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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
국내작가 예술/여행 저자
출생
1961년 출생
출생지
강원도 동해시
직업
기자
데뷔작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작가이미지
문학수
국내작가 예술/여행 저자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부터 클래식 음반을 쫓아다닌 음악 애호가. 오랫동안 [경향신문]에 음악비평을 써왔다. 여러 매체에 음악과 관련한 글들을 연재하는 한편, 음악과 인문학이 결합된 대중강연을 펼치고 있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의 추천

  • 때로는 다큐처럼 또 때로는 소설처럼 읽힌다. 스탈린 시대의 정치적 압박 속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펼쳤던, 아니 펼칠 수밖에 없었던 러시아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초상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묘파한다. 마이크로필름에 담긴 『교향곡 7번』의 악보에서 시작해 글의 제재를 확장해가는 저자의 솜씨가 능란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페트로그라드로, 다시 레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뀌는 동안 명멸했던 수많은 사건과 인물들이 책 속에 녹아들면서 한 명의 예술가를 ‘당대적 모자이크화’로 그려내고 있다. 혁명의 붉은 리본을 호기롭게 팔뚝에 묶었던 ‘어린 미챠’가 시대의 격랑에 휘말려 겪었던 곡절과 분열은 쇼스타코비치의 내면이었던 동시에 러시아의 피투성이 맨얼굴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었으며, 반항과 순응의 곡예를 펼쳤던 예술가는 간신히 살아남았다. 묘비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에서 사라진 숱한 이들은 가깝게는 쇼스타코비치의 친척이거나 동료 예술가, 넓게는 러시아의 민중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쇼스타코비치가 남긴 15개의 교향곡 대부분이 죽은 이를 위로하는 ‘레퀴엠’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 책 자체가 한 편의 장송교향곡이다.
  • 평전의 객관성과 신뢰는 어디에서 오는가. ‘믿을 만한 증언’이야말로 핵심일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책의 미덕이다. 주석을 빼도 자그마치 8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상당 부분을 증언에 할애했다. 쇼스타코비치 본인의 언술은 물론이거니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가족과 친구, 동료 등 수많은 인물의 증언을 교직해 입체적인 ‘구술 서사’를 이뤄내고 있다. 증언자들의 상당수는 이미 타계했지만 아직 생존한 이들도 허다하다. 예컨대 현재 92세의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는 이른바 ‘해빙기’로 불렸던 1960년에 쇼스타코비치가 입당한 사실에 대해 냉혹한 비판을 가하면서도 대작곡가를 이해하려 한다. “우리 시대의 비극과 공포를 온몸으로 보여준, 러시아 인본주의 전통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평가에는 고민과 진심이 가득하다. 이렇듯 이 책에서는 허풍쟁이 증언자들을 찾기 어렵다. 저자는 혹여라도 편향과 왜곡의 우려가 있을 경우, 또 다른 증언자의 입을 통해 균형을 회복한다. 그동안 쇼스타코비치에 관한 여러 책이 나왔지만, 이 책만큼 포괄적이면서도 객관적인 다큐멘터리를 찾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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