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다가오는, 들어오는… 빛,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그 무수한 고통의 평행선들의 한 소실점,
마치 그 노즐 같은 구멍의, 그 바늘구멍 사진기의 간유리에 도립된 풍경 같은,
작가의 그 농밀한 의식(또는 무의식)의 흐름이 점묘하고 교직하는 언어와,
영세민 임대아파트의 그 ‘삶의 세계’는 “흑담즙”(이상 「곧 죽을 남자」)이나, “귀신에 대한 공포는 살아내야 하는 공포에 비하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기초수급자라서 거절을 당하는 대학병원, “기를 쓰고 아이를 쫓아다니다 보니 발바닥은 살이 헤져 피가 나고 구멍이 날 지경이고 모든 관절들도 비명을 질러대고 있는 형편”의 어미와 “한바탕 악마처럼 굴던 시간이 지나니 이제는 천사의 얼굴”인 “만 세 살 때 자폐증 진단을 받은 서른여섯의 아이, 자해행동, 우울증, 조현병, 알콜중독… 그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극대비와 공존, 착종, 동등, 등가, 서사 붕괴 등은 마침내는, 이상하게도, 찰스 램이 말한 “산 자의 우월감”으로서의 우리의 ‘삶의 자리’를 “컴포우즈 블루와 코발트 블루, 울트라마린 블루” 이상 「‘찰스 램’을 읽는 시간」) 등 투명한 블루의 ‘삶의 자리’로 순간 우리 앞에 제시, 현현시킨다. 그것은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