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지에게 시란 ‘지도에도 없는 별로 찾아가는 길’이다. 그 길을 가기 위해 장이지는 특이하게도 메르헨적인 상상력을 시적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명왕성에서 메일이 오기도 하며 우주선도 뜨고 은하철도 999는 레일도 없이 하늘을 달린다. 이렇게 장이지 시는 우리들이 유년 시절에 보고 자랐던 만화영화나 꿈의 정서를 새롭게 환기시키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용문객잔]이나 [구멍], [소살리토] 같은 영화를 보거나 장 콕도의 시를 읽거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음악을 들은 개인적인 취향이나 체험들을 즐겨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런 시적 활용들이 그의 시를 읽는 같은 연배의 젊은이들에게 폭넓은 공감을 주지 않았나 생각된다. 아마 내가 알기로 장이지는 그가 자라오고 겪어온 시대적 정서를 그중 잘 표현하는 시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체험들을 시에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비틀어서 현대문명이 낳은 기형적인 요소나 우울함, 병적 상실 등을 예리하게 노래한다. 깊이가 있으면서도 그의 시에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살수차로 물을 뿌린 듯한 촉촉한 슬픔과 권태로운 삶의 그늘이 있다. 나는 장이지의 시에서 나의 시와 전혀 다르게 사물을 보고 노래하고 있는 독창성을 느끼고, 시의 세대 차이를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