절 인연이 닿은 스님으로부터 참선을 배웠던 적이 있다. 수행의 목적이 아니라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스님의 말씀에 혹해서 아주 잠깐 용맹정진에 든 스님들처럼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결기에 차서 참선에 임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자 참선을 행하는 시간은 점차 줄어들었고 사회에 발을 들이면서부터는 숫제 참선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저자는 자신이 "이미 깨달음을 얻고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1권 '참선 :  마음이 속상할 때는 몸으로 가라'에서 저자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인천에 있는 용화사를 제 발로 찾아와 송담 스님의 제자가 되는 과정과 수행자로 살면서 저자가 겪었던 고뇌와 갈등, 참선의 원리와 방법, 참선을 일상화하기 위한 전략을 쓰고 있다. 2권 '참선 : 다시 나에게 돌아가는 길'에서 저자는 속세와 떨어져 살았던 자신이 송담 스님의 조언에 따라 TV에 출연하고 참선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참선의 혜택과 효능에 대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테오도르 준 박의 <참선 >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힘들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내 인생의 스승과도 같은 스님을 생각했다. 나는 비록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하느님을 믿는 천주교 신자로 살고 있지만 종교를 떠나 인생의 선배로, 동시대를 사는 인생의 도반으로 스님은 내게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스님이 내게 들려주었던 말이 있다. "수도자는 삶 전체를 탐하는 자요, 속세의 인간은 삶의 순간순간을 탐하는 자이다. 탐하는 대상은 다를지언정 삶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다." <참선>을 읽고 멀리 있는 스님 생각을 했던 나는 내일 아침 오랜만에 참선에 들지도 모르겠다. 자세를 가다듬고 호흡을 고르면서.   

s*****l 2020.01.20. 신고 공감 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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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나를 만나는 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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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요즘 명상과 참선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는 차에 예스 블로그 리뷰 대회 책으로 소개된 테오도르 준 박의 <참선>을 만났습니다. 사실 이 책을 통해 저자를 처음 알게 되었기에 저자가 궁금했습니다. 미국에서 나고 자라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 학사를 그리고 뉴욕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 과정을 수료하였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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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요즘 명상과 참선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는 차에 예스 블로그 리뷰 대회 책으로 소개된 테오도르 준 박의 <참선>을 만났습니다. 사실 이 책을 통해 저자를 처음 알게 되었기에 저자가 궁금했습니다. 미국에서 나고 자라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 학사를 그리고 뉴욕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 과정을 수료하였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세속적인 삶이 아닌 출가를 한 이력이 특이했습니다. 깨달음을 얻고자 1990년대 한국 불교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사인 송담 스님의 제자로 출가했습니다. 세속의 눈으로 보면 촉망받는 길이 열려 있을 것 같은 문을 가지 않고 깨달음을 찾아 한국으로 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정말 그 깨달음을 얻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 궁금한 깨달음. 불법에는 관심이 많지만 저도 저자처럼 제가 경험하지 않은 것을 믿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평범한 제가 그 깨달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저자처럼 일찍이 인간 존재 근원에 대해 궁금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육아를 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고,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책들을 읽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제 상황과 같지 않았습니다.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한 제게 가능한 것은 책이었습니다. 책을 통해 얻은 저만의 길을 시행착오를 거치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인, 아들 둘 엄마라는 역할을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완수하려 했지만 일상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현실 상황에 표출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기술을 터득하고 적용했습니다. 그렇게 상황을 하나씩 하나씩 해결하면서 문제의 근본이 결국은 나라는 결론에 닿았습니다. 나의 변화 없이 진정한 이해 없이 그 어떤 것도 근본적으로 바로 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진정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깨달음이다'라는 것이 이제까지 제가 찾은 답입니다.

 

그 깨달음에 가까이 다가깔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찾은 것이 명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명상을 하면서 뭔가 벽에 막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그러다 선불교의 참선에 대한 관심이 커질 즈음 테오로드 준 박의 <참선>을 만났습니다. 책 덕분에 참선의 방법과 참선이 추구하는 바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럼,  이 책으로 그 해답을 찾았을까? 네, 어느 정도는 찾았습니다. 읽는 이에 따라 그 해석을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르나 제가 궁금했던 질문들의 존재를 다시 인식하고 저만의 답을 구하는 작업이 다시 시작된 것만으로 의미있는 책이었습니다. 종교의 수행방법을 다루고 있지만 특정 종교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고 객관적인 견해해서 참선의 의미에 대해 전하고 있어 더욱 진지하게 저자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1권은 3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부. 모든 일은 어떻게 시작하는가>에서는 저자가 출가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룹니다. 20대는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한 혼란을 겪고 있다는 생각에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다만, 저자는 어떻게 그런 혼란에 대한 고민을 현실 속에서 묻어버리지 않고 답을 구하러 떠났을까. 나는 어떤 타협점을 찾아 현실적인 길로 나아갔을까''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2부. 활구참선법>에서는 실제 참선방법이 소개됩니다. 활구참선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참선입니다. 사구참선과 대비되는 말로 참선을 책이나 공부로 하는 것이 아닌 우리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합니다. <참선의 목적은 이렇게 왜곡되고 망상으로 가득한 마음 상태를 몰아내고, 송담 스님이 어린아이에게 설명했던 맑고 행복한 본연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다......중략......그것이 원래 우리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보았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선사들이 참선을 "내가 나를 깨닫는 길"이라고 불러왔다...p.193>이 구절을 읽으며 육아서를 통해 육아란, '아이의 고유함을 지켜주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육아란 어쩌면 아이의 순수한 빛을 살면서 잊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깨달음을 갈망하는 근원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3부. 참선의 치유력>에서는 우리가 근본적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상황을 참선과 심리학적 관점에서 치유하는 방법을 듣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게 되는 괴로운 감정, 이기심, 불안, 외로움, 우울, 중독, 화와 같은 감정에 대한 설명과 함께 참선이 이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 소개됩니다. 마음 작용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부분들이 많아 줄을 많이 그어 가며 읽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 우리 마음을 양동이에 비유하여 바깥 자극에 대응하는 방식을 비유하는 방법은 참선의 효과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마음이라는 양동이에 구멍이 나 있을 때, 우리는 그 구멍을 안에서 막아야 합니다. 바깥세상을 단순히 벽을 쌓는 방법 예를 들면, 템플스테이와 여행같은 일상의 벗어남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구멍난 양동이를 안에서 막는 방법이 참선이라는 것입니다. 외부 자극에 대한 우리 마음작용을 쉽게 풀어놓아 참선을 더 하고 싶게 만든 장이었습니다. 


<참선2>는 2부로 되어 있습니다. <4부. 참선이 가진 탈바꿈의 힘><5부 참선과 미래>입니다. 2권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형식에 가까워 책장이 넘김이 조금 수월했습니다. 4부에서는 저자가 자신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실패에서 벗어나는 방법 5R을 소개합니다. 5R은 회복Recovery, 재충전Recharge, 자기성찰Reflect, 전략 다시 세우기Re-strategize, 다시 시작하기Re-engage로 이어집니다. 구도자로 시작했지만 자신이 존경하는 스님처럼 되고 싶다는 목표가 실패한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서 회복되는 과정, 그리고 다시 깨달음을 찾아 절을 떠나고 수행을 위해 인도로 떠난 여정이 소개됩니다. 인도에서 참선과 함께 요가로 수행하는 과정을 읽으며 예전부터 배우고 싶던 요가를 꼭 시작해야 겠다는 생각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병환소식을 듣고 또 방법을 찾는 과정은 내가 아는 것에서 벗어날 때 느끼게 되는 두려움을 생각하게 합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두려운 것은 결국 내가 아는 틀을 벗어나는 두려움이 아닌가 하합니다.  


<결국, 참선, 사랑 그리고 기부 같은 고귀한 행위는 그게 옳다고 느껴질 때 해야 한다. 이 옳다는 느낌은 자신감, 희망을 느끼게 한다...p.125> 결국, 참선은 삶을 긍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어느 순간 <더 이상 내 삶을 내가 통제하는 게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p.148>라고 고백합니다. <우주의 더 거대한 계획의 일부인 것처럼 보였다. 우주가 나의 삶을 이끌고, 나는 단지 거기에 올라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p.149>에서 제가 깨달음에 대해 궁금해 읽었던 <될 일은 된다>와 <영혼의 자서전 요가난다>의 내용이 연상되었습니다.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보이지 않는 어떤 계획에 따라 살고 있다는 느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신비주의자처럼 들릴수도 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지나고 나면 제 삶에 꼭 필요했었구나' 느끼는 순간, 저 역시 제가 알지 못하는 우주의 에너지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5부 참선과 미래>에서는 현대 사회가 지식과 기술과 치중한 나머지 우리가 배우고 있지 못한 것들을 소개하며 참선이 미래에 지니게 될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장이었습니다. 과학발달이 쉴새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내면에 대한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과거, 인간에게는 생존을 위한 도구 발달과 기술 발달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인간은 실질적인 생명 위협을 느끼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끊임없는 스트레스, 경쟁, 비교, 상대적 빈곤, 환경과 같은 보다 고차원적인 위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장은 바로 이에 대해 우리가 고민하고 어떻게 참선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는지 안내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리더들이 참선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비추고 자기의 틀을 벗어나 행동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 부분에서 소개되는 저자와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의 인연 이야기에서 저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참선이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참선이 일상에서 내면의 평화를 가져 온다고 확신합니다. 참선의 3단계 중 두 가지 단계인 바른자세, 바른 호흡만 하더라도 이미 차분해진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최근 뇌과학에서도 심장박동측정을 통해 심장이 뇌보다 감정을 먼저 알아차린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즉, 호흡을 차분히 고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안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감정코칭에서는 자기 조절 방법으로 심장호흡을 권하고 있습니다. 


테오도르 준 박의 <참선>은 참선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그저 참선이 좋으니 해 보라고 권하는 대신 우리가 겪게 되는 상화들을 저자의 경험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설명합니다. 이는 심리학 대학원을 나온 저자의 이력이 있었기에 더욱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책은 구도자로써의 경험과 학문적 배경이 어우러져 참선을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 주는 징검다리와 같은 책입니다. 저도 호흡에 집중하는 명상법에서 참선수행 방법을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보다 행복한 나를 바깥이 아닌 내 안에서 찾으려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l*****n 2020.01.10. 신고 공감 7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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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삶의 변화를 원한다면, 『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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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면, 정말로 다시 살아보고 싶다면 있는 그곳에서 참선을 해라." 개인적으로 종교를 지나치게 믿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목격할 기회가 많았다. 그들은 자신이 따르는 것만을 옳다고 여겼고, 다른 종교를 믿는 자들을 철저히 배제했다. 상대를 '사이비 종교'라며 비하하기도 했지만, 난 광적으로 종교에 미쳐있는 그들을 보면서 어느 쪽이 '사이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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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면, 정말로 다시 살아보고 싶다면 있는 그곳에서 참선을 해라."

개인적으로 종교를 지나치게 믿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목격할 기회가 많았다. 그들은 자신이 따르는 것만을 옳다고 여겼고, 다른 종교를 믿는 자들을 철저히 배제했다. 상대를 '사이비 종교'라며 비하하기도 했지만, 난 광적으로 종교에 미쳐있는 그들을 보면서 어느 쪽이 '사이비'에 속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종교도 믿고 있지 않다. 특정 종교를 따르게 되면, 그 신념에 갇혀서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될까 봐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때마다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선택지를 고르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그러니까 <참선>이라는 책을 읽게 된 건 종교적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참선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참선은 종교 교리를 무조건 믿고 복종하는 게 아니다"라는 문장에서도 작가가 종교를 강요하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존재의 본질을 찾아낼 수 있도록 '참선'을 가르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교적 색채가 짙을 거라고 예상해서 이 책을 읽기를 꺼리고 있다면 안심해도 좋다. 저자는 불교를 믿으라고 강요하기 위해 책을 써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종교의 양면성을 인정했고, 이를 믿는 사람들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종교를 믿는 건 좋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종교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인생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분투한 저자의 노력이 여기에 담겨 있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시련을 내보이는 것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획득하고, '참선'을 따라 해볼 만한 이유를 제공한다. '테오도르 준 박'은 스님이었지만, 한국 불교의 부족한 점들을 꼬집고, 나아져야 할 부분들을 언급했다. 스스로도 불교를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스승이었던 '송담 스님'을 존경했기 때문에 불교계에 몸을 담았던 이유가 크다고 털어놓는다. 즉, 이 책을 쓴 '테오도르 준 박', 즉 '환산 스님'이 강조하는 바는 종교에 있지 않고, '참선'이라는 수행 방식에 있다. 2권의 책 전체에서 엿보이는 '참선'에 대한 열정과 확신은 사람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해 보였다. '참선'이라는 소재를 종교의 수행 방식이 아니라,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방법들 중 하나라고 여겨주면 좋겠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이려 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한국에서와 달리 서양에서는 '참선'이 심리 치료, 의식 확장, 인간 잠재력 계발 등에 도움이 된다고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참선>이라는 책에 시작부터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이런 단순한 장점들 때문이 아니었다. 프롤로그에 적힌 작가의 말은 내가 어떠한 편견도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저자가 절에 들어가기 전에 가지고 있던 개인적인 의문들은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정확히 일치했다. 특히 만약 살면서 운이 좋았다면, 왜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굳이 나여야만 했는지, 나는 왜 나로 태어나야만 했는지 등의 질문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런 의구심에 평생을 시달려 왔으면서도 남들에게 털어놓은 적은 없었다. 정확한 답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무엇보다도 깊은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심오한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프롤로그를 읽자마자 아, 드디어 제대로 찾았구나 생각했다. <참선>을 완독하는 것으로 질문에 대한 모든 해답은 얻을 수 없었다. '참선'은 "인내와 노력"을 엄청나게 요구하는 일이고, 장기적인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평생의 의문에 관한 답을 듣지는 못했으나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내는 데에는 도움을 얻었다. 작가가 책의 많은 부분을 외로움, 두려움, 불안, 화, 실패, 중독적인 생활 습관과 같은 보편적인 감정이나 현상들을 살피는 데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 에세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그는 사람들이 가진 부정적인 감정의 대부분을 '참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대신 오직 "이뭣고?"에 집중하면서 바람이 지나가게 두면 된다"라고 조언했다. 이 책에 참선을 하는 방법이 소상히 적혀 있기 때문에 나도 여러 번 시도해 보았다. 그리고 문득 내가 책을 읽는 동안은 불안에 떨지 않았고, 쓸데없는 분노를 타인에게 쏟아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관성에 이끌려 원래 내 모습으로 돌아가는 때도 여러 번 있었다. 익숙지 않은 호흡 때문에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틈도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히 뭔가가 변하고 있었고, 조금씩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건 좋은 책을 발견했기 때문도 있지만,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새로운 변화를 갈구하고 있고, 인생이 나아지기를 나처럼 절실하게 원하고 있다면, 그리고 어떤 방식이든 일단 시도해 볼 준비가 되었다면 <참선>을 읽어 봤으면 한다.

<참선>이라는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종교나 신을 강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사람들의 불신은 팽배해 있다. 사람들에게 기댈 존재가 필요하므로 종교가 사라지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을 믿는 게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지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한국에서 일어났던 '한강의 기적'을 통해 세상의 변화는 인간에게 달려있음을 주지시킨다. "기적 같은 것은 없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포기하지 않고, 심신을 혹사시키며 문제를 해결해나간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개개인이 모여 협력할 때 "진정한 성장"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현실이고,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단언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신'이라는 존재가 없다, 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으로서는 작가의 말이 옳은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맞잡아 더 나은 미래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신이 아니라 인간에게 해결책이 있다는 시각은 스님과 같은 종교인에게서 얻어본 적이 없기에 신선했다. 이외에 과학과 종교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었고, 새로웠다.

또한 나는 작가를 통해 처음으로 우리가 살면서 속상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배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렇게 많은 지식을 습득하면서도, 현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문제에는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어릴 적부터 배워온 바가 없었던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감정을 억압하도록 강요받았고, 타인에게 드러내서는 안되는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이토록 "정서적으로 무지한 상태"인 "21세기 도시 수행자"들을 위해 저자는 '참선'이라는 해결 방식을 내세운다. '송담 스님'은 '정신 수련'이 행복의 근원이라고 보았고, 전 세계은행 총재인 '김용'은 정신 관리, 자기 제어 훈련이 일상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 모두 '참선'이 정신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유용한 방법이라고 추천했다. '자기 계발'이라는 명목으로 밖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꾸준히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닦달하게 되고, 결국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니 내면의 근원으로 눈을 돌려 안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으로 충만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인 '환산 스님', 즉 '테오도르 준 박'과 그의 스승인 '송담 스님'은 "우리는 한 팀이야. 알지? 가서 잘 싸워봐. 나는 네 편이야."라고 지속적으로 말하는 듯했다. 그들이 나를 돕고 싶어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고, 며칠 동안 책에서 배운 '참선'이 조금이나마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나는 나만의 수행을 시작해 볼 생각이다. 이 책은 읽는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려고 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진다. 나는 <참선>이 한 번쯤은 다른 독자들도 시도해볼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비주류 과학 자료와 이론, 종교적 관습에 관해 개인적으로 끝없이 의구심을 가지고, 연구해 봤다는 걸 언급하면 책을 고르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참선>이라는 책이 단순한 미신이나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건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달려있다.

 

h*********g 2020.01.15.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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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앞의 잣나무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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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화두(話頭)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느 스님이 “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까닭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이에 조주 선사는 “뜰 앞의 잣나무”라고 단순 명료하게 답했습니다. 달마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승려입니다. 그러니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부처의 가르침을 전해주려고 하는 데 있습니다. 불교하면 스님이 떠오릅니다. 속세를 떠나 산 속에서 머리카락을 말끔히 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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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화두(話頭)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느 스님이 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까닭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이에 조주 선사는 뜰 앞의 잣나무라고 단순 명료하게 답했습니다. 달마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승려입니다. 그러니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부처의 가르침을 전해주려고 하는 데 있습니다. 불교하면 스님이 떠오릅니다. 속세를 떠나 산 속에서 머리카락을 말끔히 깎고 승복을 입으며 치열한 수행을 하니까요. 이런 스님의 고행이 뜰 앞의 잣나무와 같다고 하니, 불교의 문외한인 중생들은 웬만해서는 헤아리지 못해 답답할 지경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는 오래된 습관 때문입니다. 만약에 부처의 마음을 깨닫게 된다면 뜰 앞의 잣나무와 부처는 하나라는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종교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부처를 만나거나, 예수를 만나고자 합니다. 이런 연유로 깨달음을 성취한 영적인 스승들은 대자유(大自由)’인으로 존중받으며 온 세상에 빛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깨달은 덕분에 속세의 어둠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모습으로 다시금 속세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뜰 앞의 잣나무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어려운 말도 아닙니다. 하지만 조주 선사의 경지에 이르면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고통과 번뇌가 가득 찬 이 세상에서 뜰 앞의 잣나무는 맑고 깨끗하고 조화로운 꽃을 피웁니다. 마치 영원한 깨달음은 영원한 행복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테오드르 준 박의 참선과 수행하면서 뜰 앞의 잣나무를 마주 보는 듯 했습니다. 그는 미국계 한국인으로 출가했습니다. 달마보다 더 먼 서쪽에서 온 그는 한국인들에게도 어렵다는 불경을 겸손한 마음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허리띠를 졸라매며 푸른 눈의 승려가 되었습니다. 남들과 달리 자신만의 삶을 설계한 입지적인 사람에 대한 경외심이 없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간절하게 발심(發心)하게 했을까요? 속세에서 건강하지 못한 삶에 대한 자괴감도 없지 않았고, 인생무상이라는 절망감을 느끼며 자신을 구원해줄 무언가를 찾고자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10년간 묵언수행을 하여 살아있는 부처로 불리는 송담 스님으로부터 참나(眞我)’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님의 불명(佛名)은 환산(還山)입니다. 산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절()이 산에 있으니 산으로 돌아오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산이 움직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산은 산이고 사람은 사람입니다. 산이 하는 일을 사람이 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는 일을 산이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산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요즘처럼 핸드폰과 인터넷에 빠진 나머지 얼굴에 가면을 쓴 사람들이라면 더욱 산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비록 스님이 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가짜 얼굴이 아닌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내 삶을 돌아보니 젊음을 방황하며 을씨년스럽게 보냈습니다. 스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데카르트식 회의론과 파스칼식 두려움 사이에 갇혀 있었습니다. 외로움이 높았던 그때 무작정 버스를 타고 간 곳은 어느 절이었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몸이 저절로 그곳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마침 눈 내리는 겨울이라 버스를 타고 산을 굽이굽이 오르면서 바라본 세상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별천지(別天地)이었습니다. 이렇게도 세상이 아름답게 고요할 수 있을까요? 생각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어쩌면 180도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늘날 제가 스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속세의 미련이 남아있는 중생입니다. 속세에서는 고통을 참아야만 달콤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고통 때문에 죽겠다고 말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격려를 보내는 게 마땅합니다. 문제는 열심히 사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지옥의 수레바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이 싫다고 출가한다고 해서 고행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속세의 시집살이보다 더 힘겨운 사찰의 행자살이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만큼 부처를 만나는 고통은 뼈가 아플 정도입니다. 때로는 부처를 죽여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스님의 고행은 연꽃으로 피어나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불자(佛者)가 아니더라도 참선이 진리를 깨닫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선이 불교용어이다 보니 그동안 종교적인 수행법이라는 편견이 없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참선을 하려면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는 게 당연했으니까요. 좌선하는 부담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수행은 대중의 마음을 밝게 합니다. 참선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어느 곳이나 어느 때이거나(一切處 一切時) 얽매이지 않고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상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참선의 3요소는 올바른 자세와 호흡, 그리고 생각입니다. 그중에서도 이뭣고?”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들립니다. “이뭣고?”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아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의심하면서 정진하다보면 어느 순간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되며 참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이때 의심이란 회의적인 태도가 아니라 자기 존재의 본질을 알고자 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을 통해 대의심을 하게 되면 번뇌로 가득 찬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삶이 무의미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에게 참선은 산사의 새벽을 깨우는 깊은 울림과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살아야 할 용기를 얻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답게 사는 법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우리는 정말로 송담 스님의 말씀처럼 사람답게 살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겉으로만 사람일 뿐 속으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누가 진짜 사람인지, 가짜 사람인지 구별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가짜이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물질만능과 쾌락이 가져다주는 편리한 생활을 추구하다 보니 오히려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은 지옥이 되고 말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사람만큼 자기계발을 하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살아가기 힘든 것이 우리가 처한 각박한 현실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계발을 하면서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상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외로운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 TV를 보다가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어미 개가 아기 고양이한테 젖을 물려주고 정성껏 보살폈습니다. 긍정적인 모성본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아는 개와 고양이는 원수지간입니다. 서로가 갈등(葛藤)하면서 으르렁거립니다. 갈등을 해석해보니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혀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만약에 어느 한쪽을 잘라낸다고 해서 갈등이 해결된다고 하면 그렇게 해도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그러나 갈등은 얽히고설킨 복잡한 마음이라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작정 남의 것을 잘라낼 수는 없습니다. 참된 생각은 좋은 관계를 통해서 갈등을 해결해야 합니다.

 

사람도 다르지 않습니다. 갈등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이고 화를 참지 못합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는 어떤가요?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자기 자신에게도 욕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답게 사는 법을 깨달아야 합니다. 21세기 도시 수행자로 사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참선을 권하고 있습니다. 참선을 대중적으로 가깝게 이야기하면 마인드폴니스(Mindfulness), 즉 마음챙김입니다. 마음챙김은 잡념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내면의 평화입니다. 마음이 한결 고요해집니다. 사람이라는 꽉 막힌 내면에서 벗어나 사랑이라는 가장 투명한 빛을 냅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공감합니다. 앞서 말했듯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하는 것처럼 사람을 만나면 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깨닫게 하여 사람을 사랑으로 살도록 하는 것이 참선의 행복이었습니다.

 

 

p******0 2020.01.19.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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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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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제법 긴 시간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수술을 하고 몸이 회복되는 시간을 지루하고도 길었다. 그 힘든 시간을 곁에서 머물며 나를 지켜준 일들이 많았다. 작은엄마도 그중 한 분이셨다. 당시 작은엄마는 절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계셨는데 항상 내게도 마음공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그 말씀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렸다면 어렸고 젊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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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제법 긴 시간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수술을 하고 몸이 회복되는 시간을 지루하고도 길었다. 그 힘든 시간을 곁에서 머물며 나를 지켜준 일들이 많았다. 작은엄마도 그중 한 분이셨다. 당시 작은엄마는 절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계셨는데 항상 내게도 마음공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그 말씀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렸다면 어렸고 젊었다면 젊었기에 그러했다. 테오도르 준 박의 『참선』을 읽으면서 그때가 생각났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는 작은엄마의 말씀까지. 한 권의 책으로 꺼내보는 어떤 장면, 어떤 마음, 그리고 어떤 다짐.

r*********s 2020.01.20.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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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돌아가야(還) 할 산(山)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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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돌아가야(還) 할 산(山)은 어디인가?’   이 책은 한 사람의 진실한 삶의 고백이다. 한 인간의 진리에 대한 탐구의 과정이다. 그 과정이 어떠한 방식으로  끝을 맺고 다시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삶의 기록이다. 법명이 환산(還山)이었던 테오도르 준 박은 1990년 인천 용화사로 출가하여 20년 넘게 수행을 하면서 용화사의 송담 스님을 가까이 모셨다. 그러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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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돌아가야() 할 산()은 어디인가?’

 

  이 책은 한 사람의 진실한 삶의 고백이다.

한 인간의 진리에 대한 탐구의 과정이다. 그 과정이 어떠한 방식으로  끝을 맺고 다시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삶의 기록이다. 법명이 환산(還山)이었던 테오도르 준 박은 1990년 인천 용화사로 출가하여 20년 넘게 수행을 하면서 용화사의 송담 스님을 가까이 모셨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것을 버리고 환속한다. 말은 환속이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출가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며 출가와 환속, 환속과 환산이 하나의 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돌아가야 할 산은 어디인가?’를 화두처럼 들고 있었다. 송담 스님이 준 '환산(還山)'이란 법명은 테오도르 준 박에게만 준 것이 아니라 삶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준 일종의 메시지 같은 것이라고 느꼈다. 어쩌면 송담 스님은 테오도르 준 박(이하 테드라고 표현함)을 통해 고통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 모두 '산()으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대신 전하게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돌아가야 할 그 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삶을 반조하면서 그 대답을 전하고 있다. 선불교에서 말하는 십우도의 입전수수(入廛垂手)’ 저자거리에 들어가 손을 드리우다’라는 환원(還圓)의 종점처럼, 결국 저자는 본인이 처음 출발했던 그 자리로 돌아왔고, 우리 모두도 그렇게 돌아오라고 하고 있다.

 

이 책의 1권은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활구 참선법’, ‘참선의 치유력이라는 세 장으로 되어 있다. 1권의 내용은 송담 스님과의 만남, 출가 과정, 송담 스님의 활구 참선법이 쉽게 소개되어 있다. 2권은 참선이 가진 탈바꿈의 힘’, ‘참선과 미래의 두 장으로 구성되어있다. 2권에서는 주로 환속 이후의 수행과정과 참선법을 심리학과 접목하여 쉽게 풀어내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참선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본래의 치유력을 회복하고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새로운 삶의 방식임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불교에서 출가란 그리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출가를 하기 위해서는 삶을 살아왔던 모든 정체성을 포기해야 한다. 한 사람의 학력, 경력, 인간관계, 재산 등은 모두 시계의 제로 지점으로 돌아간다. 출가란 평범했던 한 사람이 전문적인 구도자가 되는 일종의 선언이며 자신과 타자를 모두 돕겠다는 서원의 구체적 실현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출가란 단호한 결심 없이 이루어지기 힘들며, 또한 인내심이 없으면 구도의 과정을 지속하기 힘들다. 그러나 출가를 했다고 해도 도심(道心)이 없으면 미망 중생에 불과하기 때문에 신() 출가와 심() 출가로 나누기도 한다. 물론 진정한 출가는 심() 출가이고, 때론 심 출가가 신 출가의 범위를 뛰어넘기도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출가자들이 성공적인 출가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출가를 했다고 해도 여전히 진리를 구하는 과정 중에 있기에 좌절과 괴로움을 극복하기 어렵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신 출가의 상태에 있다. 이러한 심정을 테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나는 대부분의 스님들이 말해주지 않을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스님이 권태와 무감각, 절망과 무의미함 그리고 좌절의 시기를 겪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나를 포함해 스님들 대부분이 선방 생활에 지치고 왜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스님들이 이런 생각과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님들도 그런 감정을 느낀다.”(<참선>1, 170)

 

 출가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좌절은 일종의 성장통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통을 어렵게 극복한 사람들이 송담 스님과 같은 큰스님으로 존경받는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출가 생활을 지속하지 못하는 구도자들은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면서 시줏밥을 축내는 것일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일종의 오해일 수 있다. 삶은 평등하다. 성공적인 출가, 실패한 출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보는 우리들의 관념만이 진실인 것처럼 떠돌고 있을 뿐이다. 출가가 한 사람의 자유의지에 의해 이루어진 것처럼, 환속 역시 한 사람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일 뿐이다. 출가와 환속이라는 것은 우리의 개념이며, 출가와 환속에 의해 나누어지는 출세간과 세간 역시 우리의 분별일 뿐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세간 속에 있다고 하여도 그 마음이 청정하면 출세간이고, 출가를 해서 산속에 산다고 해도 그 마음이 번뇌와 분별에 오염되어 있으면 세간 속에 있는 것이다.

  

테드가 이 책을 통해 말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이 점이 아닐까 한다. 그는 선불교에서 추구하는 정신이 한 사람에 대한 존경 혹은 누군가를 우상화시키는 과정 속에만 있지 않다고 보았다. 또한 출가라는 형식 속에서만 인간의 자유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 아니다. 선의 정신은 주체적인 자각을 통해서 삶을 살아갈 때 꽃피는 것이다. 송담 스님을 흠모하고 존경해서만은 부족하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대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스승은 길을 가리키는 것이지 결국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선불교에서는 어미 사자와 새끼 사자의 비유를 통해 수행자의 자세를 설명한다. 진리를 위해 출가한 한 사람의 구도자는 새끼 사자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수행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어미 사자가 되는  것이지, 어미 사자의 보호 속에서 안전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어미 사자의 보호 속에서 스스로 사자인줄 모르는 새끼 사자는 다른 동물들에게 잡혀먹힐 수 있다.

 선불교에서 스승은 그를 모방하고 따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가 송담 스님을 통해 느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지점이다. 한 스승의 진정한 자비가 어미 사자와 같은 간절함에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내가 보기에 테드의 진정한 성장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송담 스님에 대한 존경이 때로는 집착이 될 수 있고, 때로는 진정한 자율성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송담 스님이 원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존경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마음의 자유를 얻으라는 것, 스스로 도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도우라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송담 스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받아들였다.

자발적인 사람. 송담 스님은 자발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자발적인 참선 수행자.”(<참선>1, 239)

 

나는 테드에게 싹튼 것은 임제가 말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정신이라고 본다.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연극에서 빠져 있다는 것을 자각했고, 결국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새로운 출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세속 사람들이 볼때 그의 이러한 모습이 '환속'처럼 보였겠지만, 테드 본인에게는 새로운 출가, 진정한 출가, 진정한 구도의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구도의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 흔히 '속세의 중생들'이라고 소외되었던 사람들 역시 구도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모든 생명은 평등하기에 세간과 출세간, 출가와 환속은 결국 '삶'을 떠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의 발견, 새로운 출가의 계기는 다음과 같은 작지만 강한 통찰을 통해 시작되었을 것이다. 조금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보자.

 아침 산책을 하는 길에 우연히 작은 가게를 여느라 분주한 중년의 부부를 보았다. 주름지고 붉은 얼굴을 한 그들은 쌀쌀한 초봄 날씨에 맞게 껴입은 다부진 몸으로 과일과 채소들을 진열하고 있었다. 잘 차려입고 서둘러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도 보였다. () ‘그래, 이게 사람들이 진짜 살아가는 모습이구나!’ 나는 혼란스러웠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눈부시게 멋지면서도 무의미하고, 놀라우면서도 진부한 삶을 사는 것 같았다. 그들의 삶이 아름다우면서도 유치하고, 숭고하면서도 병적인 데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별 볼 일 없는 것 같지만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놀랍고 가슴이 터질 듯한, 뭐라 말할 수 없는 품위가 느껴졌다. 사람들이 매일 평범한 일상에서 해나가는 것들을 나만 지금껏 모르고 살아온 것 같았다. 지난 몇 년간 그들에게 가르침을 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가 얼마나 그동안 동떨어지고 단절된 삶을 살아왔는지 그제야 깨달았다.”(<참선>2, 57-58)

 

테드가 깨달은 것은 화두를 통한 견성이 아니라 자체였다. 그는 참선의 목적이 추상적 앎 혹은 완벽한 부처가 되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참선이 현실 너머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 현실 속을 들여다보는 방법이다. 존재한다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작고 잠시 머무는 것으로 이뤄진 현실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것이다.”(<참선>2, 61)라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통찰이 '그리 놀랍지는 않지만 온몸의 피가 거꾸로 도는 것처럼 갑자기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나는 테드가 이때부터 비로소 환산(還山)’의 과정을 시작했다고 본다. 그래서 테드의 산(山)은 우리 모두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자체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깨달음이라는 뭔가 모호하고 이상적인 것을 기다리느니 지금 참선을 하면서 살아 있고, 깨어 있고, 행복하다는 것을 좀 더 생생하게 느끼는 편이 훨씬 더 건강에 좋고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다”(<참선>2, 124)라고 기술한다.

 

이러한 그의 환속은 흔히 말하는 환속의 개념과 다르다. 불교에서 출가란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 위한 발심의 표현이고, 설사 속세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그가 돌아가는 곳이 삶 자체라면 출가와 환속 역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출가와 환속을 두 가지로 보는 우리의 관념이 일종의 분별이고 망상일 뿐이다. 나는 그의 글을 천천히 읽으면서 한 구도자의 진지한 삶에 대한 성찰과 그가 왜 환속의 길을 걸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삶의 회복이고, 새로운 출가이며, 새로운 방식의 구도이며, 새로운 방식의 다른 이들을 돕는 방식인 것이다. 설사 그의 외모가 변하고, 삶의 방식이 바뀌었을 지언정, 그는 여전히 그 과정 안에 있다.

 

이 책이 갖는 또 다른 특징은 흔히 전통적으로 알려진 참선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 하려고 했던 점이다. 한국불교에서 참선특히 활구선(活句禪)은 현재 유행하고 있는 명상처럼 대중적이지 못하다. 대중적이지 못한 이유는 참선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설명해내는 노력이 많지 않기 때문이고, 전통적인 분위기에서 말하는 깨달음이 우리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테드는 전통적인 화두 참선의 장점을 현대의 심리학과 명상과 결부시켜 대중적인 입장에서 해석하고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송담 스님의 참선하면 올바른 삶이 무엇이고, 사람답게 사는 법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참선을 하면 왜 의미 있는 삶이 가능해질까? 참선은 삶을 완전히 다르게 인식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 삶은 사건의 연속이고, 우리는 그 사건들로 인해 산만하고 속상해진다. 과거의 일이나 미래를 떠올리면 현재의 생각과 감정이 불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관심을 되돌려 이뭣고?’하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대의심을 일으킬 수만 있다만 고통은 한순간 사라질 것이다. 동시에 관심이 자연스레 현재에 맞춰지면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내적 변화와 주변 상황을 좀 더 인식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현실 직시력, 이것이 참선을 삶의 방식이라 부르는 첫 번째 이유다.”(<참선>1, 253)

 

테드는 활구 참선의 대의정(大疑情)’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해석 방식은 전통적인 대의정에 대한 해석과 조금 다를 수 있다. 활구 참선에서 대의정이 중요한 것은 우리의 분별망상이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갖는다.(화두참선의 교과서인 <서장(書狀)>에서 심무소지(心無所之)’와 '은산철벽(銀山鐵壁)'이 화두를 통해 나타나는 마음의 상태라고 말한다.) 테드는 전통적인 해석이 아닌 본인의 체험을 중심으로 이를 현대적인 명상과 결부시켜 대중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이뭣고?'는 '이뭣고?'를 하는 그 자체를 돌이켜 우리의 마음을 깨어나게 하는 방식이다. 전통적인 간화선이 궁극의 목표를 깨달음에 두고, 깨달음과 이타의 과정을 이원적으로 분리했다면, 테드는 '이뭣고?'를 통해 마음을 일깨우는 과정과 다른 이들을 돕는 과정이 둘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다만 테드는 송담 스님 참선법의 기초에 해당하는 '호흡법'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선에 입문할 수 있도록 접근 방식을 열어놓았을 뿐이다. 깊이 있는 활구참선을 경험하지 못하더라도, 송담 스님의 기초적인 참선법을 통해서 현대인이 처한 많은 심리적 긴장과 육체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 참선법의 기초는 깨달음보다는 심신의 안정을 유도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이러한 점은 현대의 명상에 대한 연구 성과와 명상과 심리학을 결합시켜 나타나는 긍정적 효과와 맥이 닿아있다.

 

사실 내가 테드의 <참선>을 읽고 감명을 받은 이유는 그의 깨달음이나 참선의 현대적 해석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그의 삶에 대한 진솔함과 진리에 대한 순수성 때문일 것이다. 어떠한 화려한 언사보다도 이러한 그의 삶에 대한 태도와 방식이 그의 수행을 통해 드러난 보이지 않는 힘일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명상과 관련하여 얼마나 과학적이며 현학적인 책들이 넘쳐나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자기계발과 행복을 선전하면서 자기최면과 현실도피를 유도하는 책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만약 우리가 이 <참선>을 통해 우리가 돌아올 산()이 바로 지금의 삶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현재 넘쳐나는 수많은 명상서나 자기계발서와 다른 또 다른 한 순수한 인간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며  다신 한 번 내게 묻는다.

 

내가 돌아가야() 할 산()은 어디인가?’

 

* 개인적으로 책의 구성 및 편집과 관련하여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 테드의 삶과 관련된 내용을 1권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2권에서는 현대적인 관점에서 참선법을 소개하였으면 내용면에서 좀더 설득력이 제고되었을 것으로 본다.

 

b**********4 2020.01.17. 신고 공감 4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