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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발견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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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아마드나가르 요새
20개월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
감옥속의 시간, 행동하고싶은 충동
인생철학

2. 탐구
지난날 인도의 파노라마
인도의 힘과 약점
인도에 대한 탐구
바라트마타(어머니 인도)
인도의 다양성과 단일성

3. 인도의 발견
인더스계곡의 문명
아리안족이 들어오다
최초의 기록들: 경전과 신화
베다경
인생의 수용과 부정
종합과 조절: 카스트 제도의 시작
인도문화의 계속성
우파니샤드
개인주의적 철학의 이점과 불리함
바가바드 기타
고대 인도의 생활과 일
마하비라와 석가, 카스트
찬드라 굽타와 차나키야, 마우리야제국의 건설
국가조직
아쇼카

4. 각 시대의 특성
굽타왕조 시대의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인도의 고대연극
산스크리트어의 활력과 끈질김
인도의 고대미술
인도의 대외무역
고대 인도의 수학
발달과 쇠퇴

5. 새로운 문제들
아랍인과 몽골인
가즈니의 마무드와 아프간인
인도아프간인-남부인도-비자야나가르-바바르-해양세력
혼성문화의 종합과 발달, 푸르다, 카비르-구루 나나크-아미르 쿠스라우
인도의 사회구조: 집단의 중요성
촌락자치: 슈크라 닌티사라
카스트의 이론과 실제: 대가족 제도
바바르와 아크바르: 인도화의 과정
기계의 진보와 창조적 에너지로 본 아시아와 유럽의 대조
공통적인 문화의 발달
아우룽제브, 시대를 역행하다-힌두 민족주의이 성장-시바지
마라다족와 영국인, 패권을 위한 투쟁, 영국인의 승리
조직 및 기술에 나타난 인도의 후진성과 영국인의 우월성
란지트 싱과 장이 싱
인도의 경제적 배경, 두개의 영국

6. 마지막 단계(1): 영국통치의 강화와 민족주의 운동의 대두
제국의 이데올로기: 새로운 카스트
벵갈약탈이 영국의 산업혁명에 도움이 되다
인도산업의 파괴와 농업의 쇠퇴
인도가 사상 최초로 정치적, 경제적 속국이 되다
영국의 인도통치의 모순, 람 모한 로이신문, 윌리엄 존스 경, 벵갈의 영국식 교육
1857년의 대반란, 인종주의
영국통치의 기술: 균형과 평형
산업의 성장: 지역의 차이
힌두교도와 회교도의 개혁 및 기타 운동

7. 마지막 단계(2): 민족주의 대 제국주의
중산계급들의 무기력함, 간디가 등장하다
간디의 영도 아래 국민회의가 활밟한 조직이 되다
국민회의의 지방 정부
인도의 활력과 영국인의 보수주의
소수파의 문제, 회교도연맹, M.A.지나 씨
전국기획위원회
국민회의와 공업: 대공업 대 가내공업

8. 마지막 단계(3): 제2차 세계대전
국민회의, 외교정책을 개발
전쟁에 대한 국민회의의 접근방법
전쟁에 대한 발발
국민회의의 또 다른 제의와 영국정부의 거부, 윈스턴 처칠 씨
진주만 이후, 간디와 비폭력
긴장
스태포드 크리프스 경이 인도에 오다
좌절

9. 다시 아마드나가르 요새
사건의 연쇄
저지당한 인도의 성장
종교, 철학 그리고 과학
민족사상의 중요성, 인도에 필요한 변화
현실주의와 지정학, 세계정복이냐 세계연합이냐, 미합중국과 소련
자유와 제국
오래된 문제에 대한 현대적 접근방법
에필로그

저자 소개 2

자와할랄 J. 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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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waharlal Nehru

인도의 정치가. 간디의 영향을 받아 반영(反英)독립투쟁에 사회주의적 요소를 결합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총리 겸 외무장관을 지내며 비동맹주의를 고수하였다. 1889년 11월 14일, 인도 알라하바드에서 태어났으며 많은 관료와 학자를 배출한 명문 가문 출신이다. 1907년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서 7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도로 귀국한다. 그리고 1930년 10월 26일부터 1933년 9월 8일까지 약 3년 동안 옥중 생활을 하면서 그의 외동딸 인디라 간디에게 쓴 196회분의 편지글을 엮어 『세계사 편력』이라는
인도의 정치가. 간디의 영향을 받아 반영(反英)독립투쟁에 사회주의적 요소를 결합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총리 겸 외무장관을 지내며 비동맹주의를 고수하였다.

1889년 11월 14일, 인도 알라하바드에서 태어났으며 많은 관료와 학자를 배출한 명문 가문 출신이다. 1907년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서 7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도로 귀국한다.

그리고 1930년 10월 26일부터 1933년 9월 8일까지 약 3년 동안 옥중 생활을 하면서 그의 외동딸 인디라 간디에게 쓴 196회분의 편지글을 엮어 『세계사 편력』이라는 책으로 편찬되기에 이른다. 네루는 이 편지를 통해 당시 13세의 나이로 어머니와 할아버지마저 투옥되어 홀로 남겨진 어린 딸에게 역사와 인생을 보는 튼실한 안목을 키워주고자 했으며 이 세계사 편지들을 읽고 자란 인디라 간디는 훗날 인도의 여성 총리가 되어 인도 발전을 위해 노력하게 되고 네루의 외손자도 총리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인도의 발견》과 옥중에서 1966년 총리가 된 외동딸 인디라 간디에게 주는 형식의 《세계역사 이야기》 등이 있다.

자와할랄 J. 네루의 다른 상품

Kim Chong Chol,金鍾澈

1944년 9월 충남 연기(현재 세종시)에서 태어났고, 1968년 2월 서울대 문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인 1967년 11월에 동아일보사 기자로 입사했고, 1975년 3월 자유언론실천운동의 ‘주동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동아일보사에서 해직된다. 1984∼1988년에는 민중문화운동협의회 공동대표, 1985∼1988년에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대변인과 사무처장, 1988∼1998년에는 한겨레신문사 논설위원, 1998∼2000년에는 연합뉴스 대표이사를 지냈다. 1995∼2005년에는 사단법인 ‘한국·베트남 함께 가는 모임’ 이사장, 2008∼2013년에는 인천재능대학
1944년 9월 충남 연기(현재 세종시)에서 태어났고, 1968년 2월 서울대 문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인 1967년 11월에 동아일보사 기자로 입사했고, 1975년 3월 자유언론실천운동의 ‘주동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동아일보사에서 해직된다. 1984∼1988년에는 민중문화운동협의회 공동대표, 1985∼1988년에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대변인과 사무처장, 1988∼1998년에는 한겨레신문사 논설위원, 1998∼2000년에는 연합뉴스 대표이사를 지냈다. 1995∼2005년에는 사단법인 ‘한국·베트남 함께 가는 모임’ 이사장, 2008∼2013년에는 인천재능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2013년 3월부터 동아자유언론수호 투쟁위원회 위원장, 2014년 2월부터 사단법인 유라시아문화연대 이사장, 2014년 10월부터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2015년 6월부터 민주주의국민행동 공동대표, 2016년 9월부터 2016민주평화포럼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저 가면 속에는 어떤 얼굴이 숨어 있을까』(1992, 한길사),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1995, 창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1999, 개마고원), 『오바마의 미국, MB의 대한민국』(2009, 시대의창), 『세시봉 이야기』(2011, 21세기북스), 『박근혜 바로보기』(2012, 프레스바이플), 『폭력의 자유』(2013, 시사in북)가 있다. 총서로는 종교, 교육, 글쓰기, 음악, 영화에 관해 성찰한 『문화의 바다로』 전5권(2011, 21세기북스), 『동아일보 대해부』 5권, 『조선일보 대해부』 5권(공동 집필, 2014, 빛두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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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3월 2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696쪽 | 983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9824138

책 속으로

태초부터 인도에는 그 기본적인 원칙에 대한 탐구, 불변의 것, 보편적인 것, 절대적인 것에 대한 탐구가 있었다. 그러나 활기 넘치는 견해 역시 있었으며 삶과 변하는 세계에 대한 평가도 있었다. 비록 안정과 안전과 종족의 생존이 언제나 더 강조되기는 했지만, 이 두가지 기반위에 안정되고 진보적인 사회가 건설되었다.

근년에는 활력 있는 면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영원한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사회구조가 경직되는 한편 불변의 것이 되었다. 사실상 그 구조는 완전히 경직된 것은 아니어서 점차적이고 지속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 배후의 이데올로기와 전반적인 틀은 변하지 않고 지속되었다. 다소 자치적인 카스트들, 대가족제도, 그리고 촌락의 자치생활로 대표되는 집단의 이념은 이 체제의 대들보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결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본질적인 필요를 충족시켰기 때문에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그리고 계급의 특권은, 그것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였을 뿐 아니라 자기 희생의 능력은 물론 힘과 지성과 유능함에 의해 지탱되었기 때문에 유지되었다.

그 이데올로기는 여러 권리의 충돌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남에 대한 개인의 의무와 자기 의무의 만족스런 이행, 집단 내부의 협조와 상이한 집단간의 협조, 그리고 본질적으로 전쟁보다 평화를 촉진한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사회체제는 경직되어 있었지만 정신의 자유에 대해서는 제약이 전혀 없었다.

---pp. 628~629

인도에서 기하, 산술, 대수의 시초는 까마득한 세대로 거슬로 올라간다. 우선 베다경에 나오는 제단들의 치수를 추정하는 데 이용된 일종의 기하학적 대수가 있었던 것 같다. 가장 오래된 책들에, 사각형을 일정한 변을 갖는 직사각형으로 변형시키는 기하학적 방법, 즉 ax=c에 대한 언급이 있다. 기하학적 계산은 현재도 힌두교의 의식에서 이용되고 있다.

기하는 인도에서 발전했다. 그러나 이 발명에서는 그리스와 알렉산드리아가 앞서 나갔다. 인도는 산술과 대수에서 선두를 지켰다. 십진법과 0이라는 기호의 발명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제까지 발견된 바로는 0이라는 기호는 기원전 200년경의 한 경전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진법(進法)은 서력기원이 시작될 무렵에 발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슈니야(shunya), 즉 무(無)라고 불리는 0은 원래 하나의 점이었는데 나중에 조그만 동그라미가 되었다. 0은 다른 기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숫자로 간주되었다.

---pp. 218~219

출판사 리뷰

"인도의 지성 네루가 쓴 인도 역사서"
이 책은 1944년 4월부터 9월까지 5개월 동안 간디가 아마드나가르 요새의 감옥에서 쓴 인도 역사서이다. 인도의 고대문명, 인도의 문화, 카스트 제도, 영국의 인도 착취에 이르기까지 '인도적인'시각으로 탐색하고 있다.

고대 인도 문명은 시민선진 문명이었으며, 또한 카스트제도 역시 그 기원은 조화롭고 합리적인 제도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영국의 인도 수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국은 인도를 철저히 자신들의 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식민 기간 동안 악랄한 약탈은 물론 철저한 인종주의로 일관했다. 그리고 그들의 보수성은 인도에 어떠한 교육이나 산업적 발전도 허용하지 않았다. 모든 곳에서 모든 산업이 파괴되어 인도를 공업제조국에서 농업국으로 전락시켰다. 인도 곳곳에서 만성적인 기아가 뒤따랐다. 그런데 영국제국주의는 인도의 근대화가 자신의 도움 때문에 이루어졌다고 강변한다.

네루의 인도 이야기에는 마치 식민지 조선이 겪었던 모든 문제들이 유사하게 등장한다. 제국주의의 분열정책, 시대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에 안주하는 지도자들, 외세에 영합하는 세력들, 각 세력의 분열 등 뼈아픈 식민지적 경험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레에 대해 유연한 태도에서 그간 서양이 보여왔던 오만하고 편협한 태도가 아니라 상호이해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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