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헌경憲卿, 호는 해사海士, 해옹海翁, 운당芸堂, 쌍송만사雙松漫士, 총계당叢桂堂 등이고,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부친은 홍직모洪稷謨, 조부는 홍낙명洪樂命, 장인은 권상신權常愼이고, 아들은 홍우창洪祐昌과 우승祐昇이다. 황해도 배천, 경상도 의성과 상주, 전라도 보성 등지에서 군수와 현감, 목사 등의 지방관을 지냈다. 1862년 8월부터 약 1년간 나주목에 있는 섬인 지도로 유배되었는데, 그 유배 기간에 『지수염필』을 저술하였다. 홍한주는 시문에 뛰어난 19세기 중반의 대표적인 문인 학자로, 고증적이며 박학하고, 조선이 처한 현실을 깊이 통찰한 지식인이었다. 시문집으로 『해옹존고海翁存稿』(10책, 장서각)와 『해옹시문집海翁詩文集』(9책, 규장각)이 있고, 일기 3종이 미국버클리대학 동아시아문고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