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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국내작가 인문/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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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국내작가 인문/사회 저자
기록노동자.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한다. 저서로는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2011), 『노동자, 쓰러지다』(2014), 『아름다운 한 생이다』(2016),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2019), 『여기, 우리, 함께』(2020), 『두 번째 글쓰기』(2021),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2022), 『일할 자격』(2023), 『베테랑의 몸』(2023)이 있다.

그리고 『밀양을 살다』(2014), 『섬과 섬을 잇다』(2014), 『기록되지 않은 노동』(2016), 『416 단원고 약전』(2016), 『재난을 묻다』(2017), 『회사가 사라졌다』(2020), 『숨을 참다』(2022),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2022), 『당신은 나를 이방인이라 부르네』(2023),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2023)을 함께 썼다.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의 추천

  • ‘죽어야 더 잘 보이는 사람이 누구인가?’ 저자는 자신이 낸 퀴즈에 직접 답한다. “공업고등학교 학생.” 아픈 말이다. 그들이 ‘공고생’일 때는 어떤 관심도 두지 않다가 ‘고교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목숨을 잃으면 그제야 안타깝고 불쌍한 ‘아이’로 수면 위에 올린다. 저자 연혜원이 세상에 내민 ‘퀴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대학과 기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구는 세상에서, 실은 그 기반을 위태롭게 지탱하는 공업고(/특성화고) 학생들에 대한 성찰을 누가 하고 있을까. 그러니 아프지만 필요한 말이다. ‘공업고 소년들’은 살아생전에도 이따금 소환당한다. ‘여혐’이나 ‘소년 범죄’ 같은 이슈와 엮여 등장할 때다. 이때는 ‘공고’라는 수식어조차 붙지 않는다. 이들은 암묵적으로 명명된다. 공부 못하는 애들. 대학 갈 생각이 없는 애들. 일찍부터 탈락한 애들. 이들은 ‘이대남’으로 정체화되지도 못한 채 ‘문제’가 아닌 ‘문젯거리’로 남는다. 나이가 들어 이 사회가 죽음조차 애도하지 않는 저임금 블루칼라 노동자가 될 때까지. 청소년 노동을 기록한 적이 있다. 취재를 끝까지 완료하지 못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그때가 생각난다. 책을 보내 주겠다고 집 주소를 받으면, 대부분 주소 중에 “B”라는 글자가 있었다. 반지하. 오래된 동네. 정부에서 특성화고에 내려보내는 취업 목표율이 올라가면 현장실습생 사망률도 올라간다. 통계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공업고등학교는 ‘공부 못하는 애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 계급화된 공간이다. 아무도 공업고에 대해 말하지 않는 건 지금 이 사회가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지점을 짚는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가 형성되고 박탈되는 과정을 찾아 나간다. “나는 동시에 내 주변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만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고백을 뒤로 하고, 공업고 남자 학생들을 만난다. “남성 청소년 집단은 통계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제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눠 봤다는 통계학자를 아직 만나 본 적이 없다.” 저자는 그들을 만나 묻고 듣는다. 왜 그들이 ‘정치 성향’을 묻는 말에 “모르겠어요”라며 말끝을 흐리는지. 군대 이야기 앞에선 양가적 감정을 드러내다가 입을 닫아 무는지. 같은 처지인 현장실습생의 산재 문제에 무관심하게 구는지. ‘여성가족부’ 질문에는 어떻게 일관된 자세로 또렷하게 의사를 표출할 수 있는지. 그 답을 머리에 이고 젠더와 계급, 정치와 교육 체제를 경유한다. 그 과정에서 ‘허용되고 공유될 수 있는 언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살피고, 이를 형성하는 데 일조하고 방조하는 학교라는 공간의 역할을 세밀하게 짚는다. “노동자가 되는 것은 실패”로 여기게 하는 사회에서 ‘노동자를 키워 낸다’는 공업고등학교가 그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계급의 언어가 아니다. 저자는 책 초반에 이 문장으로 길을 연다.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만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학교를 다녔고, 어떤 노동을 준비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젠더 규범을 배웠는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공업고는 한국의 노동계급 남성성을 형성하는 공간이다. “계급 없는 남성, 권리 없는 노동자, 정체성 없는 주체”를 만들어 내는 사회적 장치들이 이곳에서 제약 없이 작동한다. 책을 덮은 후, 앞선 문장을 뒤집어 따라 적고 싶었다.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학교를 만들고, 어떤 노동을 준비하게끔 하며, 어떤 방식으로 젠더 규범을 강요하는지를 함께 배워야 한다.” 어느 날, 현장실습생의 죽음이 스치듯 들려온다면, ‘젊은 나이에’라며 애석해하는 대신 이 책을 떠올려 주길 바란다. 연민이 아닌 책임을 말하는 이 책을. 그들을 통계의 자리가 아닌 (정치적) 언어의 자리에 세우려는 이 책을.
  • 문선희 작가가 송전탑, 굴뚝, 전광판, 교각을 찍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거기에, 아직 무엇이 있던가요?” 차마 묻지 못했는데, 답이 되어 돌아왔다. 세상의 정답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답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오르는 곳이 고공, 하늘 위다. 그곳에 천막을 치고 자리를 깔고 현수막을 내리고, 자신을 놓는다. 가벼운 일은 아니다. 끝이 없는 일도 아니다. 그들이 떠나고 철제 구조물만 남는다. 그런데 그곳을 찾는 사람이 있다. 모두가 떠난 자리를, 오랜 간격을 두고, 카메라로 좇는 사람. 문선희는 어떤 답을 찾아 헤맨 걸까. 책이 되어 돌아온 답을 들고 나도 며칠을 서성였다. 책을 펼치면, 하늘과 바다. 그리고 그곳이 있다. 그도 안다. 기억하려는 사람이 없는 곳이다.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구조물을 가져와 고요한 바다에 세운다. 그렇게 우뚝, 우리 앞에 놓인다. 피할 길이 없어 그제야 응시한다. 나를 빤히 보는 고라니의 눈을 들여다보듯 굴뚝과 전광판을 마주한다. 소멸하고 멸종되는 것들. 지우고 잊히는 것들. 세상의 쓰임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없어지는 것들. 사라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 모든 일들은 실제로 일어났다.” 일어난 일을 잊자고 하는 세상에서 “우리에겐 아직 나누어야 할 이야기들이 있다”고 고집을 부리는 작가를 본다. 모든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사람은 왜 올라갈까요?” 한때는 이 질문에 “절박해서”라 답한 적도 있다. 아니다, 믿어서다. 평범한 사람이, 세상이 귀하게 보지 않는 사람이 오랫동안 높은 곳에 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별스럽지 않은 일이다. 이 별것 아닌 일을 들여다보고, 기억하고, 응답할 사람이 있다는 믿음 없이는 하지 못할 일이다. 사람은 사람을 믿기에 하늘에 오른다. 그 믿음은, 때론 싸움이 지나갔다고 믿어지는 곳에서 다시 시작된다. 그 자리를 오래 공들여 들여다보고 기억하고 응답하는 이와 만났다. 사람은 사람을 믿는다. 나는 이 책을 믿는다.

작가 인터뷰

  • 희정 “당신의 장례는 어떠하길 바라나요?“
    2025.06.04.
  • 낙인찍힌 노동자가 바라보는 노동의 세계
    2023.05.10.
  • [책읽아웃] 목소리로 기록하는 일 (G. 희정 기록노동자)
    202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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