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생 영국인으로 런던 정경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정치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시카고대 해리스 공공정책대학원 정치학 교수다. 정치경제와 비교정치, 정치 · 경제 발전론을 전공하며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각국 정치 · 경제 체제와 역사를 깊이 연구한다. 2017년 세계은행의 세계개발보고서 (World Development Report on Governance)의 학술자문위원을 역임했다. 『독재와 민주주의의 경제적 기원(Economic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 『경제발전과 엘리트의 역할(The Role of Elites in Economic Development)』 등 여러 권의 저서를 냈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지난 목요일 저는 미국의 정부 형태를 헌법이 미국 국민에게 삶의 터전을 일굴 수 있도록 제공한 삼두마차 체제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물론 삼두마차란 3권으로 분리된 정부 권력, 다시 말해 입법, 행정, 사법부를 가리킵니다. 이 중 의회와 행정부, 두 마리의 말은 오늘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애를 쓰고 있지만, 나머지 세 번째 말은 그렇지 못합니다.
18세기 프랑스 도시의 삶은 고되고 불결했다. 수공업은 막강한 길드의 규제를 받았다. 길드는 일원에게는 두둑한 수입을 보장했지만, 외부의 진입이나 창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이른바 앙시앵레짐은 영속성과 안정성을 자랑하는 체제였다. 기업가나 재능이 있는 개인이 새로운 직종에 진출하면 불안정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니 용납 못할 일이다. 도시인이 고된 삶을 살았을 정도면
영국의 박애주의자 로버트 오언이 어느정도 사회개혁을 채택해 곤궁한 인민의 고충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오스트리아 정부를 설득했을때. 메테르니히의 측근 중 하나인 프리드리히 폰 겐츠는 이렇게 대꾸했다. “일반 대중이 모두 자립해 잘사는 걸 전혀 바라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통치할 수 있겠는가?”
명예혁명으로 왕과 가신의 권한이 약화되었고 경제제도를 결정할 권한은 의회에 귀속되었다. 동시에 사회 각계각층이 폭넓게 참여하는 정치체제가 마련되었다. 사회 전반이 정부의 기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명예혁명은 다윈적 사회를 만드는 발판을 마련했고 더 나아가 중앙집권화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세계 최초로 포용적 정치제도를 만들
봉건제도는 왕 밑에 영주가 있고 가장 아래층에 소작농이 있는 신분질서를 기본으로 한다. 왕은 자신이 소유한 토지를, 군사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영주에게 하사한다. 영주는 하사받은 봉토를 소작농에게 분재한다. 그 대가로 소작농은 끝없는 부역에 종사해야 함은 물론 각종 벌금과 세금을 징수당했다. “노예” 신분이었기 때문에 소작농은 농노라고불렸다. 토지에 예속된 소작농은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