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철학에 초석을 놓은 가브리엘 쉬숑은 《여성은 나약하고 가볍고 변덕스럽다는 속설에 대한 반론》에서 여성을 향한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에 물러섬 없이, 비판적이고 철학적인 언어로 맞대면한다. 쉬숑의 글은 많은 페미니즘 작가들이 그러하듯 자기 삶의 구체적 경험과 그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성찰이 향한 현실의 부조리함은 한탄이나 교정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명철한 분석을 통과해 새로운 사유를 길러 올리는 힘이 되며, ‘여성의 자율성’과 ‘독립적 삶의 선택권’에 대한 제안으로 이어진다. 결혼과 종교라는 제도 바깥에서 여성이 자유로운 삶을 선택할 자유의 가능성을 역설하는 쉬숑의 글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비롯한 현대 페미니즘의 핵심 쟁점과도 연결된다. 당대의 습속과 불화하며 시대를 앞서간 이 책은 발굴되어 다시 읽히는 고전일 뿐 아니라, 쉬숑이 숨 쉬고 글 쓴 17세기로부터 300여 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비혼, 비출산,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둘러싼 동시대의 상황과 얽히며 지금 우리와 맞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