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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
Romain Gary 에밀 아자르
해외작가 문학가
출생
1914년 05월 08일
사망
1980년 12월 02일
출생지
러시아
직업
소설가
데뷔작
유럽의 교육
작가이미지
로맹 가리
해외작가 문학가
1914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14세 때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 니스에 정착했다. 법학을 공부한 후 공군에 입대해 1940년 런던에서 드골 장군과 합류했다. 1945년 『유럽의 교육』이 비평가상을 받으며 성공을 거두었고, 탁월하고 시적인 문체를 지닌 대작가의 면모를 드러냈다. 같은 해 프랑스 외무부에 들어가 외교관 자격으로 불가리아의 소피아, 볼리비아의 라파스,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 체류했다. 1949년 『거대한 옷장』을 펴냈고, 『하늘의 뿌리』로 1956년 공쿠르상을 받았다. 로스앤젤레스 주재 프랑스 영사 시절에 배우 진 세버그를 만나 결혼하였고,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두 편의 영화를 감독했다. 1958년 미국에서 『레이디 L』(프랑스판 출간은 1963년)을 펴냈고, 1961년 외교관직을 사직, 단편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1962)를 발표했다. 만년에 이르러서는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1975), 『여자의 빛』(1977), 『연』(1980) 같은 소설을 남겼다. 1980년 파리에서 권총 자살했다. 사후에 남은 기록을 통해 자신이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그로칼랭』(1974), 『가면의 생』(1976), 『솔로몬 왕의 고뇌』(1979), 그리고 1975년 공쿠르상을 받은 『자기 앞의 생』을 썼음을 밝혔다.
세계 제2차대전 참전, 레지옹 도뇌르 훈장 받음
미국 로스앤젤레스 프랑스 총영사관 총영사
나는 인생의 가장 어둡고 구석진 곳에 숨겨진 은밀하고 희망적인 논리를 믿고 있었다. 나는 세상을 신용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부서진 얼굴을 볼 때마다 내 운명에 대한 놀라운 신뢰가 내 가슴속에 자라남을 느꼈다. 전쟁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나는 항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느낌을 가지고 위험과 대면하였다. 어떤 일도 내게 일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어머니의 해피엔드이므로. 새벽의 약속 나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게 아니라 무명이었을 뿐이다. 유언

수상경력

1945 비평가상 『유럽의 교육』
1956 공쿠르상 『하늘의 뿌리』
1975 공쿠르상 『자기 앞의 생』

작가의 전체작품

작품 밑줄긋기

박*길 2026.07.18.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이 한 줄이 마음속에 깊이 남았던 것은 바쁘게 살아가며 가족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처럼 곁에 있지만 잊고 살아왔던 사랑이라는 중요한 것을 생각나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내 주변에서 나를 밝혀주던 고마운 사람들에게 전화나 한 번 더 해야겠다.

작가에게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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