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9년에 태어난 마종기 시인. 우리나라 나이로 82세다. 시를 쓴 지 60년 세월. 이번 시집에는 미국으로 건너갈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 고국에 대한 그리움, 살아온 지난날과 나이듦 등에 대한 시인의 마음이 실려있는 것 같다. 마종기 시인을 알게 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만나는 그의 시는 모두 따뜻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을 아리게도 한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시인선 <천사의 탄식>은 올해 9월에 펴낸 책이다. 가장 최근 시집인 줄은 몰랐다. 만나는 시마다 너무 좋아서, 어느 신문에서 언급된 그의 시가 읽고 싶어서, 개인 시집을 소장하고 싶어서 얻게 된 시집인데 읽는 곳마다 책 한 쪽 귀퉁이를 접게 된다. 어느 시집이건 시집은 속도를 내어 읽을 수 없다. 한 편 한 편, 글을 쓴 이의 마음을 느끼며 천천히 읽어야 하는 게 시집이다. 마종기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말했다. "시를 읽어줄 당신께 감사한다."라고. 나는 시인께 감사한다. 내가 시를 읽을 수 있도록 오랜 세월 쉬지 않고 글을 지어줘서. "산 넘고 바다 건너"까지 "고달픈 말과 글"을 보내줘서 고맙다. 이 글은 https://blog.naver.com/mjs0413/222170338353 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
|
이 시집의 해설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희중 씨가 썼는데, 이 시집뿐 아니라 인간 마종기와 시인 마종기의 시세계 정체를 이해하기에 부족함이 없기에, 그 해설의 중요부분을 요약하는 것으로 리뷰를 대신하려고 한다. (시의 리뷰, 시집에 대한 리뷰가 가능할까? 나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다.)
이희중은 우선 그가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1965년 한일 회담 반대 서명에 참여하는데, 그때 당시 시인은 군인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더욱 고초를 겪었다. 따라서 그의 이민은 이주라기보다는 '추방'에 가깝다. 그리고 그의 그 곡절 많은 인생은 그가 쓴 시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십대의 젊은 나이에 국가 권력에 의해 강제로 국외 이주를 하게 된 마종기에게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이국에서의 고독과 향수를 달래주었다. 그는 의사와 시인으로서의 삶을 동시에 감당하였다.
이 시집에 수록된 「잡담 길들이기 20」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시인의 삶에서 시 쓰기는 자기 구원이자 자기 위로였다. 그의 시 쓰기는 낯서 말, 낯선 사람, 낯선 산하에 둘러싸여 흔들리는 자기 자신을 잡아주는 줄이었다.
『천사의 탄식』은 등단 60주년을 맞은 마종기 시인의 열두번째 시집인데, 이 시집에서는 시인의 생애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던 신앙, 즉 사랑과 용서, 약속의 세계가 본류로 나섰다. 표제작이기도 한 「천사의 탄식」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져 일어난 참상을 목도하는 시인이자 의사, 신앙인으로서의 마종기의 삶이 낮은 목소리로 반추된다. 시인은 반성과 회환의 과정을 통해 헐벗은 이들, 소외된 이들, 배고픈 이들,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이 바로 자신의 것이며, 나아가 자신이 믿는 신의 것임을 깨닫는다.
자신의 기원이었던 옛집(그는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고향인 경남 마산 등지에서 유소년기를 보냈으나 고국을 떠날 때까지 대부분의 성장기를 서울 명륜동에서 보냈다)을 그리워해서 50년만에 들린 옛집 마당에서 "흙 한 줌"을 주머니에 넣고 나온다거나(「서울의 흙」), '이별'에 대한 시가 유독 많아졌다(「갈리폴리 2」, 「바다들의 이별」, 「나그네의 집」 등)는 것을 통해 노년의 시인이 느끼는 일상의 감정들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양친도 멀리 가시고 동생도, 단짝 친구들도 어디론지 갔다. 세월이 흘러 사랑과 우정을 나누던 사람들은 '하나둘' 떠난다. 그러나 시인은 '이별 너머'의 '만남'을 상상하거나 약속한다. 그런 의미에서 만남으로 이어지는 이별을 화창하고 명랑하게 보여주는 시, 「다시 만나야 하니까」를 이 시집의 맨 끝에 배치한 이유를 알게 된다.
이희중은 다음과 같이 글을 맺는데, 나 역시 마종기 시인의 오랜 독자로서 이 말에 적극 동의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노 시인의 언어가 고달프기보다는 애틋하길, 쓸쓸하기보다는 아름답길 기도한다. 그가 지금 살고 있는 노년의 삶이 나의 미래이기도 함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천사의 탄식』에서 여든 안팎의 연륜을 얻은 빼어난 서정적 지성이 가꾼, 연민과 응시와 회억의 큰 숲을 본다. 일찍이 규모와 세련을 이룬 마종기 시인의 언어적 도구는 세월이 흐르면서 근간의 안정과 성숙을 성취했고 그 도구를 다루는 몸과 마음은 뚜렷한 연륜을 더하여, 그의 시 세계는 광활하고 울창해졌다. 이제 눈앞에 펼쳐진 풍요로운 숲을 걸으며, 지속과 변화의 미세한 결을 찾아 읽는 일은 앞으로 오래 독자들의 행복이 될 것이다. (pp. 148-149)
|
|
멈추지 않는 놋대는 후회를 생애에 얹고 물살을 가른다. 너무 가파르다고 생각했던 길을 다 오르고 나서야 보였다. 옆 흙 자갈길에 너나없이 널브러진 형상들이. 이렇게 하루는 실로 착잡한 회환이 꼬리를 물고 허무로 이어지며 밤을 넘긴다. 아침 해는 잠깐이며 밝음으로 바뀌면 다시금 허리를 굽혀 몸을 말아낸다. 잊어버린다는 건 외면하다의 다른 말일까. 수많은 외면을 딛고 일어선 두 발은 휘청거린다.
밤이 말도 없이 우리 사이에 왔지. 과거도 미래도 오늘도 다 안 보이는 그 어둠을 이불 삼아 함께 누웠어. 그게 무서움이었나, 아니면 불확실? 우리는 그러다 지쳐서 잠이 들었나 봐.
스쳐온 밤낮에 흩어져 있던 꽃냄새, 빗소리, 강물 빛까지 그게 온통 한 생의 속살이었네.
모두들 떠난 여름 한낮, 수만 개의 잎이 같은 방향으로 돌같이 침묵하는 숙연한 몰두, 여름내 내 스승이 된 순명의 큰 참나무의 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