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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친구를 진심으로 축하할 때 그의 기쁨은 문자 그대로 우리의 기쁨이 된다. 아무리 인간이 천성적으로 진심을 다해 상대를 축하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가 친구를 축하하는 그 순간만큼은 우리도 친구 못지 않게 행복하다. 그 순간 우리의 가슴은 부풀어 올라 진실한 기쁨으로 넘실댄다. 그 기쁨과 만족으로 우리의 눈이 빛난고 우리의 표정과 몸짓이 활기를 띈다.반대로 고통을 당한 친구를 위로할 때, 우리는 친구가 느끼는 슬픔에 비하면 턱없이 얕은 슬픔밖에 못 느낀다. 우리는 친구 옆에 앉아서 그의 손을 꼭 잡는다. 그리고 친구가 자신의 불행한 일들에 대해 얘기할 때, 엄숙한 자세로 그 얘기를 주의 깊게 들어 준다.숨 막힐 정도로 흐느끼는 친구가 슬픈 감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우리는 쉽게 그의 슬픔에 젖어들지 못한다. 그 모습을 봄며 우리도 애써 '나였어도 그만큼 슬펐을 거야' 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난 왜이렇게 감성이 메말랐지?'하며 자책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억지로라도 친구의 슬픔에 대한 공감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장례직상을 나오면 그런 감정들은 금세 증발해버린다.조물주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슬픔만 준다. 친구의 슬픔에 대해서도 위로와 연민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 이상의 슬픔을 반복해서 느끼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슬픔보다 기쁨에 더 많이 공감하는 인간의 성향 때문에, 우리는 부를 과시하고 가난을 감춘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통스러운 우리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매우 치욕스러운 일이다. 가난한 우리의 처지가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우리가 껶는 고통의 반만큼도 연민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크나큰 비애다. 인간의 이런 본능 때문에 우리는 부를 추구하고 가난을 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