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다양한 문화와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독자의 눈으로 글을 옮기고 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친절한 번역을 늘 마음에 새기며 현재 출판 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태양왕 루이 14세』, 『전쟁과 군복의 역사』, 『미국 흑인의 역사』, 『노예선의 세계사』, 『말의 세계사』, 『해적의 세계사』, 『라바울 전기』, 『감자로 보는 세계사』 등이 있다.
유럽인들은 제지 공정에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주었다. 동아시아와 이슬람의 종이는 밀가루나 쌀의 전분을 첨가해 흡수성을 억제하는 가공을 했다. 그 결과, 표면이 매끄럽고 잉크 번짐이 줄어 필기가 수월해졌다. 반면 이탈리아의 제지업자들은 전분 대신 동물성 젤라틴을 사용했다. 이 방식은 한층 투명하고 빳빳하며 질긴 종이를 만들어냈다. 이는 유럽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양피지의 필기감을 재현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그리고 이 차이는 종이의 차이만이 아니라 문화의 차이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종이는 붓으로 쓰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 부드럽고 다소 거친 표면이 수분을 적당히 흡수하는 반면, 서양의 종이는 펜으로 쓰기에 알맞은 두께와 단단함, 매끄러움을 지닌다. 오랜 세월 각자의 나라에서 발전한 필기 문화가 종이의 성질에도 반영된 셈이다.
중국 자기에 대한 사랑은 아시아에도 이어졌다. 일본에서도 도자기가 생산되었지만, 대부분은 도기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16세기 말, 일본 도자기 역사에 전환점이 찾아온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으로 수많은 조선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가거나 이주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도공들의 지도자로 전해지는 인물이 이삼평이다.일본에 도착한 이삼평은 도공 열여덟 명과 함께 현재의 사가현인 히젠국(肥前?) 아리타(有田)로 이주했고, 양질의 도자기 원료를 찾다가 이즈미산(泉山)에서 카올린을 발견했다. 이 발견을 계기로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자기 생산이 시작되었다. 이후 이삼평은 가나가에(金ヶ江)로 이름을 바꾼 뒤 수많은 자기를 만들어냈고, 이로 인해 많은 도공이 아리타로 모여들어 도자기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자기는 이마리(伊万里)항을 통해 수출되었기 때문에 이마리야키(伊万里?)라고 불렸으며, 지금은 산지의 이름을 따서 아리타야키(有田?)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이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유리창을 생각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무척 익숙한 유리창이지만, 근세 이전의 유럽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 회화에서도 유리창이 묘사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유리창이 근대에 와서야 발명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놀랍게도 최초의 유리창은 1세기 로마 제국에서 만들어졌다. 화산재에 묻힌 도시 폼페이의 목욕탕에서도 유리창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