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을 위하여
2019년 12월 20일, 서울역 4층 대회의실에서 전국 자유전공학부협의회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각 대학의 자유전공 운영 담당자들이 사례를 발표하고, ‘전국 자유전공학부교육 협의회’ 구성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대학의 교육 활동이 위축되면서 자유전공학부의 조직화라는 원대한 꿈도 불가피하게 연기되었다. 그때 이 책의 저자 신철균 교수를 만난 것은 한국의 대학사에 큰 행운이었다. 그로부터 약 4년 뒤인 2023년 11월 30일, 강원대학교가 속초에서 개최한 포럼에서 국내외 학자들이 교양교육과 자유전공학부의 혁신 방향을 활발하게 논의했다. 포럼이 끝난 뒤, 자유전공 교육의 기틀을 구축한 신 교수야말로 앞으로 자유전공학부 협의회 구성 계획을 실현할 적임자라고 격려했다. 신 교수는 그 일에 앞서 이 책의 추천사를 부탁했다.
지난해 1월 교육부가 공고한 「대학혁신지원사업 및 국립대학육성사업 기본계획」은 대학에서 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한 후 전공을 선택하는 ‘무전공’ 방식의 교육을 권장했다. 이러한 정책으로 올해 황급하게 자유전공 제도를 도입한 대학이 늘어났고, 내년에는 신입생의 약 30%가 자유전공으로 선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유전공 방식의 교육이 한국에 도입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공 쏠림 등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이 제도의 허와 실을 통찰하는 혜안을 갖추어야만 대학교육의 질적 변화와 학생 중심 교육이라는 본래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전공에 관한 핵심을 다루는 이 책이 교육부의 정책보다 앞서 나오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이 책을 통해 자유전공에 대해 숙의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원고를 받아 재미있게 통독했다. 이 책은 10여 년 이상 자유전공학부 운영에 참여하고 여러 대학의 자유전공학부 설립을 자문해 온 내가 그동안 궁금해하던 문제를 거의 망라하고 있었다. “자유전공학부가 무엇이며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라는 기본 문제뿐 아니라, “왜 한국 대학에 자유전공학부라는 제도가 필요한가”라는 근본 문제를 다루었다. “전공을 정하지 않은 상태로 입학한 학생을 어떻게 가르치고 학생의 전공 선택을 어떻게 도울까” 하는 교육 설계는 우리나라에서는 이색적이다. 이는 계열별·광역모집 같은 입학 전형의 문제를 넘어, 기존의 교육 방식을 전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직접 자유전공학부를 운영하면서 동료·학생들과 고민한 경험을 토대로 낯선 제도를 알기 쉽게 안내하는 서술은 저자의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자유전공 교육의 옹호자는 대체로 서양의 Liberal Arts College 모델을 지향한다. 자유학예대학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한 교양교육을 강조하며, 일반적으로 대학원과 구별되는 ‘학부’ 그 자체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제도를 단순히 ‘자유전공’으로 이해하는 것은 유럽의 교육철학적 맥락을 놓칠 위험이 있다. ‘자유전공’이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의미의 ‘자유’로만 이해되는 것 또한 전공 중심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한국적 염원의 표현이다. 그럼에도 한국 대학에서 자유전공 교육은 서양의 자유학예대학 모델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한국에서 전개된 자유전공 교육의 사례를 검토하고 해외 대학의 제도와 비교함으로써 이러한 난제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수능 카츠’라는 불온한 언어가 횡행하고 있다. 전공 선택과 인생의 항로가 시험 점수로만 결정되는 현실은 비극적이다.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 학문을 연마하며, 인간적으로 성숙하는 길을 찾는 것이야말로 이상적 교육일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교육과 관련한 논의는 대학입시와 밀접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저자는 자유전공 교육의 안착을 위해 대학입시 전략을 방편으로 동원하고 있다. 특히 “자유전공학부는 어떤 학생을 원하며, 학생은 어떻게 자유전공학부에 합격할 수 있는가”라는 구체적 질문에 답한 설명은 교수와 교사, 학부모와 학생 모두에게 실질적 지침이 될 것이다. 저자는 자유전공을 위한 진로상담의 관점에서 이 책을 집필하면서 “전공을 선택하지 않을 용기”라는 제목을 붙였다. 물론 이 책은 단순한 진로 안내서가 아니다. 학생과 교수, 더 나아가 대학이 함께 어떤 ‘자유’를 모색해야 하는지 묻는 시대적 제안서이다. 자유전공 제도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곱지 않은 한국의 풍토에서, 이 책을 세상에 선보인 저자의 용기와 노고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대학에서 학생이 자율적으로 삶을 성찰하고, 교수는 학생의 자유로운 영혼을 인도하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그날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