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에게 필요했던 건 나의 ‘없음’을 일깨우는 연민이 아니라, 내 삶 곳곳에 사랑이 ‘있음’을 알려 주는 ‘속 깊은 무관심’이었다. 길게 자란 손톱에서 엄마의 부재를 읽는 대신 묵묵히 손톱을 깎아 주는 마음, 아빠가 죽고 엄마와 헤어지고 동생마저 사라지는 그런 삶이 다 있느냐며 깜짝 놀라는 대신 ‘그런 인생도 있구나’ 가만히 끄덕여 주는 마음. 책을 읽으며, 호기심 어린 관심보다 모르는 척해 주는 무관심이 어쩌면 사랑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라는 동안 내가 듣고 싶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이 되어 지금 나에게 도착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내 안에 그 시절의 아이가 남아 있으니까. 어린 나와 어른이 된 내가 힘을 합쳐 이 책을 세상 쪽으로 밀어 보낸다. 그런데, 문득 궁금하다. “어떤 부재와 부족이 삶을 통째로 남루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라는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