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글은 그의 전 생애가 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작은 제품도 전 사회의 경험이 집결되어 만들어진다. 우리 눈에 보이는 조그만 단서들은 그 배후에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를 품고 있다. 이 구조들이 과학사학자의 잘 가다듬어진 정연한 문장으로 한 올 한 올 풀려나온다. 그렇게 짜인 단단한 글들은 보풀 하나, 빈틈 하나 없는 직물처럼 한 편 한 편 단정하게 아름답다.
그런 글들이 삼십 편 차곡차곡 깨끗이 쌓인 모습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이 사유와 통찰의 집적물을 ‘테크놀로지’라는 키워드가 일관되게 관통한다. 그것은 렌즈가 되어서 그 너머 테크놀로지로 구축된 우리 사회를 엑스레이처럼 투시하여 눈앞에 드러낸다. 그것은 또한 나를 마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있기도 했다. 처음 몇 편의 글만 읽고도 저자의 시점과 나의 시점 사이에는 세 살의 시차가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한 사람이 겪어온 근과거의 역사는 해상도가 커서 일 년도 퍽 큼직하다. 동년에 가까운 저자의 경험 위로 나의 경험을 포개게 되고, 이때 세 살의 시차는 유년기가 처한 80년대에 비스듬하게 커 보이다가 현재로 다가오면서 점점 미미해진다. 특별한 독서 경험이다.
거울을 본다는 것은 성찰적인 일이고, 뜻밖에 심리적인 효과를 주기도 한다. 왜 달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방향도 모른 채 모두가 달려가야만 했던 한국 현대사를 거쳐온 독자에게 이 거울은 고요하게 멈춰서는 명상적인 순간을 준다. 그 거울은 나의 과거와 현재를 비추면서, 테크놀로지의 사회가 나를 어떻게 형성하고 둘러싸 왔는지 보여준다. 기술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거기에는 언제나 의도가 있다. 그 의도를 어떻게 올바르게 대해야 할지, 이 책은 렌즈와 거울을 독자의 손에 들려주며 눈을 뜨게 한다. 나는 이 선물들을 손에 들고는, 내가 지금 있는 지상 30m 높이의 발밑을 디뎌본다. 이 발밑이 무너지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위해 얼마나 거대한 기술과 정치가 작동하는지, 얼마나 많은 사회 구성원들의 노동이 분투하며 이를 지탱하고 있는지, 어딘가 무리는 없는지, 사려 깊게 헤아려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