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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서쪽의 유럽이나 동쪽의 페르시아가 다 함께 곤경에 처해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기독교 종파간의 분쟁은 언제 끝날지알수 없었다. 서방과 아프리카에 유행하고 있던 기독교는 부패할 대로부패해 폭력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한편 페르시아에서는 조로아스터교가 정부와 하나가 되어 인민에게 강요되었다. 따라서 유럽 · 아프리카및 페르시아의 사람들은 기성 종교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이 무럽7세기 초에 페스트가 온 유럽을 휩쓸어 몇백만 명이 죽었다.당시 인도는 하르샤 바르다나가 다스리던 시기로서, 현장이 찾아온 것도 바로 이 때였다. 하르샤가 치세할 때 인도는 대강국이었으나 오래지 않아 북인도가 분할되면서 차츰 세력이 약화되었다. 더 동쪽으로가 보면, 중국에서는 바야흐로 당 왕조가 막 시작된 참이었다. 627년 그들 최대 황제의 한 사람인 태종(총 즉위했다. 그의 치세 동안 중국은 서쪽으로는 멀리 카스피 해까지 뻗어 나가 중앙 아시아에 위치한 대부분의 나라는 당의 종주권을 승인하고 조공을 바쳤다. 아마 이렇게 거대한 제국을 통치하는 중앙 집권 정부는 역사상 없었으리라 생각된다.이제까지 살펴본 것이 이슬람교가 탄생할 즈음의 아시아와 유럽의상황이었다. 중국은 강대하기는 했지만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인도도 한때 융성을 자랑했으나 중국과 인도 사이에는 오랫동안 분쟁이없었다. 한편 유럽과 아프리카는 모두 힘을 잃고 헐떡이고 있었다.7년에 걸쳐 도망했다가 드디어 마호메트는 메카에 복귀해 지도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