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있어 더 즐거운 정원 이야기
이 책의 저자 애드볼리 리치먼드는 정원, 식물 역사 전문가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렵지만 영국에서 정원 공부를 한 나로서는 이 분야를 잘 안다. 책의 내용은 우리가 정원에서 흔히 보는 식물이 어떻게 우리에게까지 오게 되었는지를(영국 기준이긴 하지만) 역사적 맥락으로 알기 쉽게 말해준다. 나는 그녀를 영국 BBC에서 반영하는 ‘가드너스 월드(Gardener’s world)’를 통해 본 적이 있다. 또랑또랑한 영국 악센트로 식물을 설명하는 그녀의 말투가 글에서도 그대로 느껴지는 게 신기했다.
이 책 속의 식물은 낯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나라에도 많이 보급이 되었고, 누군가의 집에선 화단에 자리를 잡고 있는 식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자칫 식물도감을 떠올린다면 딱딱하고 학문적이지 않을까 싶겠지만, 책의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체 이 식물은 어디에서 어떤 사연으로 우리에게 왔고, 그래서 그 다음 어떻게 되었을까, 이렇게 마치 드라마 속의 캐릭터 하나하나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그런 느낌의 책이다. 사실 나는 이것이 정원을 시작하는 첫 번째 발걸음이라는 것을 잘 안다.
적어도 영국의 정원 문화는 ‘가드닝’이라는 매일의 일상 속에 식물을 가까이 하는 관습에서 출발했다. 그 시작은 18세기였다. 물론 제국주의, 식민지 침략이라는 어두운 면이 그 이면에 자리하지만, 영국으로 밀려든 아메리카, 호주, 아프리카 등지의 새로운 식물은 영국 사회 전체를 들썩일 만큼 큰 이슈를 만들어냈다. 왕실에서는 새로운 식물을 키우기 위해 온실을 만들고, 야자나무를 키우는 호텔에서 애프터눈 티를 즐기고, 식물 패턴으로 가득 찬 드레스를 만들고, 식물 향신료를 넣은 쿠키를 만들어 먹는 문화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새로운 식물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사회에 넘치며 그걸 키우고, 자랑하고, 나누는 문화가 이때 정착이 된 셈이다. 그리고 이 문화가 만들어낸 정원 문화는 지금까지 전세계 정원 트랜드를 선도하는 중이다. 세계 최대의 정원 축제인 ‘첼시 플라워쇼’, 정원의 메카인 ‘왕립원예학회’의 정원들, 세계 최대의 식물 박물관 ‘큐가든’의 연구와 교육 등을 만들어낸 셈이다.
더불어 저자 애드볼리 리치먼드의 매우 쉽고 간결한 문장과, 세라 제인 험프리의 식물 그림은 이 책을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세라의 그림은 과학적 세밀화와는 좀 다르다. ‘보태니컬 아트’라고 말하는데, 식물 자체를 예술적으로 그리는 기법으로 특유의 섬세함과 따뜻함으로 여러 차례 상을 받기도 했다.
식물이 품고 있는 역사는 우리의 삶보다 훨씬 더 길고 깊다. 정원 식물 역사가의 풍부한 식물에 대한 지식, 역사, 이로 인한 사회의 변화, 그 궁금증을 탐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역사, 인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몇 배의 즐거움을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