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고도 아깝고도 아쉬운 고백
장신대 신대원 77기엔 ‘충환’ 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친구가 세 명이나 있었다. 한 친구는 선교사로 나갔고, 다른 친구는 신학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친구는 목회자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그가 바로 곽충환이다.
그는 오랫동안 펄벅(Pearl Sydenstricker Buck)의 소설『숨은 꽃』처럼 꽁꽁 숨겨져 있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는 동기가 드물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동기 모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77기가 졸업 25주년 홈커밍데이(HomeComing Day)를 치르는 일에 그의 손길이 필요했던 것이다.
곽 목사는 서울 한복판 중구에서 교회를 개척, 그 교회에 올인했다.『인생사계』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은 바로 그가 개척하고 20년 동안 붙들고 씨름했던 나눔의교회 이야기이다. 120편의 이야기들은 시편이요, 수필이요, 장편소설이요, 더러는 콩트요, 어쩌면 신앙고백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스스로 시인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맞다! 그러나 그 어느 시편이 이토록 명징(明澄)할까! 어느 수필이 이처럼 담백(淡白)할까! 그가 뽑아낸 글 속엔 땀과 눈물과 기도가 담겨 있다. 그가 뽑아낸 글은 맑고, 정직하고, 투명하고, 어쩌면 전라도 흙냄새가 물씬 풍긴다. 전남 장성 시골 교회 부흥회 이야기가 그렇고, 교회 김장을 담그는 이야기가 그렇고, 그 김치 속에 젓갈을 넣는다는 것도 영락없는 전라도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그는 충청도 사람이란다. 아무려나, 교회 뒤뜰에 김칫독 파묻어 놓고 포기 포기 뽑아먹는 맛을 그는 교인들과 함께 즐겼을 것이다. ‘서울 한복판 중구’ 에 세워진 교회라고 역설하지만, 실은 약수동 언저리에 세워진 걸 보면, 그땐 영락없는 달동네였을 적 이야기 아니겠는가!
곽 목사는 언제부터 이런 글들을 썼던고? 부끄럽고도 아깝고도 아쉽다. 필자가 교단신문 기독공보 편집국장과 사장을 거친 세월이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을 넘겼으니까, 그때 그는 나눔의교회를 개척하고 그 교회를 붙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쩜 필자는 그토록 까맣게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곽 목사를 몰랐을까? 진정 부끄럽고 아깝고 아쉽다. 그때 많은 목회자들, 그리고 교인들과 더불어 나눴어야 마땅한 글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