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현정이 보내온 책을 읽으니 마음 한편에서는 안도감이, 다른 한편에서는 질투심이 밀려온다. 무슨 뜻이냐고? 음…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분명 한 사람을 설득하기보다는 여러 사람을 설득하기가 더 쉬운 것 같다.’ 이오니아의 도시국가 밀레토스의 참주가 페르시아에 맞서기 위해 스파르타왕 한 사람을 설득하는데 실패했으나 아테네에 가서는 3만 명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는 일화를 두고 한 얘기다. 신문 칼럼을 썼던 나는 ‘3만 명’을 상대한 것에 가깝다. 그 중 절반, 아니 3분의 1이나 4분의 1 정도만 공감하면 성공이었다. 반면 김현정은 확실한 ‘한 사람’을 상대해야 했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이 손석희 앵커 아니던가. 그가 버티고 서 있는 테르모필레 협곡(영화 [300]의 그곳!)을, 그것도 매일 통과해야 했으니…. 지금 이라도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그러나 김현정이 그 한 사람과 대결하며 내공을 다져온 것을 떠올리면 글 쓰는 자로서 질투심이 치민다. 생각해보라. 매일 아침 일찍, 한국 사회라는 수산시장에서 활어를 떠다가 회를 치고 매운탕을 끓여 내와야 했다. 더구나 싱싱한 이슈를 포착하는 감각에, 가슴을 파고드는 감정과 머리를 납득시키는 이성이 최적의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일 아닌가.
그러니까, 여러분이 펴든 이 책은 연중무휴로 그 무시무시한 수련 과정을 밟아온 자가 자신만의 엑기스를 모은 것이다. 아, 그렇게 부러우면 당신도 김현정처럼 해볼 용의가 있느냐고? 아니오. 사양하겠습니다. 대신, 저는 시간 날 때마다 자세를 고쳐 앉아 이 책을 다시 읽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압니까? 닫혔던 저의 글쓰기 성장판이 열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