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언어학자로 1890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1938년 빈에서 48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는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여, 1922년 마침내 빈대학교의 슬라브 문헌학 교수가 되어 그곳에 정착했다. 1920년부터 로만 야콥슨과 서신을 통하여 학문적 교류를 하게 되었으며, 프라하언어학파에 함께 가입해 그들의 공통 관심사와 공동 이론을 1928년부터 국제언어학회에서 발표하였다.
프라하언어학파의 작업은 종종 집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개인의 공로를 드러내기보다, 음운론의 역사에서 이 학파가 1929년, 1932년, 1933년, 1936년에 열린 국제학회에서 음운론 관련 문제에 대해 가히 혁신적인 관점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물론 트루베츠코이는 이 공동 작업에서 기초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트루베츠코이의 죽음은 나치의 빈 점령과 관계가 있다. 그는 1938년 건강상 허약하다는 이유로 나치 집단에 의해 교수직을 박탈당했는데, 사실은 그가 인종차별론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밝혔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국으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고, 그로 인해 극심한 심장 발작을 일으켜 죽음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